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론의 형태를 빌어 제작
역할론 1차 본을 작성했을 당시에는 소설 부분을 넣지 않았다. 역할에 대한 경험과 출퇴근하며 Chat gpt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재정리하여 얻은 책은 소설보다는 비문학에 가까웠고,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에 소설을 자주 읽지 않던 내가 접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잠', '죽음'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정당성을 일일이 근거로 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저자가 한발 한발 메시지에 접근하게끔 소설 속 스토리를 전개했고, 그것이 나를 2시간 동안 도서관에 붙잡아두고 그 책을 읽게 했다.
소설이 담고 있는 정보는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나 교양서적에 비해 매우 적고, 체계적이지 않다. 전문용어도 적어 읽는 사람도 어떠한 지식을 얻어간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소설의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고, 쉽게 스며든다. 교양서적은 책의 표지, 목차부터 이미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소설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서야 메시지가 완성된다. 전공 도서나 교양 도서를 읽는 저자는 마치 '정보의 소비자'와 같지만, 소설을 읽어가는 과정은 '메시지의 형성 과정'을 함께하는 것과 같아 관점을 달리하자면 메시지 생산 과정을 함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할에 대해 심히 고민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생산'과 '소비' 때문이었다. 에리히 프롬 저 '소유냐 존재냐'는 소유적인 삶과 존재적인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두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기 어려운 책이었으나, 그 책은 소비적인 행태에 젖어든 내 생활을 점검하게 하였다. 내 주변의 자원과 내가 했던 경험을 단순히 소비, 소유로써 남길 것인지, 그것들을 재료로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존재가 될 것인지의 관점은 노력의 방향을 정한다. 소위 말하는 모범적인 삶도 소비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고, 비범한 삶 역시 그 경험을 모아 존재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삶에 의미가 없다.'라는 이야기 역시, '삶에는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가, 혹은 전능한 자가 주는 의미가 이미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라는 소유적인 사고의 전제가 깔린 문장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은 없으며, 자신이 경험한 것과 앞으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답이기에, 원래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듣고 침울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작성할 도구론, 역할론, 환경론, 연결론 역시 전부 재료, 도구가 될 책들이다. '이것만 있으면 해결된다.'라는, 완전무결한 도구는 세상에 없으며 만약 그것이 실재한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한계가 있기에 결국 도구는 기능상의 제약을 갖게 된다.
AI 시대에 이미 접어듦에 따라 대체될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을 순위 매기는 콘텐츠가 증가했다. 'AI'라는 도구의 특징은, 사용자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에 적합한 결과물을 신속하게 내놓는 것에 가까우므로 결국 '자신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직업을 떠나 생존할 것이라 본다. 이미 존재하는 기업, 기관과 같은 체계를 바탕으로 이미 자신의 벌이를 확보한 입장이라면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경험으로써 체득하였기에 AI를 활용해 '해당 분야의 요구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놓기 쉽다. 하지만 아직 위와 같은 체계에 속하지 못한 개인은 체계 밖에 있기에 '각종 분야의 내용을 융합하여 소비자의 새로운 욕구를 만드는 결과물'을 내놓기 쉽다. 이는 기존 체계의 확장을 일으키기에, 이에 선행하는 파괴를 함께 유발할 수 있다.
도구는 결국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에 영향을 주어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내놓게 하는 것이기에, 도구에 대한 이해는 AI 뿐만 아니라 AI 이후의 새롭게 태어날 도구를 다루는 기본 체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아날로그적인 도구(형태가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은 결국 형태가 없는 도구(소프트웨어, 지식)를 다루는 데 필수불가결적으로 영향을 준다.
따라서 기존의 '역할론'에서는 성준이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겪는 일상을 바탕으로 '사람이 역할을 가지며 나타나는 특징'을 다뤘다면, 도구론에서는 '성준'이라는 개인이 도구와 상호작용하며 겪는 관점과 능력의 변화를 바탕으로 작성하고자 한다.
성준의 경험에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과, 나의 후회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든 경험들이 섞여있다. 누군가에게 정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유는 내가 겪은 유용하거나 곤란한 경험을 공유해 유용함을 함께 얻거나, 곤란함을 해석하는 자세를 갖기 위함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