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답터기질이 다분한 아버지덕에 90년대 초부터 컴퓨터를 다루었던 나는 30년이 넘게 컴퓨터와 함께 하고 있다.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아서 가격이 비쌌던 초반에는 내가 오롯이 컴퓨터를 차지했던 건 아니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쯤은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앞뒤로 툭 튀어나온 브라운관 모니터와 얄팍한 플로피디스크를 끼워 넣던 본체는 뭔가 신기했다. 키보드로 명령어를 입력해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던 환경도 금세 배울 수 있었다. 나우누리, 하이텔로 불리던 전자통신의 띠디디~ 연결음도 친숙하게 즐기며 낯선 이들과의 채팅도 했다. 물론 전화를 써야 하니 얼른 끊으라는 호통도 종종 들으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 윈도우즈가 출시되고 마우스가 생기면서 새로운 환경이 열렸다. 검은 화면에 하얀 글자가 전부이던 문자세상에서 알록달록 총천연색의 배경화면을 보게 되고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거나 방향키를 사용하는 대신 마우스로 보다 쉽게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윈도우즈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게임 지뢰 찾기와 프리셀은 오랫동안 내 최애였다.
룰도 단순하고 그래픽이 화려하지도 않은 데다 딱히 긴장감도 없는 그 게임이 뭐가 그리 재미있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처음 접할 당시에야 새로움과 충격이었지만 말이다.
지뢰 찾기는 난이도별로 판 크기가 달라지는데 승률을 항상 9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게 내 목표였다. (승률이 떨어지는 날에는 전적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지뢰를 찾아 깃발을 모두 세우면 끝나는데 지뢰를 터트려 죽는 건 부지기수고 어느 날은 지뢰보다 세운 깃발 개수가 더 많아 곤혹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은 사이즈는 시간을 단축하는 게 재미있었고 큰 사이즈는 생각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많아 풀어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처음 새로운 판을 받고 아무 데나 누르다 보면 지뢰를 눌러서 터지기도 하는데 이러다 터져도 재미있고 안 터지면 또 다른 빈 공간을 찾아 마구 눌러댔다. 각 숫자를 보며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점점 익숙해지다 보니 일련의 과정이 반자동처럼 흘러가며 빈틈없이 딱딱 맞춰지곤 했다. 어찌나 빠져 있었는지 잠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지뢰 찾기 판이 펼쳐졌고 혼자서 숫자들을 열어가며 나 혼자 머릿속의 지뢰 찾기를 하다 잠드는 날들도 종종 있었다.
(좌)지뢰찾기, (중)프리셀, (우)스파이더게임
프리셀은 솔리테어 즉 혼자 하는 카드놀이 중 하나인데 52장의 카드가 뒤죽박죽 8줄로 배열되어 있는 것을 오른쪽 상단의 홈셀에 순서대로 A부터 K까지 넣으면 된다. 왼쪽 상단의 비어진 4칸이 어떤 카드든 잠시 저장할 수 있는 프리셀이다. 카드를 검정과 빨강순으로 숫자를 맞춰 쌓으면 옆으로 그룹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잘 쌓아가는 게 중요하달까. 역시나 배치된 카드들을 잘 보고 어떤 순서로 쌓아야 할지 전략이 필요하지만 생각 없이 하다가 끝난 대도 큰 상관은 없다.
그리고 윈도우즈 새 버전에서 추가된 스파이더게임 역시 솔리테어의 하나로 무작위로 배분된 카드를 A부터 K까지 순서대로 쌓으면 된다. 카드는 스페이드 무늬 하나인데 이어지는 순서의 카드 위나 빈 덱으로 이동이 가능하고 한 줄을 맞추면 사라진다. 더 이상 옮길 카드가 없으면 오른쪽 하단의 카드덱을 눌러 기존 카드 위로 새로운 카드를 한 장씩 받아서 다시 순서를 맞추는데 카드를 맞춰 모든 덱의 카드를 없애면 된다.
카드게임들은 규칙들이 각각 달라 조금 낯설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간을 재는 것도 아니고 진대도 큰 타격이 없어서 부담이 없다. 조금씩 변화를 거쳐 요즘은 모바일로도 즐길 수 있도록 앱이 출시되기도 했다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아닐까? 온갖 화려한 그래픽, 사운드를 장착한 게임들이 많은 요즘에 이런 심심한 게임들이 사랑받는다고?
단순함에서 오는 편안함일까?
옛날이야 문만 나서면 펼쳐지는 하늘이나 물 같은 자연을 보며 누리던 잔잔함, 편안함을 요즘은 애써 찾아가야 만날 수 있다. 푸르른 자연 속에서 멍하니 생각을 비우던 것들이 거리가 멀어지면서 이런 모습으로 변모된 것이 아닐까 싶다. 손을 움직이는 명상이랄까. 머릿속 잡생각과 마음의 소리들을 잠재우면서 약간의 흥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에 소소한 게임들이 사랑받는 것 같다. 요즘엔 힐링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벼운 플레이를 하며 아름다운 그래픽과 사운드를 즐기는 게임들도 많다. 복잡한 일상에서 스트레스받아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릴 단순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퇴근하고 온 아빠가 하릴없이 돌리며 구경하는 TV처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돌아가는 릴스처럼, 캠핑장에서 눈길을 빼앗는 모닥불처럼... 방황하는 시선을 잡을 단순한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닐까. 당신을 사로잡는 익숙한 단순함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