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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Sep 03. 2020

<8월의 열 문장 쓰기>

라도 하면 마음이 편했다.

<택배상자>

옥수수, 호박, 깻잎, 풋고추, 직접 담근 오이지, 깻잎김치가 가득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엄마가 농사지어 바리바리 싸서 보낸 것이다.

냉장고에 쟁여놓고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한꺼번에 배달되는 식재료들은 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엄마의 택배가 부담스러움보다는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오늘의 택배 상자는 고마움 이상의 울컥 감정이 올라와 한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계절마다 당연한 듯 받아오다 어느 날부터 택배를 받지 못하면 목놓아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비가 와서 호박과 깻잎을 가늘게 채 썰어 밀가루 조금, 계란을 넣어 호박 깻잎전을 만들었다.

오이지를 얇게 썰어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꾹 짜서 새콤 달콤하게 무쳐냈다.

옥수수 껍질을 벗겨 푹 쪄낸 후 막내딸 일 년 치 간식으로 냉동실에 저장하였다.

자식을 키우면 키울수록 엄마맘을 알 것 같아 하나라도 안 버리고 내 입으로 넣으려고 용을 쓴다.


<열 문장 글쓰기>

글 쓰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마음의 벽이 낮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같이 읽고 쓰는 사람이 있어 재밌었다.

남편 출근 후 세 아이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딱 30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계속 썼다.

반복된 행위는 습관을 만들었고 쌓여서 결과물이 된다.

불필요한 문장을 제외하는 연습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몇 개의 문장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게 과연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훈련이 되었다. 

열 문장 글쓰기는 나에게 글을 자주 쓰게 하고 글자 수 아끼는 법을 알려 주었다.      



<'latte는 말이야'라고 말하던 순간>

아들은 8살 때 1년 6개월 미국에서 살았고 중학교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주어, 목적어, 보어, 품사 등등 문법이 헷갈린다고 한다.

아이의 영어 실력은 모래성 위에 무거운 벽돌을 올린 것처럼 언제든지 무너질 듯 보였다.

하지만 아이는 유명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고 내신 성적은 그럭저럭 나오니 쉽게 그만두라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은 지쳐 보였고 어느 날 영어학원을 쉬고 싶다 말했다.

모래성 빈틈을 메꾸기로 하고 여름방학 동안 영어학원을 잠시 쉬고 있다.

나와 함께 매일 아침 기초 영문법 1시간 30분, 저녁 영어단어 공부를 함께 한다. 

 싫은 것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반복의 힘, 다른 사람의 진도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영어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latte는 말이야,

danger(단거는 위험해, 그래서 덴져는 위험)

moderate(m은 middle이야 가운데라는 거지, 적당하다 생각하겠지? 그래서 moderate는 적당한 뜻이야)

dismiss(miss는 그리워하다는 뜻이지? 그런데 dis는 안 좋은 뜻이지? 안 좋게 한 다음 그리워하는 게 뭐야? 바로 해고한 다음에 보고 싶다 그러는 거지. 그래서 해고하다는 뜻이야) 이렇게 기억해, 다른 사람 상관없이 그냥 나 혼자 억지 써가며 외우는 거야."

아이는 처음에 나의 억지를 비웃었지만 어느새 웃으며 나의 억지 연결을 기억하고 있다.

영어공부로 너와 내가 연결되어 엄마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도 기억하기를 바라며. 



<엄마는 모르는 이야기>

엄마는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내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을.

엄마가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결혼 후 한참 뒤에야 떠올릴 수 있었다.

서울 딸 집에 와서 어느 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데 참 어색했다.

난 몰랐다.

엄마가 누구의 딸이었는지, 어떤 성장기를 보냈는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엄마는 모른다.

내가 엄마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적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는 그 미움도 원망도 희미해져 내 글에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란 가능할까?

특히 나와 관계를 맺고 있고,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쉽지 않다.

어릴 적엔 나의 부모가 그랬고 지금은 남편과 아이들이 그렇다.

나와 이해관계가 깊게 얽혀있는 남편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다가는 내가 힘들어져서 싫었고,

힘들어지고 아픈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지는 내 자식들은 용을 쓰며 잘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보다는 내가 원하는 지점을 향해 그들을 밀거나 끌고 갔던 시간들.

힘을 들일수록 거리는 멀어지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브런치에서 <그냥 나>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다.

수식어가 붙지 않는 나를 알고 싶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강한 소망이 담겨있다.

나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느끼고, 인정해주는 요가는 <그냥 나>로 이끌어준다.

요기니의 마음으로 <그냥 나>처럼 <그냥 너>를 바라볼게.     



<누군가에 보내는 응원>

너희들 혹시 싱클레어를 알고 있니?

내가 읽고 있는 성장소설의 주인공이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보다 잘해나가려고 하는 것이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좋을 일일세"

데미안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싱클레어에게 한 말이야.

'근면과 노력으로 플라톤을 읽을 수 있었고, 피타고라스의 문제도 풀 수가 있었으며 또는 화학적인 분석도 따라갈 수가 있다. 단지 한 가지만은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나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목표를 끌어내서 내 앞의 어는 곳에다 그려 보는 일이었다.'

싱클레어의 고백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데 너희들에게 원하는 것을 빨리 정하라고 재촉해서 미안해.

너희들보다 먼저 지나온 시간이라고 우리 마음대로 줄여보려 했던 어른들의 오만함을 사과해.

그 시간은 너희들의 것이고 탐색의 시간인데 기다려 주지 못해서 부끄럽구나.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그 말이 답답한 게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라는 것을 꼭 이야기하고 싶어.

천천히 원해... 네가 원하는 것을 원해... 그리고 네 마음속에 깃들어 있음을 믿어.


<SNS 이야기>

라떼는 말이야 아이러브스쿨과 싸이월드라는 것이 있었지.

많은 사람들에게 <좋아요> 강박증을 앓게 했던 페이스북엔 30대 남편과 나, 두 아들의 어린 시절이 켜켜이 쌓여있어.

카카오스토리도 즐겨하는데 공식적(?) 관계의 사람들이 페친이라면 카친은 남편이 잘 모르는 나만의 친구가 더 많아.

요즘엔 인스타그램이 유행이라며 남편의 적극 추천으로 또 슬며시 발을 들여놨지.

인스타의 매력은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진과 동영상이 주요 소통방법이라는 것과 해쉬태그가 매력이더라.

실제로 난 인스타에서 팔로우하는 사람은 몇 안되고 #요가 #독서 #글쓰기를 팔로우하고 있어.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은 몰랐던 정보도 알게 하고, 신선한 자극을 주기도 해.

최근엔 글 친구가 추천한 브런치를 시작했고 적응 중이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알고 싶은 검색어를 넣으면 광고성 글을 피해 좀 더 담백한 글들이 많아서 좋더라.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계속하다 보니 다른 유행은 다 쳐지는데 SNS는 남들만큼 또는 남들보다 더 하는 것 같아.


<우리 집 똥강아지>

현관문에 사람이 들어오거나 나가면 제일 먼저 반응하며 달려 나온다.

택배 아저씨 벨소리에도 세상없이 반갑게 맞이한다.

아침에 산책을 시켜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먹을 것 주는 사람이 보호자인 줄 안다.

배변훈련을 시켜야 똥오줌을 가린다.

나 혼자서 뭐라도 하려 하면 벌써 내 품을 파고들어 자기 자리를 만든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이쁜 짓으로 날 미소 짓게 한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똥 싸는 것까지 이쁠 때도 있다.

우리 집 똥강아지라 쓰고  이보서라 읽는다.

그래서 <개는 훌륭하다>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모두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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