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되면 한 해의 키워드를 정했다. 물론 남들처럼 부지런하진 못한 탓에 오래 뜸 들이다 1월이 지나가기 전쯤 올린달까.(이번엔 모처럼 부지런을 떨고 있다.) 연말, 연초쯤 되면 자연스레 지난해를 돌아보며 자꾸 읽고 보고 생각하는 문구들이 생겨나고 그러다 보면 한 해를 이렇게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조금 게을러지긴 했지만 절제, 순종, 감사, 기도 같은 것이 키워드였고 한 해 동안 잘 못 지켰다 싶으면 다음 해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명확한 목표나 기준이 분명한 계획도 아니고 뭐 그렇게 느슨한 걸 매년 정하나 싶기도 할 텐데 그래도 방향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달까. 아무 생각 없이 시간대로 흘러가느니 '아. 올해엔 이걸 잘하고 싶었지'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이다. 계획은 실패해도 계획한 만큼 이득이듯이.
가장 최근의 키워드는 풍요(overflow)였다. 풍족한 정도가 아니라 내 역량, 내 그릇의 한계를 가득 채우고 넘쳐흐르는 것 말이다. 내 것이다 욕심부리지 않아도 될 만큼, 다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풍성하게 나누는 것이다. 그 항목이 무엇이든 말이다. (미움, 질투, 분노 등 부정적인 단어는 넣어두기로 해요. 새해잖아요)
물론 너무 막연한 그림을 그린 탓에 어디서 이런 풍요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 충분히 이루어낸 것은 없지만. 아직 이 희망은 진행 중으로 두고 올해는 또 다른 키워드에 집중하기로 했다.
열중하다
'열중하다' 황농문 교수님의 이야기처럼 한 가지를 꾸준히생각하고 빠져들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꾸준히 누리는 과정이 올해 가장 필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쓰기도, 읽기도, 생각하기도 부족한 상태라 뭐 하나 제대로 꺼내 보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자꾸 움츠러드는 나다. 제대로 빠져 들어 깊이 이해하고 즐거워하다 보면 준전문가가 되어 저절로 생각도 말도 많아지지 않을까. 가만히 앉아 마른하늘 아래 빈통이 채워지고 넘쳐흐르기까지 기다리기보다, 땅속 깊이 파고 또 파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물줄기를 발견하겠지. 그때까지 뜨거움(熱)을 가슴(中) 속에 지니고 살아야지.
의지는 소비재다.
해야지 마음먹어도 환경의 어려움에 쉽게 고갈되어 지속하기 어렵다. 삼일마다 다시 마음을 먹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 내가 그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다.) 따라서 의지만으로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건 불가능한 일에 대한 도전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방향만 잡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하고 싶다. 그래서 의지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지 않고 가능한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어떤 일을 꾸준히 못하는 것은 필요성을 마음 깊이 느끼지 못하거나, 이 일이 앞으로 어떤 중요한 바탕이 될지 그 의미를 모르거나, 사랑하지 않거나이다.
내가 하려는 일의 의미를, 필요성을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깊숙이 체감하지 못했나 보다. 어쩌겠어. 좀 더 부딪히며 온몸과 온 시간으로 느껴봐야지. 깊이 깨닫지는 못했더라도 사랑해 봐야겠다. 마음의 뜨거움이 꾸준함의 동력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