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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하 Aug 07. 2020

갑자기 stentman이 되고 나서

stuntman이 아니라 stentman입니다.

  2020년 7월 1일 스텐트 삽입시술을 받고 나서 스스로 stentman이라 칭해봅니다. stentman이라는 단어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니 잘못된 표현, 틀린 말일 수도 있겠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이제 평생 약을 먹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지난 한 달간 건강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귀찮은 일이 생겨서 신경 쓰이네’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약이라도 잘 챙겨 먹고 현 상태라도 유지하자’라는 생각에 이르자 건강관리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건강관리를 잘하기 위해 먼저 stentman이 된 과정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평소 취미 삼아, 운동삼아 하던 근교 산행을 하는데 늘 가던 산행길인데도 불구하고 3월부터 갑자기 가슴이 너무 아프고 숨이 가빠졌다가 호흡을 고르고 천천히 걸으면 괜찮아지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역류성 식도염 약을 2주 또는 한 달 정도씩 먹어왔었고, 위내시경을 통해 역류성 식도염이란 진단도 받았기에 흉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매일 다니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이 이상하다 싶은 날에는 방송에서 마스크를 쓰니 숨쉬기가 불편하다는 시민들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어서 나도 그런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4월, 5월에도 산행을 계속했고, 산행 때마다 전에 없던 흉통이 생겼지만 호흡과 속도를 조절하며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산행을 하며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흉통과 산행 때 생기는 흉통을 비교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뭔가 좀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혹시나 해서 헬스장에서 자전거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속도를 유지하며 타보기도 하고, 트레드밀의 속도를 높여 달려보기도 했는데 역시나 좀 시간이 지나 숨이 차 산행 시 생겼던 흉통이 생겼습니다.  이게 나의 한계인가 보다, 이제 내 체력도 중년이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흉통이 생기기 전까지만 강도를 높이자 생각하고 페이스를 조절하며 운동도 산행도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이런 몸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아내에게 얘기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하면서 말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가 “내일 출근하면 시간 내서 가까운 병원에 꼭 가 봐요.” 동갑내기인 아내는 “우리 나이 되면 여기저기 고장 난데, 아픈데 생기면 참지 말고 빨리 병원 가요. 귀찮다고 병 키우지 말고”라고 당부했습니다. 다음날 출근 후 잠시 짬을 내 사무실 길 건너의 내과에 갔습니다. 카드 사용기록을 확인해 보니 6월 3일입니다.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내과 전문의께서 “작은 병원에서는 해드릴 게 없어요 빨리 큰 병원을 가셔야 합니다.” “내과 말고 근처 어디로 가야 되나요?” “전형적인 무슨... 증상입니다,” “그게 뭔가요?” “혈류 어쩌고... 큰 일 날 수 있으니 소견서 써드릴 테니까 큰 병원에 빨리 가세요” 처방전도 없이 소견서를 받아 들고 나왔습니다. 

 

  저녁에 소견서를 아내에게 보여주며 “큰 병원 가래, 가까운데 가지 뭐, 예약 좀 해줘요” 집에서 마을버스 타면 두정거장,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에 시립병원이 있습니다. 평소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그 시립병원은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의료진도 좋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내에게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다행인지 그 병원에 심혈관센터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6월 11일로 예약을 하였습니다. 6월 3일 이후 소견서에 나온 단어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아... 내가 간단치 않네..’ 


  그런데도 평소 하던 대로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등산 앱의 기록을 보니 6월 6일 설악산 공룡능선을 갔다 왔습니다. 속으로 이게 마지막 일수도 있겠구나 앞으로 등산은 못하겠지 생각하며 숨을 고르던 기억이 납니다. 예약된 6월 11일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지금 당장 입원하면 좋을 텐데 병실이 없다고, 간호사 분께 뭐라 말씀하시고, 간호사분이 병실 알아보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시라고, 이렇게 진료실 밖에서 좀 기다리니 간호사 분이 병실이 6월 30일 나올 수 있는데 그것도 확실치 않으니 변동사항 있으면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오늘은 6월 30일로 예약하시고 가시면 된다 해서 3주 치 약의 처방전을 받아 진료를 마치고 왔습니다. 


  6월 30일까지 20일 정도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평소처럼 산이나 다니자. 6월 30일 이후 못 갈 수도 있다 생각하고 산행을 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무모한 짓 같기도 했지만 나름 즐겁게 산행을 하고 왔습니다. 6월 14일 관악산, 6월 20일 광명5산(광명시에 소재한 도덕산-구름산-가학산-서독산-성채산), 6월 28일 백두대간 청화산-조항산-대야산 구간. 아내도 앞으로 산에 못 갈 것 같다는 말에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라 당부하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습니다. 


  6월 30일 3시 좀 넘어 고3인데도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않은 작은아이와 함께 입원 수속을 밟고 병실에 누워 있는데 심심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7월 1일 오전 8시에 심혈관조영술이 있으니 ‘서혜부’ 털을 제거하라고 제모제를 한통 주는데 ‘서혜부?’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서혜부가 어디예요?”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사타구니의 털을 제모했습니다. 


  7월 1일 이동 침대에 누워 심혈관조영술실로 가니 다시 한번 서혜부 털을 깔끔히 제거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시술은 오른쪽 팔목으로 했습니다. 도대체 여긴 왜 제모를 한건 가요? 


  보통 심혈관조영술로 스텐트를 삽입하면 다음날 퇴원한다고 하는데 나는 시술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꼬박 24시간 있었습니다. 이따금 이 사람 저 사람 왔다 가고, 채혈하고, 검사하고, 왜 내가 여기 있냐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대충 눈치로 혈압이 널뛰기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180 직전까지 올라갔다가 110대로 떨어졌다가 150 됐다가 가만히 누워있는데 혈압이 왜 이러지 했습니다. 이렇게 중환자실에서 24시간 있다가 입원했던 병실로 옮겨서 7월 3일에 퇴원을 했습니다. 심혈관조영술로 스텐트 하나 삽입하고 4일 입원했으니 내가 일반적이지는 않은가 봅니다. 


  퇴원 후 아내와의 약속은 지켰습니다. 산에 가지 않았습니다. 분명 의사 선생님은 전처럼 운동하고 산에 다녀도 된다고 했는데 아내는 직접 듣지 않아서인지 믿지 않았습니다. 퇴원 시 받은 약은 아침에 5알, 저녁에 2알 한 달치였습니다. 아내가 친구 남편은 스텐트 3개 했는데 하루에 약 4알 먹는다고 “자기 약이 더 많아...” 아내는 친구 남편보다 더 안 좋은 건가 고민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술 후에는 주 1회 받는 바이올린 레슨도 쉬게 되었습니다. 오른 손목이 시큰거리기도 했고, 동맥을 건드려 놨는데 활 잡는다고 손목 쓰는 게 신경 쓰이기도 해서 6월 25일 이후 지금까지 레슨을 쉬고 있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다시 시작해 보려 합니다. 


  7월 23일에는 24시간 혈압 감시 검사, 25일에는 동맥경화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갔고, 30일에 진료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이날은 나보다 더 바쁜 아내가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함께 갔습니다. 진료실에서 아내가 폭풍 질문을 쏟아 냈습니다. 남편이 잘못될까 봐 궁금한 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질문 중 “이 사람이 산에 다녀도 너무 좀 심하다. 하루에 20, 30킬로 10시간씩 다닌다.” 의사 선생님은 “괜찮아요.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보 들었지? 운동 열심히 하래” “그래도 조심해요”. 약도 2알 줄었습니다. 아침 1알, 저녁 1알 약이 2알 줄어서 인지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에 몸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8월 1일에는 오랜만에 인릉산에 다녀왔습니다. 청계산 입구역에서 청계산을 가려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고 해서 산책길 같은 인릉산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세곡동으로 하산 후 함께한 산우 네 명과 근처에 살고 있어 식당으로 달려와 준 두 명 합 7명이 함께 한우로 몸보신을 하며 내 건강상태를 말해주었습니다. 술, 담배도 안 하는데 왜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산에 다닐 때 나도 조심할 테니, 여러분들도 내가 몸에 이상이 있으면 그에 맞게 대응을 해달라고. 혹시라도 이런일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급할땐 119를 불러 달라했습니다. 그리 하겠다 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산에 다니자 합니다. 


                내 병명은 '불안정 협심증'입니다.

                stent를 하나 삽입한 stentman입니다.

                stentman이 됐다고 위축되지 말고 그렇다고 무리하지도 말자는 생각입니다. 

                한달 넘게 만져보지도 못한 바이올린 오늘은 꺼내봐야 겠습니다. 

                22일 백두대간 희양산구간도 걸어볼 예정입니다. 

                앞으로 stentman으로 즐겁게 사는 방법을 하나하나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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