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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Oct 18. 2020

<아빠 뭐해요? 시 쓴다>

아름다운 기억 

 아빠는 몇 해 전 삼차신경통 진단을 받았다. 제5번 뇌신경인 삼차신경은 세 갈래로 나뉘어 얼굴 감각을 담당하는데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날카로운 안면 통증으로 아빠는 힘들어했다. 통증 때문에 음식을 씹을 수도 없고, 입 벌리는 것조차 힘들어할 때도 있었다. 때론 ‘딱 죽고 싶을 만큼 아프다’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찬바람 같은 자극은 통증의 원인이 돼서 겨울이 되면 아빠는 자연스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아빠가 마음에 걸려 2018년 12월, 필사를 위한 시집 김소월 <진달래 꽃>,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지용 <향수>를 골라 대구에 사는 아빠에게 선물로 보내드렸다. 

“아빠, 뭐해요? 내가 보낸 책 잘 읽고 있어요? 심심하면 필사도 해 보시구요.”

“어떤 시는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초등학교도 겨우 나온 내가 읽기에는 어려워”

“아빠, 시라는 것이 몇 개 읽다가 한 개라도 마음이 움직이며 그걸로 충분해요. 나도 다 이해하지는 못해요.”       


얼마 후 설날, 친정집에 간 나는 ‘딸내미가 검사 좀 해야겠네’라고 너스레를 떨며 선물한 시집을 펼쳐보았다. ‘선희야, 너무 힘들더라, 딸내미 숙제가 어려워’라며 옆에서 미리 엄살을 부리는 아빠. 시집 필사를 위한 빈 공간에는 칠십 평생 동안 ‘시’라는 것을 읽거나 써 본 적 없는 아빠의 자작시가 적혀 있었다. 

“힘들만하네... 하하하. 난 시를 베껴 쓰라며 준 건데, 아빠가 직접 시를 짓고 있으니 힘들고 말고 지.”

 힘들었던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내용으로 연과 행 구분 없이 쭉 써 내려간 아빠의 시. 그 자리에서 시집에 있는 시를 예로 들어 아빠에게 연과 행을 설명했고, 아빠의 시로 연, 행을 나누어 보았다. 이후에도 아빠는 여동생이 갖다 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읽고 쉬운 말로도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시를 썼다고 했다.      


 대구에 있는 아빠는 서울에 사는 나에게 카카오 톡을 통해 안부를 묻기도 하고 수시로 아빠의 시를 보내주었다. 난 틀린 맞춤법도 알려주고, 행과 연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때로는 아빠의 시를 온전히 감상하며 놀라기도 했다. ‘우리 아빠에게 이런 감성이 있다니!’ 아빠는 그 해 겨울, 봄, 여름을 그렇게 시를 쓰며 보냈다.     

 

 아빠가 열 살이 되기 전 할머니는 결핵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홀아버지 아래서 4남매 중 둘째로 자란 아빠는 젖먹이 때 엄마를 잃은 막내 여동생에 대한 안쓰러움을 우리 자식들에게 표현하곤 했었다. 이렇게 아빠에게 들었던 옛이야기들은 시가 되었고, 가난하고, 못 배우고, 엄마 없이 살았던 서러운 유년시절 이야기는 수십 편의 시로 태어났다. 아빠는 농담 삼아 “선희야, 나 이러다 시인되는 것 아니야?”라며 시 쓰는 자신의 모습을 신기하게 여겼다. 아빠의 시가 공책, 휴대폰 메모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가족들만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어 나는 인쇄된 아빠의 시집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아빠의 시집 만들기 프로젝트!!      


 2019년 여름방학 때, 아빠를 서울 집으로 초대했다. 한 자 한 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옮겨진 아빠의 시 노트는 3권이나 되었다. 이렇게 많은 시를 단 몇 달 동안 쓰다니 평생 못다 한 말들을 시로 쏟아 냈다고 생각하니 울컥함이 밀려왔다. 그 많은 시 중에서 단 마흔 편만 시집에 넣기로 했다. ‘어떤 자식이 더 이뻐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처럼 아빠는 힘겹게 마흔 편의 시를 골랐고 다시 퇴고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책 만들기 사이트를 찾아내 파일 업로드를 위해 노트의 시를 한글파일로 만들었다. 우리들만의 시집 만들기 프로젝트는 재밌고 신나는 놀이였다. 즐거운 일에는 아이디어도 팡팡 터졌다. 남편이 취미 삼아 찍어 둔 사진을 함께 넣으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슬쩍 물어보니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수천 장의 사진 중에 시에 어울리는 것으로 마흔 장을 골랐다. 아빠는 시를 쓰고, 사위는 사진을 찍으며, 딸은 그것들을 연결하여 시집을 만들었다.   

   

 2019년 8월 27일 택배가 도착했다. 아빠의 첫 시집 50권. <그 새벽, 초혼>으로 아빠의 시집은 시작된다.  

     


                                      <그 새벽,   초혼>

                                                                                         천명철 


한여름 새벽

다급한 목소리로 

한 장년이 

소리를 지른다


명철아 일어나라


장년은

그보다 다섯 살 어린 여인의 

목을 껴안고 

꽂혀진 비녀 풀며 외친다


여보, 당신 정신 차려


장년은 

손가락으로 

여인의 목구멍을 후벼내니

붉은 핏덩이가 나오고 여인은 눈을 감았다


장년은 

밥 세 접시 상위에 올리고 

년.월.일. 고하며 처마 끝에 선다


겉옷을 집어 들고 

복(復), 복(復), 복(復)

천대봉 집 앞으로 

외친 후 지붕 위로 던진다


초혼을 부르니 

이윽고 

통곡소리 새벽을 깨운다


첫 돌 지난 여동생

어머니 젖가슴 찾아 헤매며 울고

마을 아낙네들 눈물 짓는다


칠십의 소년은

오늘도 

그 장년에게 말을 건넨다


아버지, 

그 슬픔 안고 

참 힘들게 

살다 갔소


이재호 作



 2019년 추석,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시집 <아빠 뭐해요? 시 쓴다>의 작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아빠의 시집을 보고 가족들은 놀라움과 축하를 동시에 표현했다. 그리고 말없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는 아빠의 시는 자식들을 울컥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맏딸인 언니는 “정말 잘했다”라며 나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했다. 오 남매 부부들은 각자 좋아하는 시도 달랐다. 아빠는 쑥스러우면서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 날의 울컥함과 행복감은 나에게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     


가족 모임에서 용기를 얻은 아빠는 친척들에게도 자신의 시집을 선보였다. 시집을 읽은 고모가 엄청 울었다는 이야기, 시집을 처음 받았을 때의 의구심이 감동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이야기, 조카며느리로 부터 받은 카카오 톡 후기, 딸 친구로부터 받은 후기들로 한동안 아빠는 시집을 낸 작가의 삶을 즐기셨다. 아빠는 가끔씩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나간다. 어린 시절 가난하고 불쌍했던 친구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멋진 친구가 되었다는 아빠. 동창 중 실제로 시인으로 등단한 친구 분이 있는데, 두 사람이 영월에서 만나 서로의 시를 읽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후기까지. 50권으로 부족하여 2쇄까지 했던 아빠의 첫 시집 <아빠 뭐해요? 시 쓴다>는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여전히 아빠는 시를 쓰고 있다. 아빠의 시는 어린 시절의 아픔, 서러움,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일상에서 찾은 아름다움과 오랜 세월을 겪은 사람의 시선을 담고 있다. 시를 쓰면서 평범하게 보였던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방에 누워 형광등만 보고 있어도 시가 떠오른다는 아빠. 

카톡! 카톡! 안부와 함께 아빠의 시 한 편이 배달된다. 난 더 이상 연과 행을 나누는 방법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읽고 그냥 느끼면 된다. 아빠는 이제 시인이니까.          


  



                                              <열기와 연기>     

                                                                                               천명철

          


이재호 作

열기는 땀을 뽑아내고

연기는 눈물을 뽑아내고     


열기는 뜨겁다 말하고

연기는 맵다고 말하네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열기처럼 뜨겁게 살다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열기와 연기는 같은 방을 쓰는구나              




      

-본문에 소개된 시와 사진은 <아빠 뭐해요? 시 쓴다>에서 발췌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제목배경 사진 또한 이재호님의 사진임을 밝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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