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는 교회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다. 머리숱이 적어 이마가 조금 넓고 둥그런 얼굴에 푸릇푸릇 올라오는 수염이 조금 연배가 묻어나 보였다.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젊은 느낌으로 입는 패션센스는 있지만 크지 않은 키에 배가 조금 나온 모습이 아재스러워 나이가 있겠거니 했다. 주 1회 교회에서 무료영어수업을 진행했는데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해봤대서 그런지 말투도 어딘지 모르게 노련하고 연륜이 느껴졌다. 그런데 몇 번 수업을 듣다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고 흠칫 놀랐다.(놀라서 미안하다;) 동갑임을 알고 난 후에도 함부로 대하기 부담스러운 느낌이라 어색하게 존대할 수밖에 없었다. 늘 웃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단호하고 강한 느낌을 주는 G는 사업가기질이 있었다.
G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나를 봤다는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울고 있는 내가 신앙이 좋아 보여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다.(호주에서 지낸 2년여 내내 힘들었고, 그만큼 감사해서 예배 때마다 울었다.) G가 제안한 일은 세일즈였는데 나 자신이 얼마나 영업에 부적합한지 아는 까닭에 나는 단박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대학시절 학교 내에서 행사로 잠시 파일애플꼬치와 음료수를 파는 것에도 젬병이었다. 음료수를 적게 담으려 컵 한가득 얼음을 담아 파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서 "사 드세요" 당당하게 외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옆에서 소일거리만 조금 돕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G는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고 자신이 영업을 잘하고 모든 노하우와 대사까지 제공할테니 너는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정확히 G는 사장은 아니고 교회의 50대 집사님 한 분이 대표였다. G는 거기서 총괄점장 격으로 일을 시작하는 차였고 나 외에 20대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을 직원으로 점찍어두고 컨택을 하는 중이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모두 제공하고 일을 하다 보면 영어도 급격히 늘 거라며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G에게 넘어가 결국 다음 주에 바로 합류하기로 하고 다니던 마트청소를 급하게 그만두게 되었다.
호주는 지역별로 여러 상가가 모여있는 커다란 쇼핑센터가 있다. 대형마트 두어 개를 중심으로 작으면 십여 개 남짓, 크면 수십여 개의 상점들이 입점해 있어 그 지역 중심가처럼 사람들이 자주,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이 쇼핑센터 로비를 한, 두 주 단기간 임대해 물건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하는 일종의 팝업스토어였다.
옆도시까지는 짧게는 두어 시간부터, 길게는 대여섯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데 첫날은 조금 떨어진 북부 도시로 가느라 인원들 모두 카라반 달린 차를 타고 여덟 시간쯤 이동했다. G를 제외하고는 다들 이야기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초면인지라 처음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무척 어색하고 긴장됐다.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인데 몇 시간을 딱 붙어 앉아서 낯을 가리느라 힘들었다.
캠핑장에 주차한 뒤 사장님 내외는 카라반에서 지내고, 우리는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 그렇게 큰 텐트는 처음이었다. 거실 양 편에 방 두 개가 있는 형태로 각각 남자, 여자가 두 명씩 나눠 잤다. 그래도 텐트인 건 변함없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텐트를 쳐보는 게 처음이라 어릴 적 아빠 따라 텐트여행을 다녀본 내가 지휘하며 세웠는데 크기가 크다 보니 설치하는 것도 철수하는 것도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는 날이면 쇼핑센터 로비에 간이테이블 4개를 설치하고 위에 물건들을 진열했다. 가려진 아래에는 판매용 물건들을 놓았다. 전기를 끌어오고 의자와 마사지침대를 옆에 깔았다. 우리가 파는 상품은 건강용품이었는데 냉온찜질팩부터 마사지기기까지였다. 의료비용이 비싼 호주에서는 몸이 불편해도 병원을 가지 않고 진통제로 견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핫팩과 마사지기기를 시연해 주면 반응이 놀라웠다. 직종에 따른 수입차이가 적은 호주는 사무직보다 현장직, 생산직 일을 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그런데 일을 많이 하면서 관절염 등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람이 많은 탓이었다.
원래부터 관심이 있고 손이 야무져서 안마 깨나 한다던 나라서 병증별 좋은 혈자리 위치를 외우고 시연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나 영업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관리자(사장님 내외 및 G)가 생각하는 영업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많은 시간을 써선 안 됐다. 손님을 살펴보고 몇 마디 질문으로 상태를 파악한 뒤 가장 효과적인 자리를 두어 번 마사지해 주는 게 끝이었다. 더 원하면 마사지 기계를 사시라 강하게 푸시했고 그렇게 수백 불어치 기계를 팔고 금세 또 새로운 손님을 상대했다. 반면 영업 초짜인 나는 손님에게 값싼 물건들부터 권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다.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무료전신마사지를 해주고도 물건을 못 팔고 있으니 관리자들이 보기엔 답답했다. G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매일매일 장부에 개인별 판매액을 기록했는데 일주일 가까이 내 이름 옆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매 순간 눈치가 보였고 다른 사람들이 걱정한다고 하는 말들이 날카롭게 들렸다.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받던 급여의 수십 배가 되는 상품을 판매하는 게 심적으로 어려웠다. 마지막 급여도 못 받고 급히 일을 마쳐 물질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에게 부담되는 금액의 물건을 자랑스레 소개하기엔 물건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상대의 아픔에 쉽게 공감했다. 상대가 일을 하다 어떻게 다쳤다던가 이렇게 몸이 안 좋다면 우선 그 어려움을 돕고 싶었다. 대가 없이 최선을 다해서. 어려움을 기회로 보고 상품을 팔아야겠다는 사고의 흐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무료로 혜택만 보고 가는 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도와드린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별로 억울하지도 않았다. 이러니 팔릴 리가!
그러다 한참만에(2주차쯤?) 찜질팩 한 세트를 팔았는데 드디어 마수걸이를 했다며 한턱을 내라 했다. 그때까지 호주의 레스토랑은 커녕 패스트푸드점도 가보지 않았던 나는 판매금액만큼의 돈으로 음식을 사서 모두를 대접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분위기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매일 수백, 수천 달러를 판매하는 그들에겐 적은 돈이었을테니. (근래 신입에게 음료수를 계속 사게 한 회사 문화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충분히 공감한다. 상사들에게 소소한 금액이 사회초년생에게는 충분히 부담스러운 돈일 수 있다.)
그렇게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일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성과는 잘 나지 않는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