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말장난으로 날 단련시켰다. 뭘 먹다 잘못해서 혀나 볼을 씹으면 늘 고기가 모자라냐 묻고 절로(저리로) 가지 말고 교회로 가라는 정도는 기본이다.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가다 보니 말장난을 듣는 사람은 속이 터지는데 하는 사람은 재미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매번 당하던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재미있으니까. 말 그대로 말로 장난하며 놀게 된다.
가정환경 덕에 나도 아이에게 말장난이 일상이다. 밥 먹다가 입에 밥이 가득한 채로 말하는 아이
-엄마, 마시써
-엄마 멋있다고? 고마워
-아니. 마싰따고.
-마를 씻어? 왜?
-아~니~. 맛.있.다.고.
-마가 어디에 있는데? 마 여기 없는데? ㅎㅎㅎ
-아이~잉 흥.
아이 입장에선 불통도 이런 불통이 없다. 소소한 이야기를 몇 번씩 반복해야 하다니 얼마나 불편하고 불필요한 일인가. 그래도 재미난 걸 어째. 너도 커보면 엄마를 이해하겠지. 엄마는 너를 위해 하는 거란다. 푸힛.
말장난을 하려면 머리를 재빨리 굴려야 한다. 비슷한 음절이나 뜻을 재빨리 생각해 내려면 순발력과 상식이 있어야 하는 법. 초성게임 응용버전쯤 된달까.
시대를 막론하고 신조어들은 항상 있어왔다. 안구에 습기 차다, 안습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개그맨 지상렬 씨도 있고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표현이 널리 쓰이던 때도 있다. 따봉, 방가, 당근이지, 엽기, 대박, ㅋㅋㅋ, 즐(KIN), 초딩, 뷁, OTL, 썩소, 까리하다, 짱난다, 깜놀, 오나전, 지못미, 훈남, 완소 같은 예스런 버전부터 신박하다, 비추, 갓생, 꾸안꾸, ○린이, 돈쭐, 킹받네, 국룰, 안물안궁, 세젤예, 혼코노, 엄근진, 케바케, 흙수저, 비담, 반모, 최애, 흑우, 억텐, 중꺽마 등 최근까지 수많은 표현들이 계속 생겨나고 사라진다.
주로 신조어는 뜻의 조합이나, 의미의 반전, 조형 형태의 변형, 축약어, 소리와 리듬의 재미를 추구하는 형태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단어들을 만들어내는 이름 없는 사람들은 대개 언어에 센스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낯선 조합의 단어를 이어 의미 있게 만들고 소리의 운율과 매력을 찾아내는 센스다.
요즘은 쿠쿠루삥뽕이라던가 어쩔티비, 저쩔티비 등의 따지고 보면 큰 의미 없는 단어들도 많다. 굳이 이런 단어를 사용해야 하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게 정말 재미있나?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존중한다.
과거 국어시간에 배운 고전시가들을 보면 해석할 수 없는, 별 의미 없는 단어들이 있었다. 괜히 공부거리만 늘어나게 만들었던 그 말들. 얄리얄리얄라셩 얄라리얄라(청산별곡),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서경별곡), 아으 동동다리(동동),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쌍화점)같이 말이다. 이제와서는 악기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고 추측할 뿐 정확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단어들이 운율을 주고, 재미를 준다. 어쩌면 이 단어들이 그 시대 작가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였을지 모른다. 입에 붙어 두루 사용되던 유행어였을지도.
언어는 흥겨워야 한다. 간결하고 분명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단정한 단어와 글도 있지만 일상에서의 말은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 사람들은 즐거워야 자꾸 사용한다. 의미만을 위해 사용하는 말들은 너무 팍팍하고 건조하다. 이 단어들의 각 잡힌 사이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말장난이나 유머, 신조어들이 끼어든다. 유독 예능프로그램에서 튀는 자막들이 자리값을 톡톡히 하는 이유가 있다.
흥겹고 유쾌한 감정이든 불쾌하고 답답한 감정이든 이를 담을 수 있는 언어의 틀이 필요한데 이 감정을 좀 더 편하고 유연하게 드러내기 위해 (혹은 경제성을 위해) 새로운 단어들이 만들어진다. 어릴수록 새로운 단어의 즐거움에 민감히 반응하고 잘 빠져드는데, 사춘기와 맞물리면 기존 체제에 수긍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성향이 도전적이고 새로운 단어에 찰싹 붙는다. 새로운 단어를 통해 공감하는 이들끼리만 소통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2017년 자료 두잇서베이
이 신조어의 사용에 대해 기성세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글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것이 외계어마냥 달라지다 보니 소통이 어렵다. 어쩌려고 이런 말을 쓰나 싶다.재미나고 편하다는 새로운 말의 틀에 갇혀서 되려 표현력과 사고력이 떨어지는 걸 두고 보기도 힘들다. 기뻐도, 슬퍼도, 놀라도 모든 상황을 헐, 대박으로 해치울 수 있게 되면 아이들의 언어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신조어들은 사회, 문화적 배경과도 이어져 있다.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려 쓰이기도 한다. '수저론'을 통해 계급갈등을 담고 '~충'은 특정계층, 성별에 대한 비하와 혐오도 담는다. 흙수저라는 표현을 가슴에 새기면 노력 따위 필요없다며무시하는 무기력한 아이로, 능력 없는 부모와 제 집을 비관하며 살기도 한다.
말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텍스트의 틀에 갇혀있지 않을 때 생각이 자라고 제 사고의 틀이 분명해진다. 신조어를 쓰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신조어처럼 만들어볼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것이 즐겁고,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어지면 더욱 자신의 바탕을 넓혀갈 수 있게 된다.
아이와 틈날 때마다 논다. 체력은 안 되니 편하게 입만 나불거린다. 태권도 차를 기다리다 고양이를 봤다.
-나 검고 봤어.
-검고?
-검은 고양이
-아하. 그럼 이건 뭐게? 하고.
-하얀 고양이
-얼고는?
-얼룩고양이?
-잘하네.
-그럼 중고.
-중학생 고양이?중간 고양이?
-아니. 중고고양이.
-그게 뭐야~
말장난은 쉬운 것부터 시작이다. 굳이 어휘에 도움이 안 되면 어떤가. 재미있었으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