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달며 책 읽기 1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생각이나 말에 깊이 공감하거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하며 토를 달고 싶을 때가 있다. 책에 직접 메모를 하기보다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하고 토를 다는 방법을 선호하는데 이걸 또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기에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오늘 토 달며 읽은 책은 황석희 번역가의 에세이 <오역하는 말들>이다. 영화 번역가로 널리 알려진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 부러운 부분, 대단하다 싶은 부분이 많았다.
일단 첫 장의 제목, 화낼 준비가 된 사람들부터 공감 천만 배!!
"한국 사람들은 항상 화낼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아요." - 15쪽
그냥 생활하면서도 느낀 바지만, 도서관에 오니 사람들은 그 화를 여기서 풀고 있었다. 만만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자기보다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 푸는 것이다.
나의 인생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배두나 님이 열연한 한여진 경위가 한 "되니까 하는 거예요!"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번역할 때 의외로 장애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출중한 영어 실력이다. 영어를 너무 잘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색한 번역투 문장도 부자연스럽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영어로도 한국어로도 그저 자연스러운 문장이다. - 23쪽
그러니까 말이다. 한때 유행한 유명 작가의 소설을 나는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한국어로 써 있되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는 문장들, 그런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사람들은 이 말을 다 이해한단 말이야? 내가 영어 혹은 불어를 못해서 그들의 의식의 흐름을,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 책은 결국 포기했고, 그 작가의 책은 그 후로도 읽지 않는다.
"돈 받고 일하는 프로인데 오역을 내는 게 말이 되냐?"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그런데 오역은 날파리 같다. 과장을 조금 보태 집을 완전 밀폐해서 진공 상태를 만들어도 여름엔 날파리가 생길 거다. 날파리는 거의 공기 중에서 자연 발생하는 것만 같다. 오역도 그렇다. 오역은 번역문에서 거의 자연 발생한다. - 29-30쪽
번역가가 오역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경우. 바로 원작자와 모든 문장을 같이 논의하는 케이스다. 평생 그런 복을 누릴 수 있는 번역가는 몇 안 된다. 나는 평생 운을 다 쓴 것인지 그런 복을 여러 번 누렸다. - 31쪽
진짜 복 받으셨네요.
나는 그런 기회는커녕 작품 뒤에 붙는 '옮긴이의 말'을 쓴 적도 거의 없다.
분명 계획대로 뚜벅뚜벅 가고 있으면서도 가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며 의도적으로 내 여정을 오역했다. 지쳐서, 다 놓고 쉬고 싶어서. 다시 내 원문을, 내 여정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정역해 봐야 그 정역이 너무나 보잘것없을 게 뻔하니까. 또 그 정역에 실망할 게 뻔하니까. - 47쪽
번역 일을 하면서 내내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집 나간 내 자존감과 자신감은 언제쯤이나 돌아올까, 혹시 나가서 영영 길을 잃은 건 아닐까?
"기록이 보여 주리라. 내가 버텨 왔음을(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프랭크 시나트라도 <My Way>에서 불렀듯이 내게 보여 줄 기록이 필요하다. - 48쪽
남들은 부러워할 만한 내 기록이 나는 왜 만족스럽지 않을까?
79쪽부터 시작되는 <깊이에의 강요> 꼭지는 전체가 매우 공감됐다. 파트리트 쥐스킨트가 쓴 단편 <깊이에의 강요(Der Zwang our Tiefe)>를 읽고 도대체 깊이란 게 뭘까, 한참 고민했다. 이것과 결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해낸 일들이 깊이, 재미, 가치가 없다는 묘한 열패감에 빠져 있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소설 속 주인공이 이해가 됐다.
이 꼭지를 읽고 '깊이에의 강요'가 아니라 '깊이를 향한 강박'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수동과 능동으로 느껴졌다. 전자는 깊이가 있어야 돼! 깊이가 없는 건 가치가 없어!라고 누군가(또는 스스로가) 나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 같지만, 후자는 '내가' '스스로' 깊이를 찾아가는 것 같다.
번역문을 즐기려면, 번역의 묘미를 느끼려면 번역문 자체를 원문처럼 떠받들어선 안 된다. 번역가는 하나의 곡을 오만 가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다. 그러니 아주 정확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궁금해질 땐 원문을 확인하는 것이 옳다. - 107쪽
팬이 많은 작품일수록 독자의 간섭이 많다. 당연하다. 그러나 때론 이걸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편집자는 독자의 문의에 답변해야 하고, 번역자인 나는 그것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고 한다. 직독직해 수준으로 원문 그대로, 사전에 1번으로 나온 뜻 그대로 번역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뭐든 어설프게 아는 자가 말도 많은 법이다.
그러다 미친 생각이 '아...... 번역가만 현장을 배울 방법이 없구나.' 누굴 보좌하면서 현장에서 배운 게 아니니 연습실에서, 미팅에서 어떤 롤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누구와 뭘 상의해야 하는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다 보니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 131쪽
그리고 솔직히 번역가는 혼자가 편한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기질이 내향적이라 집돌이-집순이가 대부분이다. - 133쪽
옳소!! 그래서 연대의식 뭐 이런 게 생기기 어렵다. 그리고 파이가 크지 않고(점점 줄다가 이젠 거의 없다.), 파이가 커질 전망도 없고, 키울 여력도 없으니 누가 누굴 키우고 말고 할 것은 물론 소개도 어렵다.
그렇게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주위에선 백수로 여긴다. 뜬구름 잡는 짓을 하는 백수. 그들 눈에 집구석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직장인이, 건강한 사회인이 아니다. 정상적인 직장인이라면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회사에 나가야 한다. 나는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일에 밤새 몸을 혹사했지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럴 땐 이게 맞는 건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자괴감을 견디다 못해 존처럼 딱 한 번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던 적도 있다. 결국 예상대로 그냥 나오고 말았지만. - 139쪽
저자가 블로그에 올렸었다는 다짐의 글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선택한 사람의 결과와 성과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번역이라는 일은, 남편 있는 여자가 명함으로 내놓기는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번역은 일정한 시간을 꼬박 들여야 하는 일이고 그렇다고 번역료가 매년 획기적으로 인상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러닝 개런티를 받는 번역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너 달 일해야 겨우 받는 액수를 통역사는 일주일 만에 버는 것을 보고(물론 노동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번역가는 대부분 강의 같은 다른 고정적인 일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오르페우스 첫 대사가 "결혼해요."인데요.
원문은 "Come home with me."잖아요.
같이 봤던 친구가 '집에 가요.'로 번역
안 했다고 번역이 엉망이라고 두고두고
욕해요.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요.
이런 질문은 원문의 의미만이 아니라 번역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번역이라는 행위가 어떤 요소를 포함하는지까지 다 설명해야 해서 쉽게 답하기 어렵다. - 151-152쪽
그렇다!
"Come home with me."를 아무 생각 없이 "집에 가요."로 번역해도 된다면 얼마나, 정말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노력한 번역이든 뭐든 간에 그거야 내 사정이고 저게 마음에 안 들 수 있지. 너무 당연히도. 저 번역문이 끔찍이 싫을 수도 있고 혐오스러울 수도 있고, 뭐든 괜찮다. 감상하는 사람 마음이지. 어떻게 다 좋아. 그런데 저 번역문이 싫은dislike 걸 넘어 엉터리다, 틀렸다wrong 주장하려면 상술한 다섯 가지 요소를 전복할 근거와 논리와 권위가 필요하다. 내가 싫으니까 틀렸다는 거 말고. 그런 태도를 번역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서 본다. 어떤 논리가 있든 어떤 사정이 있든 내 마음에 안 들면 틀렸다고 주장하는 태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면 대개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목소리 큰 사람과 싸우는 건 피곤한 일이거든. - 157쪽
매우 공감한다. 번역 쪽에서든 도서관에서든... 자기가 불편하면 다 잘 못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소리치고 비아냥거리고... 에효, 나도 참, 이제 포기할 때도 됐건만...
번역가가 아닌 생활인의 기록도 흥미로웠다.
섬세하고 직관적인 기록들에 많이 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