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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Jan 12. 2024

해도 되는 일, 할 수 있는 일

두 번째 일

호주에서 처음 구하게 되는 일들은 대개 청소나 캐셔일이다. 영어가 되면 캐셔 쪽으로, 영어가 잘 안 되면 청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국업체가 청소를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인들의 진입장벽이 낮아 시작하기 쉽다. 하지만 쉬운 만큼 수입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적은 수입에도 일하려는 다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쇼핑센터가 있었다. 셰어오빠 몇 명은 아침마다 쇼핑센터에 있는 마트를 청소하러 갔다. 잠시잠깐의 첫 파트타임 잡을 놓친 후 하염없이 방구석으로 침잠하던 나에게 어느 날 따라오란 이야기가 떨어졌다. 또 오지랖대장 셰어 오빠들이 나서서 소개해준  덕분이다. 이 오빠들 없었으면 어찌 살아남았을까 싶다. 인복은 있다.




일반적인 식료품대형마트인데 단 3명이서 2시간여 만에 청소해야 했다. 1층은 마트 매장이고 2층은 직원사무실과 화장실 등이 있었다.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를 단층으로 만들었으니 면적이 상당했는데 새벽 4시 반쯤 청소를 시작하면 7시엔 사무실, 화장실청소까지 모두 마쳐 있어야 했다. 쉴 틈 없이 움직여야 가능한 시간이었다.



마트는 언뜻 보기엔 바닥이 반짝반짝해 깨끗해 보이지만 먼지와 쓰레기가 꽤 많은데 물건을 집다가 바닥에 떨어뜨린 경우도 종종 있었다. 더구나 채소, 과일은 개별 포장되어 팔지 않고 매대에 쌓아둔 채 개인이 몇 개씩 골라 담아 가는 시스템이라 매일 바닥에 서양배나 사과 같은 과일, 채소들이 몇 개씩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포가 주 청소도구였다. 옆으로 길고 끝은 둥근데 밀대걸레보다는 짧은 꼬아진 실들이 가득 달려서 강당이나 체육관 바닥 등을 청소할 때 쓰는 그 도구, 맞다. 마포를 두 명이 각각 하나씩 맡는다. 이게 빗자루인 셈인데 먼지와 함께 모든 쓰레기를 밀고 끝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한 명은 바닥 닦는 기계를  운전하면서 물청소 겸 광을 내는 것이다. 앞에서 먼지와 함께 이물질을 재빨리 치워내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계가 따라오며 닦아냈기 때문에 세 명간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시간이 늘어져서 늘 촉박했다.



마포자루를 꽉 쥐고 좌, 우로 팍팍 밀며 박자감 있게 닦으라고 알려준 대로 따라 했건만 내가 닦은 곳은 뭔가 깨끗하지 않다고 했다. 미는 힘이 약한 탓인지 먼지를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하고 조금씩 빠뜨렸던 것 같다. 먼지와 쓰레기를 신경 쓰면 속도가 늦어지고, 속도를 신경 쓰면 깨끗하지 못해서 같이 일하는 오빠들에게 민폐인 상황이었다.

마트 청소의 주역이었던 무기들


진열대 밑도 문제였다. 사람들은 마트 진열대 밑을 볼 일이 좀처럼 없다. 물건만 꺼내가면 되지 그 아래 틈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거다. 그런데 여기가 던전 같은 먼지, 쓰레기의 숨은 소굴이다. 높이도 조금 있어서 주먹만 한 물건, 상품들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을 청소하려면 간단히 바닥을 청소하는 것보다 시간이 배로 드는데 진열대는 이십여 개가량 되니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닦기에도 많았다. 하루에 두, 세 줄을 청소하면 시간이 부족했다. 닦아내도 다음날이면 더러운데 청소해도 티가 안 나는 곳이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이었다. 그래서 대개는 진열대 밑은 건드리지 않거나 그 밑으로 먼지를 밀어 넣는 식으로 청소를 했다. 오빠들의 이런 청소는 슈퍼바이저에게 잘한다 칭찬을 받았고 뭘 자꾸 꺼내고 닦는 내 청소는 깔끔하지 못하면서 느리다고 구박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맡은 직원화장실도 꼼꼼히 청소하고 마치려면 나는 늘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가까이 늦었는데 청소뒤에는 늘 슈퍼바이저가 검사하러 와선 안 깨끗한데 느리기까지 하다며 타박을 했고 두 시간 급여밖에 줄 수 없다 했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일했지만 그는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고 나는 생각과 달리 대충 빨리 마쳐야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내가 거기에 있는 건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모두 불편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 일은 내가 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달여 후 나는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슈퍼바이저는 노티스 기간을 안 지켰다는 이유로 또 마지막 주급을 주지 않았다. 타지에서 가장 의지가 되지만 그래서 가장 사기도 많이 당하고 가장 피해를 주는 게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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