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망 Dec 29. 2023

갱시기를 아시나요?

얼큰한 김치국밥 한 그릇

이 즈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모임으로 바쁜 연말, 화려한 음식들이 식탁을 차지할 때, 수수하기 그지없는 김치국밥이다. 습관적으로 이때쯤 끓여주셔서 푸드라이팅(?) 당한 탓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면 또래들이랑 교회에서 밤을 새웠다. 일 년에 한 번 공식적으로 외박하며 밤새워 놀 수 있는 날이었다. 갖가지 과자와 음료수, 간식거리 등을 옆에 쌓아두고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깔깔댔다. 언제나 마지막은 마피아게임으로 누가 누가 더 거짓말을 못하나 겨뤘고 감쪽같이 속은 판은 억울해하다 서로 맘이 상하기도 했다. 놀다 피곤해지면 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다 새벽 5시쯤이면 다같이 성도분들의 집에 새벽송을 돌았다. 고요한 새벽공기에 정신이 바짝 들면 하늘의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을 찾으며 다녔다. 초인종을 누르고 부를 노래를 정하면 다같이 시작하는데 무반주로 잔잔히 울려 퍼지는 노래가 멋들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돌면 노곤해지는데 아침으로 따끈하게 끓여주신 김치국밥을 먹으면 땀을 쭉 빼며 기운이 나는 것이었다.



사실 말이 국밥이지 이건 김치국밥과 김치죽 사이 어디쯤인 음식이라 얼핏 봐선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꿀꿀이죽 같달까? 추운 겨울과 보릿고개를 버티게 해 준 경상도 토속음식으로 생존차원의 음식이었다. 1970년대 이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보리밥 덩이에 시퍼런 무청김치 넣고 끓여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니 말이다. 갱시기, 갱죽, 갱싱이죽, 국시기 등으로 불린다. 갱시기는 국시기에서 온 말인 듯하다. 갱은 국, 시기는 밥 식(食)으로 국에 밥을 넣어 만든 음식을 부르는 말일 것이라 추정한다. 배를 불리기 위한 음식이라 찬밥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물을 넉넉히 잡고 푸욱 끓여서 양을 늘려 먹은 것이다. 넣을 수 있는 것들은 다 넣는데 지역에 따라 감자, 고구마를 넣거나 수제비를 넣기도 한다. 엄마는 국수를 넣어 끓이기도 했다. 지금에야 별미로 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말이다.



재료만 준비된다면 끓이는 방법은 어렵지 않아서 피곤한 아침에도 금방 끓여주셨다. 김치와 콩나물, 떡국떡, 찬밥 등이 필요한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면 된다.


떡국떡은 물에 담가 불려주고 콩나물은 씻어서 준비한다. 김치는 잘게 썰고 대파도 있으면 어슷 썰어둔다. 김치는 익어서 새콤한 맛이 나는 신김치가 좋다. 너무 익은 묵은지는 텁텁한 맛이 나니 살짝 헹궈 사용한다. 물에 멸치를 넣고 육수를 낸다. 맹물도 김치국물도 다 괜찮긴 하지만. 육수에 김치, 떡국떡, 파, 국수, 김치국물 등등을 넣고 떡이 퍼지도록 끓인다. 액젓으로 간을 맞춘 뒤 콩나물, 찬밥을 마저 넣고 뚜껑연 채로 바닥에 눌지 않도록 저어주면서 부르르 끓여 내면 끝이다. 더 얼큰하게 먹고 싶다면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첨가한다. 국물이 걸쭉한 게 싫다면 밥을 마지막에 넣어 1분여만 끓여줘도 괜찮다. 참기름 쪼르륵 부어 풍미를 더해주면 정말 찐 마무리.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순서가 뒤엉켜도 크게 상관없으니 요리초보도 해장용으로, 아침으로 한 끼 뚝딱하기 좋다. 이런. 유튜브에 집밥백선생의 김치국밥 레시피가 떡하니 있다. 무얼 보고 하든 입맛에만 맞으면 장땡. 이번 연말에는 엄마가 그냥 지나가려는지 소식이 없다. 나만의 갱시기죽을 얼큰하게 끓여 먹어야겠다.



집밥백선생 해장김치죽 영상은 여기



이미지출처: 네이버블로그 [라임샴푸의 꿈꾸는 키친]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한테 잘 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