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웠던 지난밤, 우연히 튼 TV에서 비상계엄령 속보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이... 각종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덧붙이고 있었다. 평소 정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터라 대충 훑어보니 아, 여태 그걸로 싸우고 있던 건가? 싶고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 갈건가 하는 생각에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을 막아서서 대치하는 와중에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가고 시시각각 흘러가는 추이를 보고 있자니 어느 드라마가 이것보다 극적일까 싶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장에 의결충족수를 맞춰 국회의원들이 모여들고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본회의를 시작하자 재촉하는 모든 순간순간이 현실인 듯 아닌 듯 까마득했다. 다행히 비상계엄령 선포 2시간 30분여 만에 국회가 본회의를 개의하고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고, 새벽핑계로 국무회의를 못한다며 미적대던 윤 대통령이 새벽 4시 27분 계엄 해제를 선포했다.
새벽까지 TV앞을 못 떠나는 엄마에게 자다 깬 아이가 물었다.
-엄마, 뭐 해?
-응, 지금 우리나라에 큰일이 나서 뉴스를 봐야 해.
혼자 잠들기 무섭다는 아이더러 얼른 들어가 자라고 하고 비몽사몽 맞은 아침. 퀭한 얼굴에 여느 때와 다른 모습에 아이가 먼저 물었다.
-엄마, 왜? 못 잤어?
-응, 간밤에 우리나라에 비상계엄령이라는 게 있었거든.
-그게 뭔데?
-대통령이 군인들을 시켜서 사람들이 함부로 모이지도 못하게 하고 TV나 신문도 막는 거야.
-왜?
-북한 때문에 우리나라가 위험하다고. 그런데 사실은 나라가 위험한 게 아니라 대통령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다 해제됐어.
-그런데?
-그런데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위험한 나라라고 온 세계에 광고한 게 되어버려서 우리나라 손해가 어마어마할 것 같아.
-그래?
-응. 나라가 뒤집힐 뻔했어. 엄청난 밤이었어.
엄마의 역량이 부족해 많은 설명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45년 만에 선포된, 그리고 아이가 기억해야 할 첫 비상계엄 아닌가? 학교 선생님이 부언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싶었는데 아직 저학년이라 그런지 아무런 말도 없으셨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만든 비상계엄 관련 수업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 숨 가쁜 밤에 아이들에게 알려주려 자료를 정리하고 PPT를 만든 선생님이 있었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현실을 알려줄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는 시민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지난밤 애썼던 모든 시민들이 보였다.
이미 계엄령을 경험해 무서움을 아는 세대들이 두려움을 뚫고 국회에 달려 나와 총을 든 계엄군을 막고 대치하는가 하면, 긴급출동했지만 상황을 파악한 듯 흥분한 시민들을 안아주며 진정시키고 죄송하다 말을 남기고 떠난 군인들, 긴급히 모여 만장일치로 계엄령 해제를 선포한 국회, 그리고 계엄논의에 참여할 수 없어 사직서를 제출한 정부 관료. 한 명 한 명 자신의 의견을 게재하며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지켜가는 모습이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만든 수업자료와 실제 수업 시연
이대생이 낸 성명문을 봤다. 각 대학 학생들이 한마음으로 모여 비상계염사태를 규탄하고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모습을 본다. 누가 이 세대더러 정치에 무심하고 항쟁의 시대를 모른다고 할까? 직접 계엄령을 겪은 세대로서 민주주의를 지켜가고 있음을 명징하게 보고 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아무리 얘기해도 부족하다. 언젠가부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롱하고 왜곡하며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냈다. 이를 바로잡으려 영화, 다큐멘터리로 계속 만들어졌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를 여는 사람들은 설득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들과도 함께 선택을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눠지는 게 민주주의인 탓에 절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국민의 의무를 지켜야 함을 되새긴다. 최선을 뽑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고, 최선, 차선이 없으면 최악 대신 차악이라도 뽑아야 한다.
역사는 교과서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번 시국을 겪으며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될 이 세대를 응원한다. 아이야, 너 역시 민주주의의 다음 세대로서 이 시대를 바로 보고 배워가도록 작은 것이나마 도울게.더 나은 민주주의를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