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방학 때 볼 동시집을 두권 빌려왔다. 제주어 시집과 글, 그림, 만화, 노래가 어울려 이게 시집인가 싶은 책이다. 아이가 일상생활이나 유튜브 영상에서 쓰는 말들과 다른 단어의 아름다움을 알았으면 해서다.
예상대로 아이는 엄마가 같이 보자는 시집이 싫다고 소파에 누워 뒹굴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책장을 넘겨가며 마음에 드는 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잠잠한 아이, 듣고 있다. 사투리를 맛깔나게 읽으려 애쓰며 말맛 나는 시들을 골라 읽는데 아이가 벌떡 일어나 휙 하고 엄마 손의 책을 낚아챈다. 처음부터 한 장씩 휙휙 넘기며 들은 내용과 글자를 맞춰보더니 한 페이지에 멈춘다. 역시나 쉽고 리듬감이 있는 시가 마음에 든단다. 이럴 거면 또 말놀이 동시집을 빌려 올 걸 그랬나.
눌러서 크게 보세요. 박희순 시인의 동시집<바다가 튕겨낸 해님> 중 '말이 안 통해도'가 아이의 취향
나는 경상도출신이지만 가족들도 사투리를 쓰진 않는다. (몇몇 단어는 사용하기도 한다. 정구지 같은.) 굳이 사용하자면 할 수 있고 들으면 이해하지만 주변에 걸쭉하게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일상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탓에 평소에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친오빠에게만 썼던 "오빠야"에 억양이 조금 남았을 뿐. 그래도 나는 사투리를 좋아한다. 사투리는 정서가 묻어있다. 언어는 생각의 바탕이 되기에 미묘한 표현 차이로 달라지는 느낌을 아는 건 그만큼 자신의 세상이 넓어지는 일이다. 몇 개 국어를 하는 느낌이랄까. 마침 옆에서 전라도 사투리도 접하면서 자라 전라도 지방 특유의 푸근함도 느꼈다. 다양한 사투리가 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좋다.
아이가 자라면서 일부러 사투리를 알려줬다. 사투리 하는 꼬마들의 모습이 귀엽다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어차피 미디어세대인 아이는 익숙한 미디어의 말투를 따라갈 테고 어설프게 접한 사투리는 어설프게 이해할 테니 네이티브 격인 엄마가 알려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마침 시기가 맞아 개그맨 김시덕 님의 사투리 게시물을 부교재로 자주 사용했다. 개그콘서트의 지역별 사투리영상도 물론이다.
사진출처 : 서위트파파 김시덕님 인스타
초반에 아이는 외계어를 듣는 듯 어리둥절하더니 조교엄마의 시범에 차츰 뜻과 용도를 이해해 갔다. 재미를 알아가면서 따라 하기도 했는데 여러 사투리를 들려줬더니 처음엔 지역별 사투리가 섞여 어디 말인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머하노?' '가가 가가?'등은 초급 수준은 물론이고 '푸다무라' '알리도' '만다꼬'같은 응용문장도 구사하는 준네이티브의 수준에 올랐다. 물론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아직도 종종 몇몇 표현을 잊어버리지만 말이다.
영어, 외국어를 가르치듯 사투리를 가르친다. 다양한 우리말을 깊이 알기 바란다. 표현이 넓어지는 만큼 가슴에 담고 느낄 수 있는 폭도 넓어지길 바란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과도 거칠 것 없이 소통하고 가장 순수하고 순박한 정서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과거와 현재, 지역과 지역을 잇는 언어의 세계를 자유로이 유영하기를... 바라는 건 너무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