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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Sep 09. 2020

아는 척 모르는 척

  사춘기 첫째 아들이 배드민턴 레슨을 받으러 간다며 라켓을 챙겨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주중 저녁시간에 초등학교 강당을 빌려 배드민턴 레슨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아들은 일주일에 세 번 레슨을 받고 밤 아홉 시 정도에 집으로 돌아온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던 그날,  엄마로서의 식스 센스가 작동되었다. 아들이 방금 전 나간 현관을 왜 쳐다보고 싶었을까? 배드민턴 레슨을 간다고 한 아들의 운동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슬리퍼 신고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고? 뭔가 이상해.' 

 휴대폰 없는 아이는 자기뿐이라고 말하면서도 막무가내 조르지는 않았던 아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엄마 몰래 PC방은 가지 않겠다고 먼저 말해주었던 아들이었다. 최근 들어 연년생  동생과 놀러 나가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배드민턴이나 농구를 하러 간다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네 살 막내딸을 카시트에 태워 차를 몰고 초등학교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에 가까워질수록 그곳에 아들이 없을까 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딸의 손을 잡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큰 오빠가 있을까? 없을까?  없으면 엄마 너무 슬퍼질 것 같은데...”

“엄마, 왜 슬퍼져?”

“오빠가 엄마를 속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아들이 그곳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 조심스럽게 강당 2층 문을 열었다. 아들이 안 보였다. 혹시라도 내가 못 찾았나 싶어 한 명 한 명 얼굴에 눈도장을 찍듯 쳐다보아도 내 아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처럼 오랜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지 않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많은 학생들이 선택한 공부 방법은 한 달 단위로 독서실을 등록하는 것이었다.  눈치껏 공부도 알아서 하는 오 남매의 둘째, 모범생 딸이었던 나는 엄마를 졸라 독서실을 등록하였다. 많은 날들을 독서실 책상 앞에서 밤늦게까지 있었으며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는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랬던 나도 가끔씩은 부모님 몰래 일탈을 즐기는 여고생이었다. 친구들과 대학교 근처 뒷골목 소주방에서 레몬소주의 달콤 쌉쌀한 맛도 느껴봤고 때론 친구 집에 모여 우리들만의 특별한 영화감상도 즐겼다. 한 번은 친구들과 영화 <연인>을 보고 독서실 책상에 앉아 눈을 떠도, 감아도 떠올랐던 장면으로 한동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기억도 있다. 나의 일탈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믿어주는 부모님과 나의 일탈을 부모님은 모른다고 생각했던 철없는 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부모님을 속이며 친구들과 어울렸고 독서실에서 내 몸과 마음에 남아 있던 흔적들을 모두 없앤 후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 당시 난 완벽한 일탈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날의 일탈도 그랬다. 공부가 안된다며 핑계를 만들어 독서실에서 좀 떨어진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열심히 놀았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전 나의 흥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선 독서실로 향했다.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낯익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친구들과 웃고 있던 나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횡단보도 중간 지점에서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아... 나의 엄마, 아빠’

뭐라 변명할 새도 없이 어색한 짧은 순간이 지나갔다.  그때부터 나의 가슴이 콩닥콩닥. 독서실에 도착한 나는 이 일을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용서를 빌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노트를 한 장 뜯어 구구절절 변명과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썼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늦었네. 빨리 씻고 자라.”

‘이상하다.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실까? 어디 갔었는지 분명 궁금하실 건데....’

다음 날 아침 등교 전, 어젯밤 독서실에서 쓴 편지를 안방 거울 앞에 두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편지는 없어졌고 부모님은 여전히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렇게 그 일은 또 하나의 일탈로 마무리되었다. 


  학교 강당에 없는 내 아들은 이 시간 어디에 있을까? 엄마가 허락할 때까지 PC방에는 가지 않겠다던 아들이었는데 난 동네 PC방 앞을 서성거린다. 들어가 볼까? 저곳에 아들이 없으면 들어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 될 것이고 있으면 뭐가 달라지지?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엄마에게 PC방 간 것을 들키는 장면이나 그 엄마가 아들을 찾아내는 장면 둘 다 유쾌한 그림은 아니었다. 그냥 막내딸을 데리고 편의점에 들어가 바나나 우유를 사주고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큰 아들은 집에 오지 않았다. 아직 배드민턴 레슨을 마치고 집에 귀가할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그 사이 남편은 집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폭풍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문자메시지로 선전포고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막내딸을 맡기고 아파트 1층 현관 앞으로 다시 내려가 서성거렸다. 저 멀리 아들이 걸어오고 있다. 검은 봉지에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잔뜩 사서. 운동 후 무척이나 덥다는 연기라도 하듯 손 부채질까지 하면서. 

시원한 PC방에 있었는데 뭐가 덥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냉랭한 표정으로 물어봤다. 

“어디 갔다 왔어?”

“배드민턴 치러...”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또 한 번 질문했다.

“다시 물어볼게. 어디 갔다 왔어?”

“배드민턴 치러...”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어디 갔다 왔어?”

“그래 놀다 왔다. 왜?”

“......”

  나와 큰 아들이 집 현관문을 들어서자 남편, 작은아들, 막내딸 모두 나의 숨소리,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은 아들은 끊임없이 형에게 자기들만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남편은 나의 어깨를 감싸더니 서둘러 안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난 남편 품에서 앞으로 어떻게 애들을 믿을 수 있겠냐며 한참을 울었고 남편은 애들이 사춘기 아니냐며 나를 다독였다. 난 아들에게 더 이상 추궁하며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부모는 자식들에 대해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존재였구나.’ 

매 번 모르는 척하면 자식들은 부모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무시할 것이고, 매번 아는 척하면 자식들은 질려버려 거짓말로 거리를 둘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자식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는 척, 모르는 척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글은 코로나 상황 이전의 일을 글로 쓴 것입니다. 지금은 웃지만  당시에는 아들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울고불고. 지금은  엄마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PC방을 갈 수 없는 두 아들이 안쓰럽네요. 이 무슨 마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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