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일기_20250805_입사 299일차
외근을 나갔다.
귀한 외근이다.
일반적으로 개관연장 사서의 업무는 매우 제한적이다. 때문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외부 연계 프로그램 견학까지 시켜주는 곳은 드물다. 물론 내가 다니는 도서관도 정규직과 계약직 사이의 업무 경계가 뚜렷하지만 이곳은 계약직 사서들도 사서들이 하는 다양한 업무와 자관의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행사에 참가시켜주었다.
오늘은 도서관과 연계한 지역 돌봄센터에서 진행하는 독서 프로그램 참관이었다. 담당 선생님과 지역 돌봄센터에 도착, 마침 간식 시간이었는지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먹고 있었다.
프로그램 담당 선생님이 도착하자 돌봄센터 선생님들이 포스터를 걸고 컴퓨터 세팅 하는 등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하나둘 다가와 제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의 프로그램 설명, 역시 프로는 달랐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키워드를 제시하고 그것에 맞춰 자연스럽게 오늘의 책을 소개하는 저 스킬을 보라! 어수선하던 아이들도 금세 집중하고 선생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동화 구연 같으나 그냥 읽어주는 것은 아닌,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물 흐르듯이 완급을 조절하는 선생님의 진행을 따라 아이들은 물론 나도 책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동화가 끝난 뒤에는 부채 만들기가 이어졌다. 오늘 본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느낀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사뭇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대견하다는 생각 반, 에너지 뿜뿜 아이들의 기에 눌렸는지 기 빨리는 느낌 반이었다.
한 시간 동안 동화도 들려주고 만들기도 하고, 정말 알찬 시간이었다.
도서관은 책이 있고, 뭐 컴퓨터도 있고, 뭐 자습실이 있어서 공부하는 곳이잖아! 하는 선입견과는 달리 하는 일이 많다. 고로 잘 살펴보면 즐길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도서관에 오면 일단 책과 앉아서 쉴 자리가 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회원 가입을 하고 정회원이 되면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다. 노트북이나 패드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노트북 좌석도 있으니 개인 노트북을 가져와서 할 수도 있다.
여름에는 '도서관은 쿨하다', 겨울에는 '도서관은 핫하다'는 구호를 내걸고 주민들의 도서관 방문을 독려한다. 도서관 내에 원화 전시회도 열리고 사서들이 고심해 선정한 큐레이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로 커플이 도서관을 방문해 러브버그처럼 딱 붙어 다니는 경우도 있고 도서관을 방문하다 친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도서관 홈페이지나 도서관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게시판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분기별로 진행되는 정기 프로그램과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있는 특별 프로그램과 강좌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저녁 시간에 영화를 상영하고 매주 일요일엔 어린이 영화도 상영한다.
프로그램은 대부분 무료이나 강좌 특성에 따라서 약간의 비용을 받기도 하지만 재료비 수준으로 저렴하다. 지역마다 일 년에 한 두번 지역 도서관들이 연계해 행사나 축제를 진행하기도 하고 도서관 개관 기념 행사라든지 제법 규모가 큰 이벤트도 열린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 동네 도서관 홈페이지를 살펴보길 권한다. 직접 방문해보면 더 좋고.
오늘 외근을 나가서 본 돌봄센터 연계 프로그램도 있고, 도서관 근처에 장애인센터나 복지관, 학교, 어린이집과 연계하여 독서 프로그램이나 전시회도 하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을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도서관에서 위로를 얻었다. 답답한 집을 벗어나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했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 도서관은 책을 읽거나 프로그램 참여 보다는 공부하는 곳의 의미가 더 컸고, 지금처럼 자유롭게 책을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책의 청구기호를 찾아서 사서에게 건네면 사서가 찾아주는 폐가식으로 운영되었지만, 읽고 싶은 책의 청구기호가 담긴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볼 때의 그 설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도서관은 대부분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위치해 산책하기도 좋다. 퇴근 후 잠깐, 동네 산책을 하다 잠깐 숨을 돌리러 도서관을 들르면 시원한 공간과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많은 책과 물이 준비되어 있다.
엘리 모건은 <사서일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회가 기능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수십 년간 긴축재정을 펼친 결과 전국 곳곳의 도서관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이야기는 항상 똑같다. 도서관을 이용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취약계층과 빈곤층, 목소리가 없는 이들이다. 이 사람들이 도서관 폐쇄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나머지 지역사회가 그 소식을 접하고 항의에 나서기도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너무 늦은 것이다. 피해는 이미 심각하다.
그리고 모르는 새 은밀히 삭감되는 것들이 있다. 직원 수가 줄어들고, 개방시간이 축소된다. 자격증이 있고 지식이 있는 도서관 직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대체되니(자원봉사자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만 도서관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자, 보시라, 서비스가 악화되고 이용률이 떨어지고 더 큰 삭감이 시작된다."
물론 우리 나라는 도서관이 증설되고 있는 추세긴 하다. 그러나 예산은 줄어들고 있고, 주민의 편의 증진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미명하에 시행된 개관 연장 사업은 비정규직만 늘리고 사서의 일을 '경험 시켜준다'는 미명으로 비정규직 사서에게 떠넘기기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떤 구청장은 "앞으로는 메타버스 도서관이 대세가 될 것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떠들면서 기존의 작은도서관을 전부 학습열람실(자습실)로 변경한다고 했다가 큰 반대에 부딪쳐 결국 철회하기도 했다.
내용물이 어찌됐는 도서관을 늘리고 보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 도서관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말이다. 날이 너무 더우면 동네 도서관을 검색해 한 번 방문해 보길 바란다.
도서관은 '쿨' 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