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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Oct 04. 2020

 추석, 엄마, 마음

 1남 4녀 모두 결혼을 했다. 명절날 딸들은 각자의 시집에 들렀다 오후가 되면 친정으로 모인다. 막내 남동생 부부는 결혼 첫 해부터 본가와 처갓집을 번갈아 우선순위에 두고 다니고 있다. 그래서 매 년은 아니지만 명절엔 가끔씩 오 남매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 결혼한 자식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모이는 명절이 되면 엄마는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했다. 오 남매의 가족이 다 모이니 입맛도 다르다. 누구 하나 섭섭해할까 이것저것 음식들을 만드셨던 엄마. 식혜와 수정과는 기본이었고, 한과, 과일 두세 가지, 육전부터 삶은 문어, 마른안주 등등. 

자식들 먹이려고 많은 음식을 준비 해 놓은 줄 알면서도 난 늘 엄마에게 불만 섞인 잔소리를 했다. 결혼 후 음식 준비에 드는 정신적, 경제적, 육체적 힘듦을 알기에 더욱 큰 목소리로 잔소리를 퍼부었다. 이미 시집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었기에 끊임없이 나오는 전과 음식들을 보며 ‘차례 지낼 만큼만 하지 이렇게 많이 할 필요 없다’, ‘음료수는 그냥 주스 사 먹자’, ‘모자라면 그냥 배달음식 시키면 되지 뭐 하러 이렇게 고생하나’ 끝없는 잔소리에도 엄마는 “그래도 그게 아니야”라며 대답했다. 그렇게 십 년 넘도록 매년 명절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음식의 양과 종류는 조금씩 줄었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는 많았다. 난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몸의 수고스러움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19로 올해 추석은 집콕 명절이다. 시어머니 혼자 계시는 부산 시댁이 맘에 걸려 손윗동서와 아주버님에게 이번 추석명절은 형님 댁, 설에는 우리 가족만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좀 더 솔직해지면, 병원에서 일하는 남편의 직업과 사회적 분위기를 명분 삼아 강제로 배려를 강요했다. 친정 부모님은 먼저 전화로 이번 추석은 내려오지 마라 하셨다. 다행히 시어머니도 남편의 직업을 이해하셨기에 우리 가족은 맘 편히 평화롭게 집콕 명절을 맞기로 했다.  

 추석날이 다가올수록 연휴 내내 집에서 지낼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남편은 추석 연휴 동안 당직이 이틀이고, 당직이 아니더라도 연휴기간 내내 출근해서 일 할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나의 몫이다. 이 추석 연휴 동안 어떻게 아이들과 잘 지내야 하나.

 추석 전날 세 아이를 데리고 천호동 아웃렛으로 갔다. 부쩍 커버린 아들들은 올 가을 긴 바지 입을 것이 없다며 3주 전부터 노래를 불렀었다. 추석빔이라는 명목으로 두 아들에게 긴 바지와 티셔츠를 사주었다. 유치원에 입고 갈 긴 원피스가 없다며 불만을 늘어놓는 막내딸에게는 추석빔 찬스를 이용해 샬랄라 원피스를 사주었다. 내 것도 하나 살까 잠시 망설였지만 혼자 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남편 것만 사지 않는 것이 맘에 걸려 그냥 맘을 접었다. 나의 옷을 사는 것보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느낄 소외감이 불편했다. 

추석빔으로 일단 아이들 기분을 맞춰 주고 나니 당장 연휴기간 먹을 음식이 걱정이었다. 일상적인 반찬을 먹는다고 불평할 아이들도, 남편도 아니지만 내 마음이 허전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명절 음식 한 개씩만 해보자’ 

 결혼 후 처음 차례 상에 올린 부산식 탕국은 특별했다. 소고기, 홍합 살, 바지락, 어묵, 곤약, 오징어, 무 등등 다양한 재료에 소금, 간장으로만 간을 맞춘 탕국은 시원하면서 담백했다. 남편은 탕국을 무진장 좋아한다. 그래서 명절 기분 낼 겸 차례는 없지만 탕국을 끓여서 먹기로 결정. 

 큰 아들은 입맛이 은근히 까다롭다. 비린 것을 싫어해 해산물을 먹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육고기를 즐기는데, 한우는 비싸니 호주산 소고기 육전을 해보기로 결정. 

 작은 아들은 몇 달 전부터 새우튀김을 먹고 싶어 했다. 며칠 전 튀기기만 하면 되는 냉동 새우튀김을 마트에서 사 와 해준 적이 있었다. 몇 개 먹어보더니 아들은 너무 느끼하단다. 새우는 작고 튀김옷이 너무 많다며 느끼하지 않은 외할머니식 새우튀김이 먹고 싶다 했다. 어차피 기름 냄새 내는 김에 작은 아들이 원하는 큰 생새우를 사 와서 튀김옷 얇게 입혀 새우튀김도 해보자. 

 막내딸은 엘리베이터 광고판에 나온 송편을 보더니 너무 맛있겠다며 엄마도 만들 수 있냐고 몇 번씩 물어본다. 

‘아... 송편은 자신 없는데.....’

그래도 막내 먹고 싶어 하는 것도 하나는 해야지 싶어 송편을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부산식 탕국,  큰 아들 좋아하는 육전, 작은 아들 취향저격 새우튀김,  막내딸과 함께 빚으며 놀기를 겸하는 송편, 그리고 연휴 기간 동안 구워 먹을 LA 갈비까지 만들어 기름 냄새 풍기는 명절을 보냈다.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네가 좋아하는 것은?”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안 먹는 게 좋아”

올해 집콕 명절에는 아무도 나에게 명절 음식 준비를 강요하지 않았다. 명절의 가사노동을 운운하던 내가 자처해서 손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오히려 집에서 명절 음식을 만드는 내 모습에 남편은 맘이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왜?”냐고 물었다. 음식을 만들며 친정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 자식들 입맛에 맞게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했던 엄마의 맘이 헤아려졌다. 자식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자식들이 명절처럼 잘 보내고 가기를 바랐던 엄마의 마음으로 누가 시키지 않는 그 수고스러움을 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내 몸의 수고스러움만 보고 있다면 오히려 서운할 것 같았다. 


 얼마 전, 세 아들을 키우는 시집간 외동딸을 위해 친정 부모님이 음식을 싸들고 차로 두세 시간을 달려 딸 집에 도착하여, 행여 군인인 사위에게 코로나 19로 신경이 쓰일까 싶어 문 앞에서 음식만 남겨놓고 문자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글로 읽었다. 그 친구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그 이상의 복잡한 감정들로 결국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글을 읽으며 난 그 친구의 엄마 마음은 친구 마음만큼 그렇게 속상하거나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번 추석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가족을 위해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엄마였던 나는 친정엄마와 그 친구 엄마의 마음을 함께 떠 올려봤다. 누구에겐 그 음식을 만드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고 손 많이 가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오랜 시간 해온 누군가에게는 그저 맘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난 이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내 마음을 전달해본다. 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내 몸의 수고로움 보다도 그 마음을 먼저 알아주기를 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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