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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Aug 01. 2020

잡채

내가 좀 하지

서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짜내서라도 잘 해내고 싶었던 신혼 시절 남편의 생일상. 다양한 음식은 아니더라도 맛있는 미역국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 하나 정도는 잘 차려주고 싶었다. 남편이 선택한 하나의 메뉴는 잡채. 결혼식장 뷔페나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먹었던 친숙한 메뉴다. 그런데 맛없기도 힘들지만 정말 맛난 잡채를 만나는 것도 힘들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보니 남편 생일날이 아니어도 가끔씩 만들어 먹었던 잡채는 결혼기념일을 맞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잡채를 만들어 먹는 빈도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십오 년 넘게 쌓인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잡채. 그거 내가 좀 하지.

 내가 생각하는 잡채의 핵심은 적당한 간이 되어있는 각각의 재료들과 모두 섞어 놓았을 때 느끼함 없이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이다. 우선 모든 음식이 그렇듯 맛있는 잡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선택이 중요하며 그중 냄새 없는 고기 선택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좋은 고기 선택을 위한 나만의 방법은 십 년 넘게 다니는 단골 식육점에 가서 “잡채 거리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 아이들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오랫동안 거래한 식육점 사장님은 나의 주문에 맞춰 망설임 없이 선홍색 채끝살을 잡채에 어울리게 채 썰어서 건네준다. 씻은 당근보다는 흙당근 한 개, 만져서 단단한 양파 한 개, 시금치 반 단, 좋아하는 종류의 버섯(난 느타리를 선호한다), 마늘, 대파를 준비하고 이름부터 친근한 옛날 당면을 준비한다. 당면에게 잡채의 너무 많은 지분을 내주지는 않는 것도 내가 중요시하는 포인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잡채의 생명은 조화로움이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채끝살을 잠시 양념에 재어 두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청 O원 불고기 양념을 몇 숟가락 덜어 고기랑 조몰락조몰락 해 둔다. 만약 준비한 버섯이 표고버섯이라면 편으로 썰어 고기와 함께 재워두면 표고 향이 고기에 어우러져 좋다. 당근과 양파는 채 썰고 시금치는 데쳐서 나물 요리할 때는 단맛을 내는 붉은 꼭지 부분을 꼭 남겨 놓지만 잡채에서는 적절히 흩어져 균형 있는 색감을 내야 하므로 시금치 한 줄기 한 줄기 낱개로 손질한다. 느타리버섯은 가늘게 찢어 놓는다. 마늘은 편으로 썰고 대파는 가늘게 어슷 썰기를 해 둔다. 마늘은 편으로 썰어 마늘향은 나지만 마늘 씹는 것이 싫은 사람은 피해 갈 수 있고 다져 넣는 것보다 깔끔하게 잡채를 즐길 수 있다. 

 이제부터는 불이 필요한 단계이다. 당근은 너무 많은 기름을 두르지 않고 소금간만 하여 볶아낸다. 그다음은 양파, 버섯도 너무 물러지지 않을 정도로 소금간만 하여 볶는다. 시금치는 살짝 데쳐 소금과 참기름으로 무쳐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념해 둔 고기를 너무 질겨지지 않게 살짝 볶아준다. 잡채에서 가장 어려운 당면 삶기도 시작한다. 넉넉히 준비한 물을 팔팔 끓여 식용유 한 숟가락 넣고 당면을 삶는다. 당면을 삶은 후에도 서로 엉겨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삶는 동안 중간중간 건져내어 확인하여 너무 불지도 않고 꼬들 거리지도 않게 삶아낸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을 맞으며 두 손으로 면을 삭삭 비벼가며 씻은 후 채반에 담아 물기를 빼 준다. 이렇게 삶아낸 당면을 다른 재료들처럼 별도로 양념을 해주어야 한다. 면 양념을 위해 간장 몇 국자를 웍에 붓고 설탕을 충분히 넣어 녹인다. 그다음 준비한 편 마늘을 넣어 마늘 향이 퍼질 때까지 양념을 끓여준다. 그리고 넉넉하게 참기름을 첨가한다. 참기름과 간장, 설탕, 마늘이 끓고 있는 양념에 삶은 당면을 넣고 양념이 스며들게 볶아 준다. 면의 간을 봐가며 부족한 것을 더 첨가하되 절대 짜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 잡채는 섞여서 조화롭게 맛을 내야 하는 음식이라 짜거나 달면 잡채의 매력이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어슷썰기 해둔 대파를 볶던 면에 넣어 열기만으로 익도록 불을 끈다.

마지막 단계이다. 미리 볶아둔 채소와 고기를 넉넉한 양푼에 부은 후 골고루 충분히 섞어 준다. 그다음 양념된 당면을 넣고 전체적으로 어우러지게 잘 버무린다. 마지막으로 통참깨를 인심 좋게 넣어 마무리하면 각 재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요리가 되는 잡채가 완성된다.

각자의 맛이 살아있어야 전체가 맛있어지는 요리. 남편이 좋아해서 만들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잡채가 지니는 매력에 끌려 나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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