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 테러범들은 각각 10대 2명, 20대 1명이다. 1차 낙서범인 10대는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넘어가 담벼락을 훼손했다고 한다. 2차 범죄자는 해당 범죄 후 블로그에 자신이 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 예술이라며 글을 올려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신을 미스치프(MSCHF, 이하 미스치프로 표기)의 어린양 이라 소개하며 사람들이 낙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이다.
블로그 해당 게시물 중 일부
미스치프는 뉴욕 브루클린에 본사를 둔 미술집단으로 브라우저 플러그인부터 운동화, 제품 및 소셜미디어채널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제작했다. 미스치프는 단체 이름 자체가 영단어 mischief 에서 온 만큼 '장난'스러운 행보를 보이며 'Nothing is sacred'를 슬로건으로 한다고 한다.
2주에 한번 홈페이지에 업로드하여 한정판 작품을 선보이는데 첫 번째 작품으로 세계경제에 1000억 달러가량의 피해를 입힌 6개의 악성 코드 프로그램이 깔린 노트북을 선보였다. 실제 사람의 피 한 방울을 넣은 사탄신발(Nike Air Max97로 출시해 나이키에 고소됨)을 만들어 성경(누가복음 10장 18절)을 꼬집으며 666켤레를 팔기도 했다. 몇 천만 원하는 에르메스 버킨백을 해체해 버켄스탁 샌들모양의 버켄스탁을 만들기도 하고, 앤디워홀의 그림 "요정"과 그들이 만든 고품질의 위작 999점을 섞어 $250불에 파는 등 기행적인 행보를 보인다. 예술, 종교 등 성역이라 불리는 사회인식에 반기를 들고 도전하는 것이다.
이들의 전시가 현재 대림미술관에서 2024년 3월까지 열리는데 이를 본 20대가 모방범죄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 해당인은 11월 19일 미스치프의 전시회에서 모자형태의 작품을 훔쳐 절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30일 블로그에“제 행동으로 미술관이나 사회에 약간이나마 파급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조사 후기까지 남겼다니 문제가 꽤 심각해 보인다.
장난과 범죄, 그 선은 어디까지 인가?
mischief는 아이들이 하는 크게 심각하지 않은 나쁜 짓, 장난이나 장난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물질적·물리적인 해악이나 위해, 손해, 재해, 악영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단순히 심심해서 짓궂게 구는 것 이상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한글로 장난 역시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또는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이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17~19세기의 작난(作亂)이 20세기, 현대에 와서 바뀌어 표기된 것이다. 만들 작, 어지러울 난 즉 난리를 만들고 어지럽히는 것이다. 자꾸 말꼬리를 잡는 것 같지만 난리는 도리를 어지럽히고 도리에 어긋난 것을 만드는 것이다. 혹은 세상이 소란하고 질서가 어지러워진 상태이다.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것마저 장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는 법규를 어긴 것이지만 장난 또한 도리라는 기준을 넘는 것이다. 이 법규와 도리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기에 재미로, 심심하니까 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문화재에 대한 낙서는 이미 심각한 상태라 한다. 어느 곳에 가든 본인의 자취를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글, 영어, 각 언어로 낙서를 남기는 통에 중국만큼 CCTV를 설치해야 관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경복궁 벽면에 남아있는 낙서들(출처:서경덕교수)
문화재 보호법 99조
문화재 보호법 99조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은 자가 문화재를 훼손하고 현상변경했을 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고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법으로 규정하지 않는 도리, 마땅히 해야 할 바른 일들은 쉽게 어겨도 괜찮은 것일까?
20년 전 편의점에서 일할 때였다. 30대 남자가 3-4살쯤 되보이는 사내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이 아이가 꽤나 장난기가 심해서 매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카운터 안으로도 들어오려 했다. 당연하게도 "꼬마야, 여긴 들어오는 데가 아니야."라고 저지했는데 그 남성은 크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애를 나무라냐, 자기는 허용적으로 키우는데 왜 막냐며 되려 화를 내고 갔다.
흔히들 하는 자조적인 해답일 수 있지만 이 시대의 문제는 부모의 양육과 교육의 문제가 크다고 보인다. 가부장적인 권위 아래에 자라온 부모세대들이 기준을 납득하지 못하고 반박하며 따지는 자녀들을 보며 오히려 기특하고 자랑스럽게 보는 것이다. 민주적이라며 필요 이상의 선택권을 주고 아이를 무조건 허용하는 것이다. 자녀교육멘토 조선미교수는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라는 것이 아이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며 아이들에게 끌려다니지 말라 말한다. 민주적으로 수용가능한 의견들도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있다.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부모들마저 분명한 기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해 온 양육이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의해 보자면, 장난은 잘못을 하더라도 용서를 빌고 스스로 회복시킬 수 있는 정도까지다. 상대의 물리적, 물질적, 심리적 피해를 회복시킬 수 없다면 이는 폭력이고 범죄이다. 상대와 관계를 살피는 민감성에 대한 교육, 올바름에 대한 가치 교육이 먼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범죄와 문제들은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시대가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