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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Dec 09. 2023

울면? 잘 된대?

엄만 T야? F야?

왜 안 되는 건데?!!


화가 난 아이가 으으윽 소리를 지르며 패드를 쿵쿵 치더니 악에 바쳐 으흐흑 울기 시작했다. 누가 사내아이 아니랄까 봐 승부근성이 유전자 깊이 새겨 있는 모양이다. 게임할 때마다 제 맘대로 안 된다며 울고 불고 난리라 그럴 거면 하지 말라고 말한 게 수차례다.
덤덤한 목소리로 묻는다.


-왜 울어?
-흐흑.. 이게 체력이랑 연료랑 다 있는데 죽었어. 왜 죽었는지 모르겠어. 잘 안 돼.
-울면? 잘 된대? 울어서 잘 될 거면 아무나 잘하겠다.

이이잉. 서러운 아이의 닭똥 같던 눈물이 장대비가 되어 홍수가 날 기세다. 안 되겠다 싶은지 방으로 가 문을 쾅 닫는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더 서럽게 우아앙 울기 시작한다. 울 때마다 혼자 방에 들어가는 건 어릴 때부터 들인 습관이다.



아이는 조용하고 순하다. 가끔 음식에 관해선 까다로울 때가 있지만 또래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선생님들 말도 잘 따르는 범생이자 순둥이다. 조금 까다로운 친구들과도 양보하고 다툼 없이 잘 어울려서 아이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매해 상담 때마다 별 이야깃거리가 없는, 문제가 없어서 눈이 안 가는 아이다. 엄마 말도 곧잘 듣는 편이다.



엄마 T야?


엄마도 매번 이렇게 쌀쌀맞진 않다. 아이는 엄마를 좋아하고 엄마는 아이 마음을 잘 알아준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잘 챙겨주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때다 싶어 엄마가 마음을 먹은 참이다.


실은 며칠 전 돌봄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아플 때가 아니면 선생님께 전화가 오는 건 드문 일이다.


-여보세요?


-네 어머니. 급한 일은 아니고, ○○이가 오늘 체육시간에 하기 싫다고 돌봄 교실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오늘만 그런 게 아니고 자주 하기 싫다고 오는데 ○○이가 어디 불편한 데가 있나요? 체육을 싫어하나요?


아이는 아직 태권도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 없었다.


-아, 네. 평소에도 집에 있고 나가는 걸 싫어하긴 해요.


-체육선생님이  ○○이가 운동장에서 수업하는 걸 싫어 한 다시네요. 강당에는 수업하는 곳 옆에 책이 있어서 그나마 수업시간에 책을 읽고 있긴 하는데 운동장에서 하면 금방 들어온다네요. 애가 싫다니까 억지로 시키진 않는데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 해서요.


-아, 아니에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활동적이기보다 조용히 노는 편이라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얌전하진 않다.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춤추고 온갖 괴물 흉내를 내는가 하면 혼자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하기도 하고, 다양한 캐릭터 흉내에 출중한 재능을 가졌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면 부끄러워서 못 보여줄 뿐)  태권도도 아이가 너무 움직이지 않아 체력을 기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잘 준비를 하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돌봄시간에 체육 안 하고 교실에 있었어?
-응
-왜?
-속상해서. 오늘 춥다고 운동장에 안 나간대 가지구.
-강당에서 운동하는 게 싫었어?
-응
-선생님한테 이야기는 했어?
-아니
-왜?
-그냥

아이는 눈치를 보며 (대세와 다를 때) 제 생각 말하기를 꺼린다. 보나마나 무서워서, 혼날까 봐 말 못 했을 거다.

- 운동장에서 체육 하는 게 좋아? 강당에서 체육 하는 게 좋아?
-운동장. 운동장에서 하면 친구들 노는 것도 볼 수 있고 모래놀이도 할 수 있어
-그럼 운동장에서 할 때 왜 일찍 교실에 들어갔어?
-아. 왜냐면 빨리 교실 가서 숙제 빨리 해놓고 놀려고.

행동은 똑같은데 아이의 마음과 이를 지켜보는 주변사람들의 생각이 완전히 달랐다. 아이고. 아들아. 너를 어쩌면 좋니.

-○○아, 네 생각 표현 안 하면 너만 손해야. 네가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면 선생님이 생각이라도 해볼 텐데 아무 말 안 하면 못 나가는 너만 속상하지. 다른 사람들은 네 마음 모르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말하기 싫어
-그래라. 너만 계속 속상하겠네.




방에서 목놓아 울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잠잠해졌다. 5분도 채 안 된 거 같다.


-이야압~ 해가지고 부와아아 그랬는데 여기서 두두두


이불 위를 뛰며 놀고 있는 모양이다. 혼자 조잘거리던 아이가 탁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는 아이가 홧김에 던져두고 간 게임을 하느라 아이를 보지도 않았다.


-엄마 잘 돼?
-다 울었어?
-...
-이거 정말 안 되네. 20분만 더하면 칭호 준대. 20분 더하면 100등 안에 들려나?
-글쎄.
-우와아. 20분 안 됐는데 됐어. 58등이야.
-오. 엄마 잘했다.


아직 아이는 안전하지 않(아 보이는)은 상황에서 제 마음 표현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 속상한 제 마음을 처리하는데도 미숙하다. 그래도 금세 울음을 놀이로 바꾸는 힘이 있으니 다음 걸음은 다음 층계에서 차근차근 걸어가겠지.



-다음에 또 속상한 일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럼 또 으아앙 울 거야
-밖에서 속상할 때도 울 수 있어?
-아니. 그러면 우와~아아~ 할 거야.
-울면 마음이 시원해?
-응
-○○아, 잘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속상한 마음을 잘 풀 수 있을지 다른 방법도 한 번 찾아보자
-(허공에 주먹을 하나 둘 하나 둘 내지르며) 이렇게 할 거야
-누구를? 사람을? 아니면 공중에?
-엄마를ㅋㅋㅋ
-밖에선 엄마 없잖아. 그럼 어떡해?
-그럼 공중에.
-근데 엄마는 왜 때려?
-엄마는..ㅎㅎ 이렇게 하면 웃겨서 웃음이 나와.
-이노오오오옴
-ㅋㅋㅋㅋ
-으이그. 얼른 자라 이놈



아들, 엄마는 눈티밤티*야. 주먹 불끈.



* 눈티밤티 : 눈탱이 밤탱이.  눈부위를 크게 얻어 맞아 퉁퉁 부은 형상을 빗대는 말.

사진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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