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시간

중동, 지하 단칸방, 종이 피아노

by 천지랄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한 번, 초등학생일 때 또 한 번,

두 번, 중동에 다녀오셨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의 나는, 먼 곳에서 일하느라 자주 볼 수 없는 아빠가 그리웠다.

그리움만큼 연필을 꾹꾹 눌러 담아 쓴 편지를 보내면

이따금씩 아빠에게서 답장이 오곤 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제 네 식구가 함께 사는가 싶었다.

하지만 큰아빠의 세탁소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무임금으로 일을 하자니 네 식구의 생계가 여의치 않자,

아빠는 또다시 중동길을 택했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아빠가 중동에서 일한다고 하니,

'그럼, 너희 집 엄청 부자겠구나~'하고 뜻 모를 소리들을 했다.

엄마에게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니 엄마도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가 중동에서 한국집으로 돈을 부치신 적은 없었다.

엄마는 김밥공장과 화장솔 공장을 다니시며 우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아빠가 중동에서 일하는 것과 우리 집이 부잣집일 거라는 추측 사이에는

우리가 체감 수 있는 그 어떤 상관관계도 없었다.


5학년이었던 어느 날, 학교 친구가 귀갓길에 나를 미행했다.

천방지축이었던 나는 신발주머니를 돌리며 신나게 집으로 오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뒤따라오다 지하 단칸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본 그 친구는,

다음 날 학교에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반 친구들에게 생중계했다.

"야, 천지랄네 아빠 중동 가신 거 다 뻥인가 봐! 쟤 지하 단칸방에서 살아. 내가 어제 다 봤어!"

지하 단칸방에서 사는 것만큼 아빠가 중동에 가신 것도 사실이었기에

나는 아빠가 중동에서 일하시는 게 진짜라고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당시 중동에서 일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번 돈으로 집 한 채씩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지랄아, 이제 성가대 반주도 찬송가 말고 성가곡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젠가는 그래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찬송가에 있는 곡들로 성가대 찬양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지루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생각하고 있던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 느낌이었다.

이제야 긴장하지 않고 예배 반주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한숨 돌리고 나니 또 다른 허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성가 지휘자는 찬송가로 성가대 찬양을 하지 않는 대신,

반주 초보인 나를 배려해 비교적 반주가 복잡하지 않은 성가곡집을 선택했다.

다음에 부를 성가곡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었다.


1부 예배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는 교회 언니가 코드를 알면 반주가 쉬워질 거라며 일러주었다.

코드가 뭐냐고 물으니 찬송가와 복음성가집에 표시된 알파벳 같은 걸 가리켰다.

그 알파벳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파벳 옆에 숫자가 붙은 것도 있고

알파벳 소문자가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찬송가의 반주는 한 음 한 음을 꾹꾹 눌러주는 반주라 경건한 다짐 같은 느낌이라면

복음성가곡의 반주는 한 곡 안에서 다양한 화음과 변화, 기교를 경험할 수 있어

연습을 하는 동안 지루함이 덜했다.

'코드를 외우면 정말 반주가 쉬워질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반주가 비교적 쉬운 곡 하나를 다 외워보기로 했다.

반주를 다 외울 즈음엔 자연스레 코드가 뭔지 알게 되었다.

C가 붙어 있을 때 치게 되는 건반들과, F가 붙어 있을 때 치게 되는 건반들이 달랐다.

악보에 나오는 알파벳마다 눌러야 하는 건반들을 분류해 보니 패턴이 보였다.

누구나 다 아는 '학교종이 땡땡땡'의 멜로디에 코드를 대입해 반주를 해보니

생각했던 대로 패턴들이 잘 들어맞았다.


'그럼 멜로디에 따라 코드의 기본 음만 쳐주면 꼭 악보 반주대로 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

됐다.

진작 누군가가 코드를 외우라고 알려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코드를 익히고 나니 너무 경건하기만 하던 찬송가 반주에도 나만의 색깔이 입혀졌다.

코드를 적용해 보는 재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서 연습했다.

집에서도 연습을 하고 싶었지만 온 식구가 누우면 꽉 들어차는 공간에 피아노를 놓을 곳은 없었다.

그보다, 그 비싼 물건을 살 돈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집에서도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문방구에서 종이 피아노 건반을 발견했다.

종이 피아노여서인지 50원밖에 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살 돈도, 놓을 공간도 없는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교회에서 연습을 하고 돌아온 날도

방바닥에 악보와 종이 피아노를 펼쳐놓고 목소리로 소리를 내가며 연습했다.

그렇게 시간을 쌓아나가니,

어느새 복음성가곡집 한 권의 모든 곡들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아빠의 두 번째 중동행은 비교적 짧았다.

아빠가 돌아오시면

방에 하나뿐인 창문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까지만 보이는 이 집,

잠시라도 방심하면 연탄불이 꺼져 다시 냉골방을 덥히는데 한참이 걸리는 이 집,

다리 많은 벌레들과 바퀴벌레가 얹혀살아도 될까 걱정하지 않고 눌러사는 이 집,

여름이면 하수구가 넘쳐나 바가지로 물을 퍼내는 건지 바깥 물을 퍼 나르는 건지 모를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사항도

그대로 희망이 되어 돌아왔다.

아빠는 귀국길에

커다란 어항과 죽은 산호초, 지하 단칸방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랗고 화려한 색상의 양탄자를

돌돌 말아 가져오셨다.

중동에서 돌아오신 아빠가 방 안에 앉아 계셨지만

반가워해야 할지 아니면 이게 다 뭐냐고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To be continued.
다음 화에 계속.


이미지출처: Can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