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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Aug 08. 2020

<열 문장 글쓰기 모음>

<별 이야기>

자식 키우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기말고사 둘째 날 공부한 것보다 성적이 좋지 않다며 집에 오자마자 대성통곡이다. 

참 별 일이다. 

인생 살다 보면 기말고사 한 번 망친 것은 별 일 아니라고 말했다가 아이의 화만 더 돋웠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감정 조절 잘하는 게  더 중요하다 했지만 소용없었다. 

별별 방법 다 써봤는데 아이의 실망과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나 혼자서 도저히 감당 안 되어 별 수 없이 남편을 불러들였다. 

남편은 울고 있는 아들에게 담담히 별같이 반짝이는 말들을 해주었다. 

석가모니가 샛별을 보며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남편의 말이 샛별처럼 아이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한우산 꼭대기에 남편과 별 보러 와서 지나면 별 일 아니고 당시에는 별 일이었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어제로 돌아간다면>

아들아,  


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발 돌아와 달라고 기도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의 황제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없다. 

아갈 수 없기에 오늘이 소중하다. 

들이 그 사실을 뼈아프게 이해했으면 좋겠는데. 

간히  정신을 차릴 때도 있는데 

시 원래의 일상으로 쉽사리 돌아가 버린다.

도할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모르고 있으니 


어제로 돌아갈 수 없는 내 삶이라도 챙겨야겠다.




<개와 고양이에게 하고 싶은 말>

난 개와 고양이가 무섭다.

털을 쓰다듬을 때 딱딱하게 만져지는 뼈 느낌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분명 어린 시절 가까이했던 경험도 있다.  

요즘처럼 반려 동물이 친숙한 세상에서 난 가끔 이방인 같다.  

난 무섭다. 

길거리에서 아무리 작은 개를 만나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다른 길을 돌아서 간다. 

차라리 사람을 알아서 피하는 고양이는 좀 나은데 반갑다고 달려드는 개는 정말 속수무책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주인이 안고 있는 개도 무섭다. 

그래서 애써 개와 주인에게 설명한다. 

"어우... 미안, 아줌마는 네가 싫은 게 아니고 무서운 거야"

난 개를 통해 사람들의 취향인 '그냥 싫다, 그냥 무섭다'란 말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장소>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려준 곳.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해야 했던 곳. 

한 사람이 동시에 얼마나 많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그 능력을 키워준 곳. 

내가 없어지면 안 될 것 같지만 내가 없어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서 굴러간다는 것을 알려준 곳. 

밖에서 보면 혼란스럽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곳. 

힘들수록 사람은 사람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 곳. 

사람이 세상에 나오고 성장하고 아프고 죽는 것을 내 눈으로 모두 확인한 곳.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목숨이 가장 우선시되었던 곳.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 그곳. 

난 그곳을 응급실이라 쓰고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맘껏 놀고 일했던 놀일터라고 부른다.  





<레시피>

늘어난 고정 지출에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간단 조리 식품, 냉동식품, 배달음식을 줄여본다.  

요즘 제철인 싸고 흔한  감자, 

요리 방법  다양한 두부,

모든 음식에 빠지지 않는 양파,

후다닥 만들기에 좋은 재료 계란, 

일단 양으로 승부하는 콩나물, 

찌개, 국, 볶음, 찜, 볶음밥, 라면, 부침개에서 맹활약 중인 묵은 김장김치. 

이것들로 뺑뺑이 돌려가며 주부 17년 차 경력으로 창조적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나만의 레시피는 돈을 쓰는 대신 싱크대 앞에 서있는 시간을 늘리는 행위이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으니 곧 만개의 레시피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입고 있는 옷 묘사하기>

라벤더 연보라 빛 로브를 벗어라. 

CAMOMILE이라 적혀있는 진 베이지 색 민소매 셔츠를 벗어라.

세상 편함을 뿜어내며 아랫배까지 감싸주는 검정색 와이드 요가 팬츠를 벗어라. 

브래지어는 얼굴에 화장하고 외출하는 날이 아니면 몸에 장착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 

아랫배부터 엉덩이 군살까지 모두 덮을 만큼 넉넉한 시골 할머니 스타일 자주색 팬티를 벗어라. 

욕실 거울 앞에서 긴 숨을 들이마시며 척추 꼬리뼈를 감아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어깨를 뒤로 회전시키며 쇄골을 좌우로 쫙 펴서 가슴뼈가 천장에 닿을 듯 들어 올린다. 

골반부터 가슴이 활짝 열리는 내 몸이 거울 속에 있다.   

기분이 좋아진다. 

겉에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내 몸이 느껴지고 눈에 보일 때 그냥 나 같다. 





<오늘의 날씨>

장기적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구슬픔을 나타내는 말, 멜랑꼴리(melancholy). 

장마전선과 함께 내 감정도 구름 아래에서 좀처럼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빛의 양, 축축한 정도, 공기의 무게 이 모든 것이 한없이 가라앉게 한다.  

곧 호르몬까지 합세하면 그냥 백기를 들고 몸과 마음을 한껏 낮추는 수밖에. 

커피, 차, 음악, 초콜릿, 진통제로 내 몸과 마음을 속이려 해도 소용없다. 

비가 내려야 구름은 그 생명을 다하고 걷힌다. 

내려라, 울어라, 그리고 난 기다린다. 

어젯밤 갑작스럽게 터진 나의 울음, 잠 못 들었던 시간, 잭 다니얼 한 잔. 

버텨야 할 때는 일상이 가장 큰 힘이 되어 준다. 

일단, 요가 가자. 





<동네 서점>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다양한 책, 가끔씩 독서모임 장소 역할까지 해내는 동네책방이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있던 서점까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 

아마 나처럼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많아서일 거다. 

두 아들이 중고생이 되면서부터 겨우 하나 남아있는  한빛서점을 찾기 시작했다. 

근처 학교 교과서에 맞춰 자습서, 평가 문제집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학원 선생님이었던 주인 부부. 

두 자녀를 공부시켰던 경험과 함께 자연스럽게 아이들 학습에 대해 수다를 떨기도 한다. 

막내딸과 함께 가면 캐릭터 지갑을 '턱' 내어 주기도 하고 그 안에 '천 원' 용돈을 넣어 주기도 한다. 

빠름, 편함, 그리고 예측 가능한 온라인 서점과 달리 좀 귀찮고 때론 헛걸음이 될 수 있는 동네서점의 매력은?

사람이 주는 즉흥성, 학교 이름만 대면 출판사의 책을 척척 찾아주는 전문성, 책 말고 이것저것 소소한 구경거리들, 그리고 나를 기억해주는 친숙함이 조금씩 동네서점으로 나를 불러들인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안다. 

글을 써보면 잘 쓴다는 것이, 재밌게 쓴다는 것이, 타인의 삶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쓴다. 

왜냐면 쓰는 것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다.  

안 하면 하고 싶고 일상생활에서도 자꾸 생각나고 틈틈이 시간을 만들어한다는 것은 이미 내가 그 행위를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쓴 글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아들과 남편에게 조금 미안하겠지? 그들의 삶이 너무 드러나 버렸으니까.

도서관 글쓰기 수업  선생님에게 무척 고맙겠지? 나에게 글 쓰는 재미를 알게 해 주었으니까.

내 글을 읽어주었던 사람들이 생각나겠지?  내가 지치지 않고 쓸 수 있게 내 글을 읽어주었으니까.

스스로가 뿌듯하겠지? 작은 관심, 꾸준함, 재미, 몰입,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해냈으니까.  





<10년 후를 상상하며>

제대 후 대학 졸업한 녀석과 졸업할 녀석,

중2병이 거의 완치된 딸, 

그리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왔다. 

제주에서 한 달 살이를 위해 마당이 있는 바닷가 예쁜 집을 빌렸다. 

이른 새벽 여명이 밝아오면 두 아들은 이제 아빠를 깨우지 않고도 새벽 낚시를 나간다. 

난 잠 많은 딸을 깨워 매트를 들고 해변으로 나가 함께 요가를 한다. 

남편은 사진기를 들고 동네 산책하며 꽃이며 풀이며 풍경을 담고 가끔씩 나와 딸의 모습도 찍어준다.  

가족이 다시 모인 오전 11시, 자주 찾는 브런치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하도리 철새 도래지에 가서 탐조를 하고, 운이 좋으면 물수리도 볼 수 있다.

남은 시간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하고 헤어진다. 

난 딸과 함께 바닷가도 걷고, 산림욕도 하고, 사춘기 딸의 고민도 들어주고. 

저녁이 되면 근처 항구에 가서 맛있는 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소주 한 잔 곁들여 기분 좋은 만큼 취한다. 

밤이 되면 드디어 세 녀석 모두 각자의 방으로 보내고 남편의 팔베개와 입맞춤으로 잠이 든다. 







<내 생애 마지막 열 문장 쓰기>

10세 이전의 삶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살아남은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10대는 부모님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때론 울타리 밖 일탈로 충분히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20대는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을 했었지. 

30대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나만큼 사랑해야 하는 법을 배웠다. 

40대는 나의 부모처럼 울타리가 되느라 진이 다 빠졌었지. 

50대는 내 몸과 마음이 가장 조화로웠던 시간, 자유로웠던 시간. 

60대는 드디어 우리 집에 성인만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우린 노인의 문을 통과하고 있었지. 

70대는 사는 게 별 것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던 나날들, 가끔씩 밀려드는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이 사무치던 그런 날들. 

80대는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지만 자식 셋이 수십 년 전 나의 시간을 알아줘서 그저 고마운 나날들, 내 옆에 남편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날들. 

이렇게 열 문장으로 정리되는 날들이었는데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썼다. 




<콤플렉스>

어릴 적 우리 집에만 아들이 없는 게 콤플렉스였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때는 심각했다. 

타고난 음치라 사람들 앞에서 부를 노래가 없어 콤플렉스였다. 

음치라는 사실보다 마음의 주눅이 내 목소리를 틀어막고 있었다. 

남들보다 못 배운 부모를 숨겼던 적이 있었다. 

학교 배움보다 삶에서 배우는 게 많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 부끄러움이 부끄럽다. 

까만 닭살 피부, 납작 가슴이 콤플렉스였다. 

사소하다 못해 잊고 살아갈 것들이었는데 그땐 왜 그리 커 보였을까?

열 문장 채우기도 어려운 나의 콤플렉스였던 것들. 

1이 100처럼 느껴졌던 어린 나는 이제 100도 1처럼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

일단 열 문장 글쓰기를 하려 앉았는데 주제 고르는데 30분이 지나갔다. 

이삼십 분이면 완성되었던 열 문장 글쓰기를 위한 주제 선정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삼십 분이 흘러도 '이거다'라고 생각되는 주제가 없어 너는 어떻게 주제를 골랐을까 생각해봤다.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도 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되는 글쓰기는 요가와 비슷한 면이 있다. 

육체와 정신을 함께 쓰는 요가처럼 글쓰기도 머리로는 생각하고 손으로는 쓰기를 해야 한다. 

칠십 퍼센트의 지분은 머리에 있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글쓰기가 힘들다. 

팔에 달린 손끝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일단 시작해본다. 

구간 구간 막혀도 끊임없이 써 내려가다 보면,

십으로 시작하는 마지막 문장을 쓰게 되는 마법 같은 글쓰기는 일단 몸을 움직이고 보는 요가랑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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