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짙어졌습니다. 저는 요즘 일을 쉬고 있는데요, 마치 농번기가 끝나고 수확을 마친 농부 같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계절에는 자연스레 역할이 있었을 텐데요 현대인들에게는 쉬고 있어도 너무 여유가 없습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을 보면서 수확을 마친 농부라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동화 같은 어린 시절을 지나 동화처럼 살다 간 엘프 같은 할머니 이야기로 힐링하고자 합니다.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어린 시절 행복해지는 가능성을 백퍼센트로 가지고 태어났다 대부분을 소멸해 버린 어른이 된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 좋아하는 것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싶은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제 꿈은 노년을 웰시코기와 산책하며 사는 거예요. 귀여운 얼굴, 큰 머리, 짧은 다리, 긴 허리, 빵실빵실한 엉덩이, 사교적인 성격에 식빵도 잘 굽고 스케이트 보드까지 잘 타는 매력 만점인 동물... 짧은 다리로 태어났지만 오늘도 열심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 바로 웰시코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지나치다고요? 하지만 제 코기에 대한 동경은 타샤에 비하면 팅커벨만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폴로 신도 내 코기 '오윈' 앞에선 맥도 못 춘다고 장담하는데요 아들이 데려온 코기에 첫눈에 반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서 '뉴햄프셔의 서쪽이자 버몬트의 동쪽에 있는 코기빌'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이야기는 책으로 엮여『코기빌 마을 축제』로 큰 인기를 끌었고 버몬트 땅도 그 수익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버몬트의 코기 코티지(Corgi Cottage)에서 사랑하는 코기들과 함께 정원을 가꾸며 노을이 질 때면 구릿빛으로 빛나는 코기들을 실컷 이뻐합니다.
타샤는 평생을 30만 평 정원에서 꽃을 심고 가꿨는데요 언제나 정원이 어떤 모양이면 좋을지 선명한 그림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종묘상에서 "어떻게 도와드릴까요?"라고 묻지만 타샤는 거절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원하지 않는 것 또한 잘 안다도 합니다. 그녀는 정원에 대해서는 심각한 과시형이고 자신의 정원은 지상낙원이라 자부합니다.
• 리얼리티
타샤할머니는 요정 같다는 느낌을 풍기는데요 그녀의 모든 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합니다. 그녀의 그림은 현실 속의 소재에서 나옵니다. 그림 속 사람들은 자신의 손자들, 친구들, 주변 환경들입니다. 꽃들은 타샤의 정원과 주변 들판에 자라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정원을 구경하며 탄성을 내뱉습니다. "어머나, 삽화에 나오는 꽃이 바로 여기 있네요."
타샤의 시골풍 집(코티지)에는 골동품과 의류와 장신구가 꽉 차 있고 스토브 위에는 19세기 조리 기구가 걸려 있습니다. 그녀는 골동품 식기를 실제로 사용합니다. 상자에 넣어두고 못 쓰느니 쓰다가 깨지는 편이 낫고 1830년대 드레스도 실제로 입으면서 왜 멋진 걸 갖고 있으면서 즐기지 않는지 되묻습니다. 인생은 짧으니 오롯이 즐겨야 한다구요!
어린 시절 타샤는 책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웃의 손에서 자란 그녀는 보헤미안처럼 살았습니다. 그웬 아줌마가 밤 10시나 11시까지 책을 읽어주었고 스콧, 디킨스, 윌키 콜린스, 코난 도일의 작품 전부를 읽어주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모비딕』같은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작품을 그려낼 수 있고 객줏집의 음식 냄새까지 맡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영화처럼 보며 모든 것에는 움직임과 색이 있습니다. 타샤에게 책은 대단히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코기 코티지는 그녀의 마음속 동화를 현실로 만든 실체입니다.
• 여유
영국에는 이런 옛말이 있습니다. '과일도 없고 꽃도 없고 나뭇잎도 없고 새도 없는 11월.' 11월은 밭과 정원 일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때입니다. 타샤의 친구들은 11월이면 뜨개질과 퀼트를 하느라 야단입니다. 난롯가에서 한 잔의 차를 만끽하는 때이기도 하죠.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고 떼어둔 시간보다 즐거운 때는 없다.'
자녀가 독립을 한다면 낙담하는 어머니들이 있는데요 오스카 와일드의 말마따나 인생이란 워낙 중요한 것이니 심각하게 맘에 담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상실감이 느껴지겠지만 고독을 만끽하라고 조언합니다. 어떤 신나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인생은 짧다는 것, 홀로 지내는 것도 특권이라는 것,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샤는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산다.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하지만 조금만 예리하게 그녀의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애프터 눈 티를 마시려고 시간을 떼어두거나 저녁에 현관 앞에 앉는다는 것. 타샤의 실상은 매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30만 평 버몬트 정원에 처음 와서 한 일은 천 개도 넘는 수선화 구근을 심은 것이고 손수 천을 짜서 옷을 만듭니다. 장작을 지피는 스토브에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감자와 푸성귀도 기르고 염소젖을 짜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치즈도 만듭니다.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도 열고 꽃과 동물로 삽화도 그립니다. 그녀가 말한 여유는 절대적인 시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함 속에서 찰나의 여유임이 틀림없습니다.
• 극복
겨울이 오면 눈은 모든 것을 단순하게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제한되는 계절은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기 제격입니다. 어린 시절 타샤는 좋은 이웃이 참 많았습니다. 아홉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집안 친구인 그웬 아줌마와 마이클 아저씨와 함께 살았습니다. 워낙 대가족이어서 사람들이 모여서 촛불을 켜놓고 연극을 하고 파이 먹기 대회, 무도회, 게임도 하였습니다.
원래 보스턴계였던 그녀의 집안은 화가, 전 영부인, 판사들과 친했는데 데이비스 판사님은 주머니에 늘 박하사탕을 넣어두고 타샤와 재미있게 놀아주었습니다. 다들 아주 가까운 사이었고 여러 대에 걸쳐 친구로 지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숲 속에 구유 속 아기예수상을 만들었습니다. 구유와 성탄극에 나오는 인물들, 동물들을 아주 애를 써서 만들고 밤이 되면 구유까지 눈 덮인 오솔길에 1미터마다 촛불을 밝힙니다. 소나무, 자작나무, 솔송나무 사이로 촛불이 구불구불하게 놓이고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광경은 마법과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그 광경은 트리나 선물보다 큰 의미를 안겨줍니다.
타샤는 바랄 나위 없이 삶이 만족스럽다고 합니다.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철학이 있다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 말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 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타샤는 정말 맞는 말이라 합니다. 그것이 타샤의 삶 전체였기 때문입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뭐니? 인생은 부지런히 상상한 대로 살기에도 짧다는 교훈을 준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