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게 말하라,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황정민의 밥상 수상소감
“네, 그럼 제2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청룡영화상 시상식장에서 배우 장동건이 잠시 뜸을 들인 뒤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
무대로 걸어가며 쑥스럽게 웃는 황정민.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오래도록 사람들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 멋진 수상소감을 자신이 할 거라는 것을?
황정민은 그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이 진솔한 수상소감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수많은 말하기 특강을 다니며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수상소감 있으세요?”
10명 중 8명 정도가 배우 황정민의 ‘밥상’ 수상소감을 언급하더라고요. 나머지 2명은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인사했던 배우 장미희를 언급했는데, 나이 어린 사람이라면 모를 수 있어요. TV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가슴에도 그 진심이 전달되었습니다. 이 수상소감은 심지어 국어교과서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수많은 수상소감 가운데 황정민의 이 스피치가 특별했던 이유는 뭘까요? 그의 말에는 ‘눈에 보이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속도를 보여주는 말이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시다. 그들의 재주는 다른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 심지어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와도 TV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눈앞에 홀로그램을 띄웁니다. 스피치 코칭을 할 때의 핵심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눈에 보이게 말하라
<말하는대로> <세바시>의 출연자들을 만날 때도 저는 ‘어떻게 하면 이들의 이야기가 시청자의 눈에 보일 수 있을까? 입을 통해 나오는 단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오색을 뒤집어쓴 채 걷고 뛰고 날도록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지금도 그 고민은 계속됩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 주목해야 할 부분도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게 말을 할 수 있는가?’
다음의 글을 보죠.
목동의 KT체임버홀은 500명의 관객들로 가득 찼습니다. 제 순서가 끝나고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님의 강연이 이어졌어요. 혼자 요트를 타고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오는 어려운 도전을 해낸 분인데, 강연을 들어보니 그것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어요. 오십이 넘은 나이에 선택한 모험 가득한 도전의 삶은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런데 강연 도중 배의 속도를 말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요트의 평균속도는 10km/h 정도라며, 그 속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요트의 평균속도는 시속 10km 정도입니다. 주차장 내에서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밖에 안 돼요.”
그 순간 요트의 속도가 정확하게 이해됐어요. 눈에 보였기 때문이죠. 시속 10km라는 단위는 정확하기는 하지만 감각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데, 주차장에서 주차공간을 찾고 있는 차의 속도 정도라고 하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많은 강연을 들으며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속도조차도 눈에 보여준다는 것을 배웠어요. 김승진 선장님의 원래 직업이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모든 것이 이해되더라고요. ‘어려운 것을 쉽게 그리고 리얼하게 말하는 것’ 그게 다큐멘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죠. 얼마나 신박한가요? 주차장에서 움직이는 차의 속도라니! 눈에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눈에 보이게 말하면 소통이 잘된다
저는 손발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이 있습니다.
“손에 땀이 많아서 불편해요.”라고 말하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죠.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손에 땀이 많이 납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는 골판지를 손 아래에 깔아야 했어요. 종이가 땀에 젖어서 찢어질 정도였거든요.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나면 게임기 조작 버튼 주변에 물이 고일 정도이고요.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 땀이 흘러내리기도 합니다. 정말 불편해요.”
친한 친구를 설명할 땐 또 어떻습니까?
“저는 친구 인한이랑 친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친구 인한이랑 친합니다.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해요. 일, 읽고 있는 책, 각자 키우고 있는 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요.”
“가수 ‘아웃사이더’ 아세요? 참 싹싹하고 친절하더라고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수 ‘아웃사이더’가 제가 운영하는 학원에 온 적이 있어요. 교실에서 책상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활짝 웃으면서 책상을 밀더라고요. 연예인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매우 친절하고 적극적이었어요.”
어제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재미있었어!”라고 말할 건가요? 아니면 “손에 쥔 팝콘을 먹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몰입했어!”라고 말할 건가요?
“눈이 많이 왔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리 집이 언덕인데 집 앞을 나서는 순간 평창인 줄 알았어. 스키점프대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거든.”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습니까!
순간순간 스피드게임처럼 소통하면 말하기가 즐거워집니다.
멀리서도 저는 당신의 방청객입니다.
제가 보내는 마음의 박수를 꼭 들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