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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Feb 06. 2024

평온한 삶, 불편한 마음

다시 돌아가는 길

혼자였으면 생각도 못했을 곳을 많이도 다녔다.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며 영업을 한 덕분이다. 여행이라기엔 밖을 다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쇼핑센터 오픈시간부터 마칠 때까지 호객과 영업을 해야 했기에 마치면 저녁시간이다. 호주에선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저녁. 그래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날엔 밝은 낮 시간에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대부분 괜찮아 보이는 경치에서 사진만 찍고 스쳐 지나가는 거지만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불로 1주일을 살던 초기가 우스울 만큼 먹고 지내는 것이 풍족했다. 일하느라 시간이 부족하니 점심은 사 먹고 아침, 저녁은 돌아가며 준비했는데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장님이 자주 저녁을 만들어주셨다. 기름, 설탕이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는 철학으로 만들어진 요리들이라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50대가 넘은) 남자 어른이 해주시는 요리는 잘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고 감사했다.
매주 숙박비 걱정을 하지 않는 것도 감사했다. 잘 곳이 있었고 할 일이 있었다. 낯은 조금 가렸지만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활기차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난 여전히 그 자리가 어색했다.
외향적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외향적인 척하고 있었다.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설명하며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쥐꼬리 같은 부진한 실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여전했다. 스스로 보고 자극을 받으라는 의미였는지 어쩌다 보니 내가 매일 매출일지도 작성하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실적을 집계해 기록하다보면 나는 늘 평균치를 밑돌았다. 실적에 비례한 수당을 받기에 항상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비교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이 사업을 점점 키워가는 중이라 밤이면 사람들과 홈페이지 구상에 대해 같이 이야기했다. 브랜드로고도 만들어 보라기에 틈틈이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생각지 않은 일들이 가득했고 하루 종일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쇼핑센터를 이동할 때마다 텐트를 치고 걷고, 매장물건을 깔았다 치웠다. 빨래는 캠핑장의 세탁실을 이용하고 샤워장에서 씻으며 몇 주씩 캠핑장에서 생활을 했다. 처음 며칠은 여행처럼, 캠핑 나온 듯 지낼 수 있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피로가 심해졌다.


(좌)카라반을 끌고 이동하던 길 (우)캠핑장에서의 텐트생활



모두에 교회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사장님이 기독교 사업체로 키우고 싶어 하신 탓에 아침이면 다 같이 모여 QT를 했다. 성경을 읽고 각자 자신이 느끼거나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점점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렵고 불편해졌다. 사생활은 물론이고 생각과 마음까지 검열받는 느낌이었다. 방금 읽은 성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그 내용이 너에게 왜, 어떻게 의미 있냐 물었고 대답을 하자면 순간순간 일상에서 느꼈던 감정,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일주일 24시간 내내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일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해도 불평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일의 실적이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잣대처럼 느껴졌다.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느낌이 나를 늘 불편하게 만들었다.)
"넌 왜 그런 생각을 하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
타인들과 솔직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힘을 얻어야 할 시간이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자기비판을 하는 시간처럼 흘러갔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기도를 더 해보라느니..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생활과 믿음이 비교, 판단받는 환경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동물원 사육장 안에 들어있는 느낌이랄까. 사장님 내외의 목표와 방향이 내 생각과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데 이곳에서 일과 생활, 신앙을 모두 같이 하는 게 가능한가 의문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얼마쯤 지났더니 같이 자는 언니가 나더러 괜찮냐며 물었다. 내가 밤마다 자면서 끙끙 앓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요? 난 몰랐는데?"

가볍게 지나갔지만 가볍지 않았다. 바쁜 낮 동안에는 잘 못 느끼다 밤이 되면 잇몸이 아프기를 반복하더니 점점 더 통증이 심해져서 음식을 먹기 힘든 정도가 되었다. 아파서 표정관리가 안 되니 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호주에서 치과를 가려면 예약을 하고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충치 하나를 아말감으로 때우는데도 백 불 이상(십만 원가량) 들었다. 다른 치료가 조금이라도 더해지면 백만 원은 훌쩍 넘을 예정이었다. 참고 기다렸다가 비싼 치료를 받느냐 아니면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느냐 였다. 같은 비용이면 말 통하는 한국이 마음이 편하다. 급히 알아본 왕복비행기 가격은 60여만원이었다. 다른 여지가 없다는 생각으로 사장님께 양해를 구했다. 사장님 내외는 그곳에서 치료받기 원하셨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있었다. 한 명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의 업무가 그만큼 늘어나고 휴식 시간이 줄어들기에 인력보충이 바로 이뤄져야 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리 알리지 못한 채 급작스럽게, 껄끄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한국행 왕복비행기를 끊고 큰 짐들은 맡겨둔 채 백팩 하나 달랑 매고 돌아왔다. 호주로 떠난지 4개월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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