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하 Jun 04. 2023

키오스크

토요일은 늘상 그렇듯이 가볍게 산에 갔다왔다. 일요일에 뭘 할까 잠깐 생각하다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이후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삼년만인가 보다. 요즘 1위 영화를 알아보고 아드리에게 '범죄도시3' 예매를 부탁했다. 예전엔 한달에 한번 여의도에서 아내와 영화보고, 점심 먹고, 여의도 공원을 산책한 후 집에 걸어오곤 했다. 이런 루틴을 알고 있는 아드리가 조조 예매를 해줬다. 조조가 10시다. 영화보며 먹으라고 음료 두잔과 팝콘을 함께 톡으로 보내줬다. 일요일 9시 좀 넘어 집에서 나와 여유있게 영화관에 도착해 티켓 발매기에서 지류티켓을 출력한 것 까지는 좋았다. 음료와 팝콘은 키오스크로 해야 되는데 키오스크는 아직까지 내가 적응하지 못한 현대 문명의 이기다. 키오스크를 보는 순간 거부감이 엄습하고, 거부감에 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런 나를 아내도 알기에 아내에게 하라하고 뒤로 멀찍이 빠져 있었다. 아내도 세가지 오더를 입력하려니 시간이 걸린다.

옆으로 다가가 "보고 나와서 먹자" 하고 취소를 꾹 눌렀다.

아내가 깜짝 놀라 "이제 결재만 하면 되는데 왜 취소 해" 한다.

"아니 시간이 걸리 길래. 알았어 다시 해."

아내가 후다닥 하더니 주문표 3장을 내게 주고 찾아 오란다.

이건 또 어떻게 하는 건지. 두리번 거리다 간신히 주문표 바코드를 인식시키고 주문번호 박스에서 하나하나 꺼내는데 마지막 하나가 안 된다.

결국 직원에게 "이거 안 되요"라고 도움을 청했다. 어렵다.

아내가 "키오스크 자꾸 써봐야 사용법을 알지"라고 핀잔인지 잔소린지 한마디 한다.

나는 "그런거 몰라도 돼"라는 말로 그 상황을 끝냈다.

나는 아직 패스트푸드점에서 직원에게도, 키오스크로도 주문을 할 줄 모른다. 아니 안 한다. 지금까지 내 옆의 사람이 다 해줬다. 난 그냥 받아 먹기만 했다. 편하게 살았다.

나는 셀프 서비스도 싫어한다. 지금도 앉아서 주문하고, 앉아서 상차림 받는 식당을 좋아한다. 내 돈 내고 서비스 받을 수 있으면 받아야지, 내 돈 내고 내가 해야한다는 게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그렇다고 셀프 서비스비용 만큼 할인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셀프라서 조금 싼 곳도 있다.

셀프 서비스도 싫어하는 내가 키오스크를 사용 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대면 서비스에 익숙한 내가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게 싫다.

코로나19로 업무가 비대면 방식으로 많이 바뀌었다. 재택근무, 화상회의, 화상교육, 모바일 결재 등 비대면 방식에 나름 다 적응했다. 오히려 편안함까지 느꼈다.

그런데 키오스크는 예외다.

세상물정 모르고 세상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가 된 것 같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키오스크에 대한 거부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내 삶의 방식이 앞으로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필요해 스스로 키오스크 앞에 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꼰대가 확실한가? 자문해 본다. 싶게 자답이 안 나온다. 그 이유가 키오스크 때문이라면. 꼰대라도 괜찮다.

작가의 이전글 아프지 말고 다치지 않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