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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Oct 07. 2020

요가, 그것이 알고 싶다.

나의 열정을 찾아서... 


 난 요가를 좋아한다. 지난 5년 동안 요가를 위해 나의 시간, 노력, 돈을 들였다. 요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매트 위에서 아사나(요가 자세)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 하나하나를 살펴야 한다. ‘오른쪽 다리에 비해 왼쪽 다리는 힘이 없네.’, ‘오른쪽 어깨 근육이 더 굳어 있구나.’ 내 몸을 전체가 아닌 각 부분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마음 분리도 가능해진다. 그냥 ‘화가 난다’가 아니라 ‘억울하다’, ‘섭섭하다’, ‘수치스럽다’ 등등의 여러 가지 감정으로 세분화시킬 수 있다. ‘움직이는 명상’이라 불리는 빈야사 요가 시간에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갑자기 울컥한 경험이 몇 번 있다. 며칠 전 사춘기 아들과 싸우며 속상했던 내 마음의 정체가 선명해지며, 그 마음을 인정하고 보듬는 순간이 매트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호흡은 요가 수업마다 언급된다. “불편한 쪽으로 호흡을 보내세요.”, “숨 쉬세요.” 코나 입으로 들여 마신 산소는 폐로 모여 모세혈관과 가스 교환이 일어나 혈액을 통해 각 조직으로 산소가 전달된다는 사실은 중고등학교 시절 생물 시간에 익히 배운 내용이다. 그런데 불편한 곳으로 호흡을 보내라니.......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보내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아프거나 뻣뻣한 부분을 떠올리며 호흡을 하면 신기하게도 그 부분의 불편감이 줄어들고 움직임도 쉬워진다. 물론 나만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이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나의 몸에 관심을 기울이며 어루만지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또 요가가 좋다. 남들은 모르는 작은 변화가 땀, 시간과 함께 쌓이면 그토록 원하는 아사나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1.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머리로 서기) 

무릎을 꿇고 앉아 정수리와 이마 사이를 바닥에 대고 두 손깍지 끼워 머리를 감싼다. 엉덩이를 높게 쳐들고 복부에 힘을 줘 머리 쪽으로 두 다리가 걸어오다 보면 어느 순간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다. 이때부터 균형을 잡으며 천천히 척추를 곧게 펴고 다리를 들어 올리면 바로 시르사 아사나가 완성된다. 그렇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다.

요가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한 번은 꿈꾸는 시르사 아사나를 위해 나도 꾸준히 연습했다. 일 년의 시간이 걸려 성공한 시르사 아사나는 편안하게 멈추어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손과 어깨는 가볍도록 힘을 빼야 하고, 갈비뼈는 모아주며 복부의 힘은 유지해야 한다. 그뿐인가? 골반은 앞으로 밀고 다리는 쭉 펴 발끝을 하늘 향해 뻗어주며 숨은 계속 쉬어야 한다. 연결된 몸이라 갈비뼈를 모으면 다리가 앞으로 떨어지고, 골반을 앞으로 밀면 몸 전체가 흔들린다. 오롯이 내 몸에 집중하여 이완이 필요한 부분에는 힘을 빼주고 수축이 필요한 부분에는 힘을 줘본다. 이때 또 알게 된다. 힘을 빼는 것이 힘을 주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고 나의 모든 신경은 몸의 각 부분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잡념이 끼어 들 여유가 없다.

시르사 아사나가 멈춤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균형 잡기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내 삶이 조금씩 흔들리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흔들림 속에서도 어느 부분에 맘을 들여야 하고, 어느 시점에서 맘을 비워야 하는지 알아차리려 애를 써본다.


    #2. 우스트라 아사나(낙타자세)

무릎으로 바닥에 선다. 무릎부터 골반까지 쫙 펴주면서 엉덩이 근육은 조여 준다. 서서히 상체를 후굴(척추를 뒤쪽으로 넘김)하여 두 손으로 발을 잡는다. 처음엔 어떻게든 아사나를 흉내 내려 애를 쓴다. 허리는 부러질 듯 뻐근하고 숨 쉬기도 힘들다. ‘난 허리가 유연하지 않은가 봐’라 생각했고, 아사나가 되는 옆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팔이 기니까...’, ‘저 사람은 허리가 유연하니까 쉽게 되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합리화시켜 내 몸의 한계를 만들면 더 이상의 아사나는 불가능하다.

요가에서 후굴을 잘하기 위해서는 좁아져 있는 척추 마디마디에 공간을 만들기 위해 척추를 곧게 펴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다음 척추가 충분히 늘어나 있는 상태에서 흉추가 있는 가슴 부위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려야 한다. 길게 이어진 척추를 분리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리 부분인 요추는 최대한 꺾이지 않도록 버텨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등허리 근육의 힘이 있어야 한다. 척추의 유연성만으로 우스트라 아사나에 금방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는 어렵다. 처음엔 유연성이 없더라도 꾸준한 연습으로 허리 근육의 힘을 키우고 흉추의 움직임을 분리할 수 있으며, 골반 뼈와 엉덩이 근육 각 부분을 필요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단단한 우스트라 아사나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팔 길이 따위는 아무 상관없음을 알게 된다. 

우스트라 아사나를 통해 타고난 유연성보다 어떻게 유연성이 만들어지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공간과 근육의 힘이 밑바탕이 되어 획득한 척추의 유연성은 더 어려운 아사나를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면, 유연성을 키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타인에게 유연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에 공간이 있어야 하고 마음 근육이 단단해야 한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약해지듯이, 마음도 다스리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쉽게 무너져 버리곤 한다. 그래서 삶을 위해 나의 구원이기도 한 요가를 하고 싶어 매트 위에 다시 선다.




매트 위에서는 내 몸과 마음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 순간에 집중하여 땀 흘리고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열심’이라면, ‘열심’이 반복되어 대상의 본질(요가에서 각 아사나가 나에게 주는 의미)에 가까이 다가설 때 비로소 나의 요가에 ‘열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된다. 이아림 작가는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에서,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옆 사람이 나보다 잘하는 걸 보면 질투가 나며, 노력해도 모자란 게 느껴져 서글프면서도, 아주 조금씩 나가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요가와 삶은 닮았다’라고 말한다. 나 또한 매트 위 요가를 이제 내 삶으로 연결하고 싶다. 나의 요가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시작하여 ‘근육은 연금이다’를 거쳐 ‘요가와 삶의 연결’이라는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매일 요가매트에서 몸을 움직일 때 비로소 요가는 내 삶으로 이어질 힘이 되어준다. 오늘도 열심과 열정 사이를 오가며 돈, 시간, 노력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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