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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Nov 20. 2020

김장 썰 풀기


#D-?

몇 년 전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지역 산골 서벽이라는 곳으로 셋째 여동생이 귀농을 했다. 한 달 전, 동생네 배추 농사가 잘 되었다며 배추를 절여 택배로 부쳐준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배추 절이고 헹구는 것이 김장 노동의 반이라는 것을 알기에 서울에서 넙죽 받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나의 노동을 덜 수 있었지만 부모에게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늘 서울에서 한살림을 통해 절임배추를 구입하여 혼자서 김장을 담갔던 나도 올해는 친정식구들과 서벽에 모여 김장을 담그기로 했다. 엄마는 몇 주 전부터 마늘, 생강, 생새우, 새우젓, 디포리, 황태머리, 다시마 등 김장에 들어갈 것을 생각해내고 수시로 장을 봤을 것이다.



#D-4

여동생과 칠십 노부모는 밭에서 백 포기 넘는 김장배추를 뽑아 마당으로 옮겨놓았을 것이다. 나 오십 포기, 언니네 스물 포기, 엄마네 와 나머지 동생 셋이 합해서 60포기를 계획했었다. 엄청난 양의 배추를 뽑고, 나르고, 손질을 했을 것이다. 난 서울, 언니와 남동생은 구미, 막내 여동생은 대구에 있어 이 작업에 힘을 보탤 수 없었다. 셋째와 칠십 노부모의 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힘듦을 아주 조금 짐작할 뿐이다.


#D-2

셋째 여동생과 함께, 혹은 엄마, 아빠 둘이서 사람 몇 명은 들어갈 정도의 깊고 넓은 빨간 고무 대야에 소금물을 풀어 배추를 하나씩 갈라서 꼼꼼히 절였을 것이다. 무한 번 굽혔다 편 허리, 배추를 자르는 어깨와 손목에 통증이 있었을 것이다. 칠십의 엄마, 아빠가 자식들 김장하러 온다고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 같아 자꾸 마음이 쓰인다. 엄마는 수시로 절임배추를 들여다보며 배추의 자리를 위아래 바꿔주었을 것이다.

“엄마 배추는 너무 절여져서 싫어. 우리 집은 살짝 덜 절인 것 좋아해. 그래야 맛있어”라고 올해 처음으로 김장에 합류하기로 한 둘째 딸의 잔소리가 신경이 쓰여 한 번 들여다볼 것도 두세 번 손길을 주었을 것이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각자 입맛이 달라 할 수 있는 한 좋아하는 것에 맞춰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D-1

김장 하루 전, 막내딸과 둘째 아들을 데리고 서둘러 서울을 떠나 동생 집으로 향했다. 금요일이라 직장생활하는 여동생은 아마 집에 없을 것이고 엄마, 아빠만 마당 한가득 채워진 배추를 마주하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 오후 네 시에 도착했다. 산골이라 곧 해가 넘어갈 것 같아 마음이 바빴다. 엄마는 벌써 배추를 헹구고 있었다. 자동차에서 짐도 안 내리고 고무장갑을 꼈다. 늑장을 부리다가는 엄마 혼자 다 해치울 것 같았고, 해가 지면 추워질 것 같아 서둘렀다. 당연히 반복되는 동작에 허리가 아팠다. 마흔 중반의 나도 이런데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한 지 1년도 안된 엄마는 오죽할까?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 엄마다. 이렇게 약간은 무모하게 씩씩한 엄마의 모습에 익숙하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자식들 걱정할까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함께 내려간 둘째 아들을 불러 고무장갑을 건넸다. 허리를 많이 굽혀 배추를 씻어야 하는 쪽에는 아들이, 그리고 서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에는 내가 자리를 잡아 속도를 높였다. 엄마는 이제 전체적인 흐름을 조절하는 자리로 물러났다. 셋이서 하니 해 지기 전에 배추 헹구기는 끝났다. 이제 하룻밤 물을 빼야 한다. 무, 갓, 쪽파, 대파, 양파는 미리 손질하여 씻어둔 엄마의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의 김장준비는 여기서 끝낼 수 있었다.

아빠는 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절여진 배춧잎 조각을 모으고 빨간 대야를 씻고 뒷정리를 도맡았다. 난 서둘러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손 빠른 엄마가 손주들 왔다며 저녁식사에 또 공을 들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도 나도, 이 정도면 오늘 할 가사노동은 충분하니까.    


#D-day

커다란 포장비닐로 방바닥을 다 덮을 정도로 넓게 깔았다. 그 위에 신문지를 덧 대고 엄마가 만들 김장양념용 빨간 대야, 나의 김장양념용 빨간 대야를 각각 준비했다. 믹서기 두 대, 육수, 생강, 마늘, 갓, 무, 쪽파, 대파, 양파, 당근, 새우젓, 까나리젓, 황석어젓, 고춧가루, 찹쌀풀을 옆에 함께 두었다.

엄마는 눈으로 척척, 손대중으로 대충 감을 잡아가며 양념을 만들었다. 난 이제 겨우 7년 차 김장이라, 엄청난 양의 양념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이컵도 있어야 하고 야채는 개수를 세어야 한다. 또한 젓갈은  킬로그램을 대충이라도 짐작해야 가능하다. 양념을 준비하고 있으니 아침 일찍 구미에서 출발한 남동생 부부와 조카가 도착했다. 남동생과 아빠는 마당에 나가 물이 빠진 배추 꼭지 손질을 하여 집안으로 나르는 일을 담당했다. 임신 중인 올케는 한편에  앉아 있다 잔심부름을 맡았다. 드디어 각자 양념이 만들어졌고 배추를 버무려 준비해 온 김치통에 담기 시작했다.    

내년 김장철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는 나는 둘째 아들을 위층에서 불러 내렸다. 아들은 양념을 버무리고 난 버무리기 혹은 김치 통에 담는 작업을 반복했다. 셋째 여동생은 엄마랑 합세해서 그들의 김장을 완성시켜갔다.

점심 식사 때가 되어간다. 구미에 사는 언니네가 도착했다. 형부와 제부는 마당에 장작을 피워 수육을 삶고 숯불을 피워 닭꼬치를 굽기 시작했다. 언니는 준비된 재료로 그 집의 양념을 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서 김장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양념 맛은 모두 달랐다. 그 래서 김장은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다. 김장이라는 같은 이름이지만 집집마다 다른 맛. 번거롭지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 때 엄마의 김치가 가장 맛있었다. 하지만 시집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겪으며 난 친정보다 젓갈을 많이 사용하는 양념에 길들여졌다. 언니는 저울까지 갖다 놓고 자신의 가족들 입맛에 맞는 양념을 만들었다. 스스로 양념을 만들 엄두를 못 내거나 필요한 김장 양이 적은 자식들은 엄마 양념에 만족한다. 작년 겨울 엄마의 무릎 수술로 여동생 둘이서 김장을 거뜬히 해낸 것을 보면 못하기보다는 그냥 엄마의 뜻을 따라주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게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여섯 가구의 김장이 끝났다. 대구에 사는 넷째 여동생은 이제야 도착했다. 각자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했는지 누구보다도 더 뒷정리에 열을 올린다. 여럿이라 뒷정리도 후다닥 끝났다. 모여있는 주부만 여섯이고 혼자 멀찍이 물러나 앉아있는 남자들도 없어 각자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리하니 금새 끝이 보였다. 그렇게 유네스코 지정 한국 무형문화유산 김장이 끝났다. 1남 4녀 자식들의 김장을 몇 주 전부터 기획한 엄마의 작품은 막을 내렸다.    




#김장을 담그며 스치는 생각들.

엄청난 양의 김장을 해내는 일은 주부의 역량이 드러나는 일이다. 엄마는 수십 년 김장을 담가 왔으며 그 노하우가 온전히 체화되어 있었다. 김장 독립에 나선 지 7년 차인 둘째 딸은 제법 자신의 색이 드러나는 양념을 만들 수 있었고, 김장 독립 3년 차인 첫째는 결혼 전 요리와 멀었던 사람이 더 이상 아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번 김장에서는 우리 자식들은 김장양념 독립일뿐, 여전히 엄마의 노동을 먹고살고 있었다.

오 남매를 키워 내느라 평소에도 음식양이 많은 엄마는 늘 딸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음식 양 좀 줄이라는... 김장을 총괄한 엄마는 혹시 딸들의 겨울 김치 또는 일 년 김치를 망칠까 봐 모든 재료를 아주 넉넉히 준비했고, 엄마 혼자 하는 것보다 정성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육수만 하더라도 행여 맛이 부족할까? 양이 부족할까?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이제 그 모든 것이 중년 딸의 눈에 보여 잔소리도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변수가 생기면 또 엄마 탓을 슬며시 해보는 자식들...

올해와 같은 김장이 우리에게 앞으로 몇 번 더 있을까? 엄마의 총감독 역할을 어쩌면 기꺼이 받아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쯤 동네 아주머니와 백 포기 넘는 김장 썰을 풀어놓고 있을지도 모를 엄마를 떠올려본다. 주부는, 엄마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에 누군가는 엄마에게 “엄지 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배추값이라고 엄마 계좌에 소액을 입금하면서, 고생했다고 전화기 넘어 한마디 던지면서 울컥해진다.

엄마의 무한 노동과 마음씀이 담겨 있는 김장김치, 무거운 것을 옮기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찬물에 손 담그며 허드렛일을 맡아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품은 올해 김장김치는 어떤 맛일까?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제 차에 실어서 서울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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