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일기_20250810_입사 304일차
도서관은 평온하고 조용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치열하고 소란스럽다.
한 권의 책이 도서관에 들어와 서가에 꽂히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과정에 사서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또 게시판을 장식해 뒷목을 잡은 사건에 대해 써야겠다.
이번엔 '시끄러워요'에 해당하는 민원이 올라왔다.
"자기는 모두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이라 걸음도 조심조심해서 걷는데, 도서관 직원은 슬리퍼를 찍찍 끌고 문을 쾅쾅 닫고 다녀서 자꾸 쳐다보게 되니 주의를 주라"는 것이었다.
음... 그럴 수 있다. 거슬릴 수 있다. 10시까지 문을 여는 도서관은 저녁이 되면 고요해지긴 한다. 그래서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고 예민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거슬릴 수 있다.
그러나...
변명이라면 변명을 하자면, 일단 도서관은 진공 상태의 무소음 공간이 아니다. 게다가 자료실은 공부를 하라고 마련해놓은 학습열람실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니 실내외에서 이런저런 소음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 학습열람실을 포함해 받은 소음 관련 민원을 살펴보면,
- 볼펜을 딱딱 거려서 거슬려요.
(거슬릴 수 있다)
- 옆 사람이 다리를 떨어요.
(거슬릴 수 있다. 테이블 전체가 흔들릴테니)
- 숨소리가 거슬려요.
(죽으라는 소린가?)
- 화장실 핸드 드라이기 소리가 너무 커요.
(화장실에서 자료실까지 거리가 얼만데 그게 거슬린다고요? 버뜨 결국 교체함, 소리는 비슷했지만 바꿨다는 데 의의가 있다.)
- 슬리퍼 소리가 거슬려요.
(그래, 거슬릴 수 있지)
- 문을 쾅쾅 닫고 다녀요.
(이것도 그래, 인정. 거슬릴 수 있지.)
- 자료실에서 직원들의 이용자 응대 목소리가 커요.
(와우!! 일하지 말까요?)
- 옆에 운동장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커요.
(님아, 여긴 원래 운동장이 먼저 있었고 도서관이 나중에 지어졌어요! 운동장 옆이니 경기가 있으면 당연히 소음이 나지요. 그래서 미리 공지도 하잖아요.)
- (해당 구 상공에서 비행훈련 고지가 있었음) 비행기 소리가 시끄러워요.
(음... 그건 나라에서 하는 건데요? 20분만 참으면 됩니다.)
- 책 딱딱거리며 정리하지 마세요.
(네? 도서관 서가는 철제라 소리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데요.)
분명 더 기상천외한 민원이 있겠지만 연차가 낮은 내가 기억하는 소음 관련 민원은 이 정도다.
내가 이 민원에 혈압이 오를 정도로 스트레스가 폭발한 이유는 그 동안 차곡차곡 쌓여온 민원으로 인한 내부의 화가 증폭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민원이 들어오면 경미한 사안일 경우 일단 전 직원이 공유하고 민원을 유발한 것으로 추측되는 해당 직원에게 고지하며 개선을 요구한다. 시설은 바로 교체나 개선하고 제도는 작은 것은 바로 시정하거나 큰 사안은 관련 법률법규를 따지고 구청과 의논해서 처리한다. 물론 민원인에게 처리 결과를 답변한다.
민원은 꼭 특정인을 저격한 글이 아니더라도 보기만 해도 심리적 압박이 상당하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래서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나는 맨발에 샌들을 신고 출근하면 도서관에서는 양말을 신고 슬리퍼로 갈아신는다. 양말을 안 신으면 안 신었다고 민원이 들어올 거 같고 슬리퍼를 신었다가 끌리는 소리나면 민원이 들어오지 않게 조심해야겠군,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쾅 닫히는 문을 잡아 살살 닫으면서도 이것도 민원 들어오겠네,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이번엔 추워요 vs 더워요다.
환절기의 경우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실내보다 실외가 더 시원할 때가 있다. 조금 덥긴 하지만 에어컨을 가동하긴 애매한 시기가 되면 "왜 실내가 이렇게 덥냐? 밖이 더 시원하다! 왜 에어컨을 안 켜냐?" 하고 따지는 사람이 꼭 등장한다.
환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지금 미세먼지가 얼마인데 창문을 열어놓냐?" 해서 창문을 닫으면 "아무리 공청기가 있어도 답답한데 왜 문 열어 환기를 안 시키느냐?"고 하고,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해 "에어컨을 틀면서 왜 창문을 여냐?"고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난감할 따름이지만 도서관은 이용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경청하는지 정말 제깍제깍 다! 들어준다. 그래서일까? 도서관 애용자들이(라고 쓰고 지박령이라고 읽는다) 민원인이 되고 직원 기준 '진상'이 되기 쉽다. 그들은 매일 도서관에 오니 여기가 자기의 '개인' 공간이라고 착각이라도 하는 것 같다. 공공의 공간을 개인 공간이라고 생각해 자기 한 사람의 불편을 모든 사람의 불편이라고 확대 해석한다. 솔직히 "그렇게 까다롭게 굴거면 집에 가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온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본인 기준 본인은 공공질서를 굉장히 잘 지키는 모범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민원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도서관은 늘 '친절'하게 이용자를 '왕'처럼 떠받든다. 혹시 "우리 동네 도서관은 안 그런데요?"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그게 정상이다.
도서관은 다 되는 곳이 아니고 도서관 직원은 '왕'을 떠받드는 '하인'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공무원도 아니다. 공무원 취급을 받는 박봉의 정규직 직원이거나 그보다도 못한 최저임금 계약직 노동자일 뿐이다. 물론 처우가 나쁘니 그것만큼만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하지만 공무원이든 일반 직원이든 누가 누군가를 떠받들도록 설계된 시스템은 정상이 아니고, 대접을 받아야겠다며 직원을 하대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