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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Aug 05. 2020

봉숭아

손톱 물들이기

내 옆엔 

주위의 것에 무디지만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는 

아주 섬세한 감성을 가진 남자가 있다. 


서른 중반에 

연년생 아들들의 아빠가 되어 

누구보다 엄했고 강한 아빠였다.


그가 

마흔여섯에 

막내딸을 품에 안았다. 


그는 이제 쉰이 넘었고 

여섯 살이 된 막내딸은 

퇴근하는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아빠다” 소리치며 품에 안긴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쫑알쫑알 지저귄다.


그는 

올봄  

인터넷 쇼핑몰에서 꽃씨를 구입했다. 


배달된 씨앗을 직장으로 가져가 

작은 화분에 심었던 그가   

며칠 뒤 

싹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씨앗을 심은 지 

40일 정도가 지난 어느 5월 

나에게 화분 하나를 건넸다.  


작은 화분에는 

막내딸 허리만큼 올라온 줄기에

자주색, 분홍색, 주황색 봉숭아꽃이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라며 

무심히 건네면서

집에서도 

자주 물 주기를 하라고 

잔소리하는 그 사람


나와 딸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는 모습 상상하며 

혼자 빙긋이 딸바보 미소로 물 주기를 했을  

그의 숨겨진 모습


이제는 그의 겉모습에 숨겨진 속모습이 보인다.


봉숭아꽃과 잎을 따는 막내딸 

꽃잎에 소금 넣어 

나무 방망이로 찧고 있으니 

꽃잎을 찧는 것인지 깨소금을 찧는 것인지 

달달하고 고소한 기분이 든다.   

 

아이의 작은 손톱 위에 

그가 키운 봉숭아 꽃잎을 올려놓으며

아빠의 사랑도 함께 

아이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랬다


아이가 노느라 

묶어 놓은 비닐이 벗겨졌지만 

또다시 반복하여 묶어주었다. 

아이의 작은 손톱에 

아빠의 마음이 깊이 물들기를 바라며.      

남은 꽃잎으로 

나의 새끼손톱에도 물을 들인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 첫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딸과 아내를 위해 

씨앗을 심어 봉숭아 꽃을 피워 낸

남편과의 마지막 사랑이 계속되기를 기도하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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