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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재벌샘정 Jun 14. 2021

엄마의 집밥 말고 가족의 집밥

요리는 여자의 일이 아닌 취향의 문제

과학교사인 나의 수업에는 과학 글쓰기가 있고

꼭 들어가는 주제가 있습니다.


<나는 독립된 생명체인가?>


이 글을 쓰고 나면 아이들은 놀랍니다.

남자아이들은 더 놀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이지 못한 생명체가 '남자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신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양분을 직접 만드는 식물과는 달리 종속영양 생물인 동물.

아이들이 놀라는 부분은 여기입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 얻어먹는"

"아내가 해주는 밥 얻어먹는"


생존에 필요한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독립적이지 못한 생명체가 '남자 사람'이라는 사실에. 


물론 모든 남자가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가 대부분 남자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봐도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음식을 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정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보편적으로 여자의 일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모임을 하던 한 분이 집에 전화를 합니다.

딸아이에게 오빠와 끼니를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왜 큰 아이에게 전화하지 않느냐니까 그분이 이러더군요. 

"우리 아들은 아무것도 할 줄을 몰라요. 공부만 할 줄 알았지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그래도 작은 애는 딸이라서 그런 지 아들보다는 나아요."


그분은 누군가의 딸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자신의 아들의 밥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요?

당신 딸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누군가의 아들의 밥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글쓰기를 한 다음 아이들에 부탁합니다.

"최소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일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육아의 목적은 <독립된 생활인>이었고,

30대와 20대가 된 두 아이는 독립을 했고, 엄마의 가지가지 밑반찬에 대한 기대 없이 스스로 밥을 잘해 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두 아이들 사이에서 

"밥은 먹고 다니니?"라는 질문은 거의 없습니다.


매정한 엄마처럼 느껴지나요?


집밥은....

엄마의 집밥이 아니라 가족의 집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아버지가 해주던 음식, 집밥.

엄마가 해주던 음식, 집밥.

아들이 해주던 음식, 집밥.

딸이 해주던 음식, 집밥.


그래서 집밥은 가족의 집밥.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내 입에 딱~~ 맞는 그 맛은 오로지 나만이 알기에...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듭니다.


가족들은....

특별한 날이거나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청하는 경우가 아니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그 상에 숟가락을 얹어 줄 때가 많습니다.


<요리는 권력>이라 말하며

권력은 휘들러야 맛, 이라며

요리라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월요일, 학교에서 일이 많아 조금 지쳐서 퇴근을 했어요.

이제는 아이들 독립하고 부부만 살고 있는 샘정네입니다.


오늘 저녁 메뉴로 샘정이 선택한 것은 스테이크 샐러드.


어제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면서 샐러드용으로 미리 준비를 해두었거든요.



텃밭 상추와 깻잎, 그리고 청경채를 섞어 준비하고 

양파, 토마토, 오이, 삶은 달걀, 치즈, 그리고 스테이크 샐러드에 필수인 파인애플까지 접시 담아줍니다.



밑간을 해 두었다가 버터에 구운 고기를 잘라서 얹어주면 됩니다.

드레싱은 고기가 간이 되어 있기도 해서 간단히 발사믹 식초만으로 완성한 스테이크 샐러드입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맘대로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스테이크 샐러드를 만드는 동안 윤스퐁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대구 곤이로 맑은 탕을 끓이셨습니다.


"니꺼만 찍지 내껀 왜 찍노?"

하십니다.ㅎㅎ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비롯해 호박죽에 곰탕, 백숙까지 못하는 게 없는 윤스퐁입니다.

마누라가 자기 먹고 싶은 것만 자꾸 하니까 

먹고 싶은 거 한 번 <얻어> 먹으려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 먹으려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는 윤스퐁입니다.

그래서 별명이 <우리 집 자연인>입니다.

마누라의 이런 꼬드김에 넘어가 주는 척하면서요.

아주 고단수거든요.ㅎㅎㅎ


"자연인의 꿈을 일단 반만 먼저 이루셔요. 산에 들어가서 사는 건 나중에 하시고 산속에서 사는 삶의 방식은 지금, 여기서 하면 되잖아요. 산에서는 어차피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다~~ 아 해야 하잖아요. 그것을 지금, 여기, 마누라 옆에서 하면 얼마나 좋아요. 혼자 시행착오하면서 터득하는 것보다는 마누라에게 배우면 훨씬 쉽게 할 수 있잖아요."


스테이크 샐러드를 먹었지만 시원한 국물에 밥, 김치가 생각난다며 본격적인 저녁을 드셨답니다.^^

 



33년 차 부부인 우리.

서로의 것을 존중하려 노력하며 살고자 합니다.


혼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때는 무엇을 하든 노터치.

하지만 함께 할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은 사진을 찍으며 음식을 하겠으니 불편해도 감수해달라는 말에.... 그래라.... 하십니다.


왜 불편했냐고요?

샐러드 만들기 위해 재료를 하나씩 올릴 때마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 휴대폰을 키 큰 삼각대에 끼워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 사이에 두었거든요. 같이 주방을 쓰니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ㅠㅠ

삼각대를 저렇게 두고 음식 하면서 사진을 찍었거든요.




사진 속의 시계를 보니 저녁을 다 먹고 주방 정리를 끝낸 시간이 7시 15분이었네요.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라 보통 1시간 이상은 식탁 앞에 앉아 있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났어요. 


주방은 엄마의 공간, 아내의 공간, 여자의 공간이 아닌, 가족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식을 만드는 일은 가족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리는 남녀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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