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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Jan 11. 2024

퐁신퐁신 사랑이 뛰노는 맛

밥솥 카스테라

겨울방학이다. 며칠이나 일주일여가 아닌 제법 긴 초등의 방학을 정통으로 맞고 보니 엄마의 고충을 새삼 느낀다. 하루 세끼 밥에 간식까지 챙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치우고 돌아서면 밥준비라는 게 과언이 아니다. 방학이면 엄마는 24/7 풀타임 출근이다.


남편은 평소 회사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는데 요즘 건강상의 문제로 일찍 퇴근하게 되면서 신경 쓸 일이 늘었다. 아이는 방학에도 돌봄 교실과 방과후를 다니는데 방학중 급식비가 5천 원이 넘길래 도시락을 싸주기로 했다. 유아식 먹일 때 쓰던 보온죽통에 밥을 담고 반찬 몇 가지를 챙겨주는데도 신경이 쓰인다. 집에서 밥을 챙기는 횟수가 늘어났더니 며칠새 쌀도 금방 떨어진다. 형제가 많고 다른 일이 많다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거다.




30여 년 전, 그러니까 1990년대에는 외식은 흔하지 않고 집밥이 대부분이었다. 식빵 파는 곳도 많지 않아서 빵으로 아침을 먹는 것도 생소하던 시절이다. (기억에 차이가 있다면 그분이 유복하셨거나, 아니면 우리 집이 더 어려웠거나 일테다.)

그래도 엄마는 매일 식구 식사를 끼니때마다 부지런히 차리고 간식도 챙겨주려 애쓰셨다. 먹는 것에서 부족함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밥솥 카스테라는 신세계였다. 요즘 빵집의 빵들은 종류도 맛도 다양하고 촉촉하고 보드랍고 여러 과일들도 들어가 예쁘기까지 하다. 그러나 베이커리가 지금만큼 흔하지 않던  당시엔 집에서 빵을 굽는 자체로 놀라웠다. 음식 얼리어답터인 엄마는 어디서 알게 됐는지 획기적인 밥솥요리법을 선보였다. 어린 내게 엄마는 마법사였다.



요즘도 자취생들이나 살림이 많지 않은 가구들을 위한 노오븐 밥솥카스테라 레시피가 많이 보이던데 간편하고 쉽게 즐기는 맛은 변함없어 보인다.

밥솥 카스테라는 재료도 간단하다. 밀가루, 계란, 우유, 설탕, 버터나 식용유 정도면 된다. 30년 전엔 베이킹 레시피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엄마도 제과제빵자격증을 따기도, 관심을 갖기도 전이라 그냥 재료를 다 휘저어 구웠던 것 같다. 그냥 섞기만 해도 그때는 꿀맛이었다. 빵은 조금 뻑뻑하고 치즈라도 되는 양 커다란 구멍들이 뻥뻥 내가 더 크네 다투고 있었지만 갈색빛 껍질에 숨은 노란 속살의 달달한 카스테라가 좋았다.



엄마표 카스테라와 달리 퐁신퐁신 맛있게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만들려면 계란으로 머랭을 쳐서 만들면 된다. 계란 흰자와 노른자는 분리해 두고, 버터는 렌지에 녹여 우유와 섞어준다. 식용유로 하면 버터 특유의 고소한 향이  나지만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

흰자에 설탕을 세 번에 나눠 넣어주며 거품기로 열심히 공기를 넣어 주며 거품을 만든다. 처음엔 맥주거품마냥 제 주장 분명하게 구멍 숭숭했던 큰 기포들이 잘게 나뉘고 뽀얗고 빡빡하게 부풀듯 일어나 흘러내리지 않는 정도가 될 때까지 거품을 내준다. 그렇다고 함부로 뒤집어보진 말자.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다.

손 거품기를 사용한다면 한 방향으로 저어주는 것이 포인트.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지금껏 일어난 거품들이 나 죽네~ 비명과 함께 사그라든다. 팔과 어깨가 욱신거려 괜히 시작했다 후회될 때쯤이면 거품이 생크림처럼 뿔모양으로 일어선다. (엄마, 나, 오빠까지 세 명이 돌아가며 거품기를 붙잡고 땀 뻘뻘 흘렸었다.)

노른자에도 소금 한 꼬집과 설탕을 넣어 거품기를 돌려주는데 꼬소한 짙은 노란색이 살짝 연한 노란색으로 바뀌면 된다. 노른자에 거품 낸 흰자를 넣어 거품이 죽지 않게 주걱을 세워서 자르듯 살살 섞어준다.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체에 내려 크림화된 계란반죽 위에 뿌려준 뒤 역시나 조심조심 얼버무린다. 그다음, 버터우유(혹은 식용유우유)에 반죽을 한 주걱 덜어서 먼저 섞는데 기름이 들어가면 이제껏 조심해 온 반죽이 한 번에 숨이 죽으며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조금 섞어서 합쳐주는 것이다. 이게 희생반죽이라고 한다던가?

밥솥바닥에 기름칠을 고루 해준 뒤 조금 높은 곳에서 잘 섞은 반죽을 떨어뜨리듯 담으면 큰 기포들이 사라진다. 붓고 나서 바닥을 탕탕 쳐서 나머지 공기방울들도 터지거나 올라오도록 해준 뒤 만능찜이나 취사로 4-50분 익혀주면 된다. 젓가락으로 찔러봐서 묻어 나오는 게 없으면 다 익은 것. 확실히 머랭을 쳐서 만들면 내용이 균일하게 부풀어서 뭉쳐진 느낌이 없고 보드라운 맛이다.


사진출처: 에밀리의 푸드라이브 블로그


아직 팔이 튼튼하다면 생크림에 설탕을 넣고 거품 내 수제케익을 만들어도 괜찮지만 되도록이면 크림기계에게 양보하자. 카스테라는 온기가 있을 때 랩으로 꽁꽁 싼 뒤 냉장고에서 하루 이틀 숙성했다 먹는 것이 촉촉해서 더 맛있다. 남겨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디 이 방학도 무탈하고 빠르게 흘러가기를. 끼니와 간식의 수렁에서 잘 버티길 바란다. 가족들은 엄마의 사랑으로 배부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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