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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Dec 18. 2023

너무 순해서 죄송합니다

사두증 넘어가기

"야야,  아 같으면 열명도 낳긋."


여든 넘은 할머니 눈엔 손녀가 낳은 아이가 마냥 순하고 예뻤다. 서른 넘어 해외 나간다던 손녀에게 툭하면 "내 니 아는 보고 갈란가"했었다. 6남매를 낳아 기른 육아의 고수 할머니에게 한 명쯤은 껌일 테지만 이제 막 첫 애를 낳아 기르는 손녀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익숙한 집을 벗어나면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어 집에서는 툭하면 나오는 떼 한번 안 부리는 아기의 비밀을 할머니는 다 잊으셨을 거다.


그래. 또래에 비하면 아이는 얌전했다. 엄마가 서툴렀을 뿐.

신새벽 2시간 만에 만난 아이제대로 숨을 못 쉬어서 하얗게 질려 쭈글쭈글한 얼굴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잠깐 안겼다가 사라졌다. 외계인같이 나타난 생명체에게 갑자기 샘솟는 모성애는 없었다.

응. 애.

정말 글자 그대로 울었다. 아이 울음소리들이 다 다르다는 걸 조리원에서 처음 깨닫고 내 아이가 우는 목소리를 구별할 때쯤 집에 돌아왔다. 낮에도 밤에도 금방 깨는 아이 키우기는 고단했지만 금세 밤잠에 익숙해졌다. 낮잠을 자지 않아서 그렇지.


아이는 아기침대에 누워 옹알대며 잘 놀았고 잘 크는 줄 알았다. 몇 달 만에 간 소아과에서 아이가 사두증이라며 큰 병원에 가 진단받으라고 다. 처음 들어보는 말. 비스듬한 머리. 斜頭症.  덜 자란 두개골이 비대칭으로 붙으면서 머리가 틀어지는 증세였. 증세가 미미하다면 집에서 돌려 재우기만 해도 됐을 텐데 꽤나 심각했다. 뉘어놓은 대로 잘 놀았던 탓에 머리뼈가 틀어져 양쪽 귀 위치가 달라지도록 나는 잘 몰랐다. 너무 늦게 발견하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사두증을 치료하는 곳은 전국에 많지 않았다. 아이 외할아버지바삐 알아보셔서 그나마 진료비가 저렴하고 비교적 가까운 곳을 찾아주셨다. 차로 두 시간쯤 가야 하는 대구의 대학병원이었다. 예약을 하고도 한 달여를 기다려했다. 그 한 달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마냥 기다리기엔 그동안 살아온 아이의 생애가 너무 짧았다. 지금에한순간이지만 더 나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차를 1시간도 타보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가족들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양가할머니들이 노래와 간식으로 지치는 아이를 달래 가며 겨우 도착했건만 병원엔 전국에서 온 아이들이 있어 서로 눈치를 보며 마냥 기다려야 했다. 예약시간을 훨씬 지나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겨우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받은 뒤 의료기기점에 가서 본을 뜨고 교정용 헬멧을 맞추는데 반나절이 지났다. 멀미가 나고 힘들었던지 아이는 토하고 칭얼거렸다. 첫 한 달여는 헬멧을 맞추고 잘 맞는지 확인하고 경과를 보기 위해 매주 진료를 가야 해서 더 힘들었다.



생애 6개월 차 아이는 교정헬멧을  쓰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다행이랬지만 하루 중 23시간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잠잘 때도 헬멧을 쓰고 있어야 했다. 아직 어린아이는  불편해도 자기 손으로 헬멧을 벗을 수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헬멧 모서리는 모두 반창고테이프를 둘러 귀와 얼굴에 상처가 나지 않게 했다. 다른 엄마들은 마음이 아파서 계속 씌울 수 없다던데 모진 엄마는 꾸역꾸역 헬멧을 씌웠다. 자다가 헬멧이 밀려 내려와 눌린 눈을 제대로 못 뜨는 일도 다반사였다. 가장 귀여웠던 그 시기 모든 사진에 헬멧이 있어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크다. 그래서 되도록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 무슨 유난을 떤다고 애를 그렇게 괴롭히냐는 이야기를 꽤나 많이 들은 탓이다. 그럼에도 해맑은 아이의 미소. 보는 마음은 불편하지만 아이는 잘 참아줬다. 왕복 4시간의 진료도, 헬멧 착용도.

헬멧 안에 씌우는 하얀 천이 땀으로 축축해지기 시작하는 6월 더 이상의 내원도 헬멧 착용도 필요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6개월 만이다. 시원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아이 뒤통수가 동글동글 예쁘다며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들이 있다. '어릴 때 잘 안 누워 있었나 보다.', '엄마 고생 많이 시켰나 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미안해진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너무 순하거든요. 너무 순해서 두면 두는 대로 투정도 안 부리는걸요.


아직도 순둥순둥해서 엄마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아이, 엄마에게 뭐든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에게 가끔씩 툴툴대며 골을 낸다. "너 엄마 껌딱지야? 네 마음대로 해." 둔하고 게으른 엄마는 아이의 불편을 못 살필까 미안함에 스스로 책임지라 떠미는데 아이는 아직도 엄마를 무한신뢰하니 어쩌나. 지혜롭게 너를 돕고 제 때에 너를 놓아줄 수 있기를 바라야지. 너의 부드러움이 최고의 무기가 되기를.


부드러운 것이 딱딱한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柔能制剛, 유능제강
弱能制强. 약능제강
- 後漢書 후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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