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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Nov 11. 2024

뽀둥한 귀환

윽.. 억울해..

호주에 간지 4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지독한 치통을 견디지 못하고 치료를 받으러 온 참이었다. 이렇게 금방 돌아올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쉴 곳이 있고 사람들과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벼웠다. 비행기는 오픈일정이라 마음 편히 3-4주 정도 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 편도 비행기보다 왕복비행기가 더 싸서 구매한 티켓이었고 아까우니 날릴 수 없어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



치과치료는 예상보다 훨씬 간단하게 마무리 됐다. 스트레스성 치주염? 치은염?이라 두세 차례 방문해 스케일링과 관리, 점검을 받는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해외로 나간다고 이야기드리니 사랑니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진단해 주셔서 사랑니 발치까지 했다. 자주 다니던 치과라 애당초 별 걱정은 없었지만 절개 없이 솜을 쑤셔 넣고 잇몸을 몇 번 누르는 것만으로 고통 없이 뽁 사랑니는 빠졌다. 전체 진료비도 5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아서 효율적인 한국행이었던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호주에서의 예상견적은 100만 원 이상이었다.)



그런데 어째 4개월여 만에 나를 본 사람들의 시선이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4개월 안 본 사이에 10킬로그램이나 쪄서 뽀동뽀동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반가움이 담긴 "가서 잘 먹고 지냈구나."라는 말에 뭔가가 속에서 울컥했다. 막달에야 잘 먹긴 했지만 그전 3개월 동안 99센트 밀가루 한 봉으로 일주일을 산다고 애썼던 일, 4불짜리 식빵 주워 먹고 희희낙락했던 일, 버스로 십여분이면 되는 길을 왕복 4시간씩 걸어 다녔던 일들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마지막 달에 몰아 찐 게 아니라 이건 순전히 밀가루만 먹으며 생긴 살집인데... 힘들었는데... 에잇... 억울하다.



세계적으로 비만을 이야기할 때 저소득층의 비만이 더 심각하다고 한다. 영양이 풍부한 채소, 과일, 고기보다 짜고 달고 기름진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가 값싸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열량 저영양 식이가 비만의 원인으로 꼽히는데 돈 없는 외국인노동자였던 나는 저소득층의 식단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거다. 밀가루 외엔 딱히 다른 걸 먹은 건 기억나지 않아서 고열량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4주 동안 집에 머물며 엄마가 해주는 영양 가득한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5킬로그램이 줄었다. 역시 먹는 게 문제다.



녹록지 않은 4개월의 워홀 생활을 겪고 나니 다시 돌아간다는 건 더욱 막막해 보였고, 집은 떠나기 싫을 만큼 포근했다. 자꾸만 따뜻한 방구석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 그래도 어차피 떠나기로 했던 것, 칼은 뽑았는데 무도 못 잘랐으면 뭐라도 잘라보러 가야하지 않을까? 사나이건 여자 대장부이건... 그렇게 다시 집을 떠났다.

제발 부디 행복하자. 건강하자. 뭐라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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