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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Nov 28. 2023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feat. 이소라)

호주의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보내는 글

난 너에게 편지를 써

모든 걸 말하겠어

변함없는 상황을 적어주겠어


너는 바뀌지 않아

세상이 달라진대도

공공연히 혐오를 드러내고 있어


넌 외로워. 그리고 불안해.

이젠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넌 욕심이 너무 깊어

더 많은  갖고 싶어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넌 슬퍼




지난 10월 29일 한국 20대 여행객 두 명이 시드니에서 또 폭언, 폭행을 당했어. 10대 소녀들도 이런 혐오를 드러내는 건 아직 생각의 저변에 더 많은 차별이 숨어있다는 거겠지. 다른 나라들에서도 동양인 혐오가 있다지만 호주에서는 꽤 빈번한 편인 것 같아. 내 생각만 그래? 폭행의 수위에 따라 언론에 노출되는데 알려진 것만 해도 매해 잠잠한 때가 없더라.



워라밸, 임금에 유독 칼 같은 호주잖아? 6시 정도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으니 저녁이 너무 길어서 밤문화에 익숙한 한국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밤마다 벽을 탄다나 어쩐다나. 그나마 목요일은 쇼핑데이로 유일하게 저녁까지 영업을 하니까 늦게 일을 마쳐 마트도 못 갈 때 너무 기다려졌지. 그리고 매주 따박따박 들어오는 주급! 막 들어온 주급을 찾아쥐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달콤한 목요일의 쇼핑센터. 그 느낌 알지?



어슴푸레한 시간, 주차장 옆 CD기에서 혼자 돈을 뽑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때리는 강한 충격에 CD기에 이마를 부딪혔어.

퍽.

이마와 뒤통수 모두 얼얼해 정신이 없었어. 곧이어 들리는 깔깔대는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

"퍽킹 차이니즈! 고 유얼 컨트리!"

애보리진이라 불리는 원주민 소녀들이야. 옆에 선 친구 하나가 그냥 가자며 잡아끌긴 하지만 알코올기가 가득한 다섯을 보고 흠칫 움츠렸어. 어리대도 5대 1로 맞서긴 곤란하잖아. 돈 안 뺏긴 게 천만다행이지. 갑자기 당한 일에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리더라. 얼굴이 벌게져서 얼른 자리를 피한 후 CCTV를 찾으며 쇼핑센터의 경찰관에게 찾아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냐 물었어. 그랬더니 누군지 알 수 없고 증거도 없어서 처벌이 안된다며 그저 돌아가라더라. 주차장의 시끄러운 무리가 뻔히 보이는데도 돌아설 수밖에 없었어. 그게 내가 호주에서 처음 겪은 인종차별이야.


호주에서 운전을 하며 지인들이 알음알음 전해주는 이야기가 있는데 파란색 바탕에 보닛을 가로질러 지붕과 뒤범퍼까지 하얀 줄이 있는 차는 인종차별주의자이니 조심하라는 말이었어. 직접 피해를 겪은 게 아니라 사실인지 모르지만 운전을 하다 그런 차를 만나면 절로 주의하게 되지. 나중에 찾아보니 레이싱카에서 유래해서 멋져 보이려고 사용하는 게 다수인 것 같지만, 파란색은 자유, 하얀색 줄은 완벽함, 순수함 같은 의미가 있다 보니 그 색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아.

여하튼 대다수의 현지인들이 친절하지만 차에서 "퍽킹 차이니즈!" 손가락 욕을 날리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가끔 만나. 차 색깔은 기억이 안 나지만. (운전하면서까지 보고 격하게 반응해 주다니 눈이 좋은가 봐? 심심했나?) 빈도로 따지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 같아.




왜 이렇게 동양인들을 싫어하는 걸까?


애보리진(aborigine)들은 말 그대로 그 땅의 주인들이지. 호주가 영국에서 이송해 온 죄수들이 정착하며 시작된 땅이라고 하는데 원주민들의 입장에선 억울하지 않을까? 갑자기 쳐들어와 자신들이 주인이라며 진짜 주인들을 학살해서 백만여 명의 원주민들이 수만 명으로 줄었다니까. 다시 늘어나고 있다지만 여전히 원주민의 생활은 피폐해. 이주민들이 그들보다 먼저 그 땅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쫓아낸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원주민들을 완전히 말살할 수 없자 어떤 투표권한도 없는 야생동물 혹은 자연유산인양 취급한 것이 오래됐다고 해. 외진 곳에 모여 살도록 하고 구경거리처럼 지켜보는 거지. 야만인들을 문명화시킨다며 원주민의 자녀들을 백인집에 강제입양보내기도 하고 말이야. 우연한 기회에 애보리진들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해 온 분을 만나 애보리진 마을을 잠시 둘러볼 수 있었는데 옷이며, 집이며 사는 지역 모두 노후되고 낙후되어 있었어.

다분히 의도적으로 애보리진들에게 술과 마약이 제공되었고 자녀를 낳으면 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동의지를 박탈하고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됐지. 아이를 낳은 돈으로 유흥물품을 사고, 돈이 필요하면 또 아이를 낳는 방식으로 가족 구성원은 늘어나지만 풍요롭지 못한 상태로 버텨온 거야. 어려서부터 술과 마약을 접하기에 교육이나 노동의지가 적은데 그나마 정신 차린 한 두 명이 수십여 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기는 녹록지 않은 거지. 이런 상태에 그나마 손쉬운 일자리들을 차지하는 중국인(혹은 동양인)들이 애보리진들에겐 생태계의 경쟁자처럼 느껴지는 거지. 그들의 오랜 슬픔과 어려움을 알게 되니 애보리진의 사무친 원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더라.



그런데 백인우월주의는 왜일까?


1,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온 호주의 백호주주의(혹은 백호주의)는 유명해. 1850년대 호주에서 대량의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불었어. 많은 노동자들이 금광으로 일하러 오게 됐는데 그 당시 청나라(지금의 중국)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일을 맡아하면서 임금이 뚝 떨어진 거지. 그렇게 자신들의 일자리도 줄어들고 임금이 낮아지는 상황을 이유로 아시아계 이민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백인 외의 인종을 받지 말자는 인종차별적 주장도 섞여 있었지. 191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협회'에서 White Australia를 외치며 배지도 만들었는데 협회 구성원들 중 진짜 원주민은 단 한 명도 없고 전부 백인이었대.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아?

1910년 발표된 백호주의 악보집. 빨간 리본의 '백인들의 땅 호주'가 압권 Ⓒ나무위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자원이 풍부한 호주까지 노리고 있었고, 싱가포르에 있던 영국군들도 일본군에 항복하자 넓은 땅에 적은 인구(1970년대 710만명)는 국력에 문제가 됨을 깨달은 호주는 남유럽 백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대. 인접한 아시아와는 등을 지고 영국과의 무역을 이어갔지만 영국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고 유럽의 농축산물 관세를 없애면서 운송비용이 높은 호주는 가격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지. 무역상황이 악화되자 옆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과 교류를 할 수밖에 없었고 1973년 아시아인 이민도 완전히 개방되며 백호주의는 공식적으로 폐지됐지. 경제상황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게 불과 50여 년 전이지.

아직도 백호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말들이 가끔씩 나오는 걸 보면 여전히 백인우월주의 성향이 남아있는 것 같아. 넓은 땅 덩어리를 개발, 유지하기에 많은 손이 필요해서 사람들을(워킹 홀리데이도) 많이 들이기는 하지만 일꾼처럼 부리고 싶어 하는 마음일까? 자신들의 밥그릇을 침해당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그들의 발버둥인 걸까?그냥 끝없는 욕심의 발로일까? 어린 세대들도 가정에서 이런 분위기를 듣고 자라왔기에 술을 마시고 조절력을 잃어버리면 동양인들에게 막말을 하고 손이 나가는 거겠지.


K-wave로 많은 나라들이 동양인들 중 한국인은 예외 취급하긴 하지만 구분 못 하는 걸 어떡해? '나 한국인' 이름표라도 붙이고 다녀야 하나?


당신들의 혐오, 분노는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고 힘이 없다고 느끼는 무력감에서 오는 것 아닐까? 다인종, 다문화라 겪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아서는 아무것도 해결 못하고 제 자리일 거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편협하고 패악한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지는 말자. 이제는 함께 손잡고 협동하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는 시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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