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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Jul 24. 2020

내 유년시절의 특별한 곳, 그들



 엄마는 지난겨울 무릎 수술을 받은 후 퇴원해서 서울 외손녀의 방에 머물며 재활의 시간을 보냈다.   작은 방에서 엄마와 함께 지냈던 또 한 사람, 나의 아빠. 아빠는 엄마가 마시기 쉽게 침대 옆에 둔 물병과 엄마의 수면 무호흡증 치료를 위해 사용 중인 양압 호흡기 물통의 물을 매일 채워주었다. 그리고 수술한 인공관절 재활운동을 위해 대여한 무거운 기계를 매일 침대에 올렸다 바닥에 내렸다 하는 일까지 하루 종일 엄마를 돌보았다. 아침 일찍 외출하는 딸을 대신하여 엄마와의 점심 식사도 챙기고, 딸이 알려 준 운동방법을 엄마가 순서대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구령도 붙여주고 다리를 잡아 주는 일까지 아빠는 할 일이 많았다. 바빠 보이는 딸을 위해 설거지, 청소까지 해놓는 우렁각시 역할까지 자처했던 아빠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바깥 온도가 평소보다 더 내려가기 시작하자 한동안 잠잠했던 아빠의 삼차신경통 통증이 자주 찾아왔다.  신경성 통증이라 전기가 흐르듯 찌릿찌릿하고 음식을 씹지도 못할 정도의 통증이 자주 아빠를 괴롭혔다.  아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비상약으로 갖고 다니던 약을 며칠 전부터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약을 먹으면 통증을 잊을 수 있는 대신 깨어있는 시간을 잃게 된다. 거의 약기운에 취해 하루 종일 잠을 잔다. 믹스커피 몇 잔을 마셔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아빠는 봄날의 병든 병아리처럼 맥없이 앉아 졸고 있거나 소파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아빠는 저녁 시간에 시작된 통증으로 살아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잠만 잔다고 표현했던 약을 복용하였고 맥없이 손녀의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이불 더미에 기대에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이불을 대충 펴서 베개를 놓아 아빠가 바로 누울 수 있도록 했다. 아빠는 잠에 취해 비몽사몽 고쳐 눕더니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그날 저녁은 아빠가 엄마의 운동을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아 내가 엄마의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 달걀 깨기 운동부터 시작할게. 하나, 둘, 셋, 넷,.......”
 “쌔~액, 크흐흐”
 “그다음 다리 들기 운동, 하나, 둘, 셋, 넷.......”
 “크흐흑........”
 엄마의 재활운동에 구령을 붙이는 나의 목소리와 아빠가 약에 취해 잠들어 새어 나오는 소리가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가끔씩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의 한숨 소리도 섞였다.
 “휴우...... 아흐....”
 그 작은 방에 세 사람의 소리가 섞여서 날아다닌다. 소리들은 사라지지 않고 공중에 떠있어 방안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고 있었고 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엄마에게 한마디 건넸다.
 “엄마는 다시 잘 걸으려고 아픈데도 죽으라 운동하고, 아빠는 통증으로 약에 취해 잠들어있고... 사는 게 참 힘든 거다. 그치?”
 엄마도 이 상황이 어이없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그래”라고 답했다.
 맥없이 잠들어 있는 남편을 향한 안쓰러움, 웃고 있으면서도 서글픔이 묻어나는 엄마의 표정, 이 모든 상황을 모르고 통증만이 없기를 바라며 꿈나라에 있을 아빠의 모습.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 서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뜨거운 울컥함이 올라왔다. 
 ‘이 사람들의 젊은 시절이 내 유년 시절의 특별한 곳이었구나’
 그들의 젊음을 삼켜 성장한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맡에 베개를 놓아주고,  다리 운동에 구령을 붙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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