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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Nov 25. 2020

사랑초는 사랑입니다

사랑초는 부산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시어머니 남향 아파트에 살았다. 몇해 전 시어머니는 한 움큼 뽑아 나에게 건넸다. 식물 기르기를 좋아하는 나를 알아본 거다. 휴지에 둘둘 싸여 상경한 사랑초는 축 늘어져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빨리 화분으로 옮겨 심고 물을 주었는데 여전히 늘어져 있었다. 물을 빨아들여 언제 축 늘어졌냐는 듯 벌떡 서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렸다. 좀처럼 쉽게 일어서지 못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가니, 대부분의 녀석들이 중력을 이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안착한 사랑초.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우리 집은 북서향이다. 부산 집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일조량이지만 계절에 맞춰 풍성하게 번식과 휴식을 해가며 잘 자랐던 사랑초. 올여름 길었던 장마에도 잘 견딘 사랑초가 가을을 지나가며 눈에 띄게 생명력을 잃어갔다. 자줏빛 잎에는 희끄무리 또는 거뭇거뭇한 흔적들이 생겼다. 하나둘 생기나 싶더니 앓는 잎들이 늘어났다. 물? 햇빛? 환기?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은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녀석들 위주로 제거했다. 풍성했던 사랑초가 듬성듬성 해졌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식물 키우기에는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아픈 녀석들을 제거하고 화분이 놓여 있는 공간에 변화를 주었다. 주방 베란다는 남동향이라 오전에는 생명력 가득한 햇빛이 들어온다. 그곳에 두고 좀 더 자주 들여다보았다. 역시 일조량이 문제였는지 아팠던 부분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고맙다. 스스로 회복하는 듯해서. 

 겨울이 되면 기력이 더 떨어지는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건네 준 사랑초가 시들어가는 것에 감정이입이 되어 괴로웠다. 꼭 잘 키우고 싶었다. 싱크대 앞 창가로 옮겼다. 매일 빛을 받게 하고 수시로 물이 적은 지 확인했다. 싱크대 위 창문은 항상 열어놓기에 환기도 잘 되었다. 

사랑초에서 다시 꽃이 피기 시작했다. 뿌리에서 번식이 되는지 새로운 줄기가 쏙쏙 고개를 내민다. 계절이 겨울 초입이라 그런지 여름처럼 빠른 성장을 보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 보였다. 안심이 된다. 햇빛 가득 머금은 사랑초를 보고 있으니 행복감과 안도감이 함께 내려앉는다. 고마워. 잘 견뎌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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