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일기_20251029_입사 384일차
평일 어린이실은 대체로 한가하다.
딱 내가 상상했고, 원하는 그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웃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견학을 오고, 오후에는 각종 프로그램으로 떠들썩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여유로운 편이다.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가 흘러가다 오후 4시 40분에서 5시가 넘어가면 어린이실이 소란스러워진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하교 시간이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이실에 곧 폭풍이 몰아칠 거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재잘재잘 햇살이 부서질 것 같은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와 조곤조곤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의 목소리, 간혹 실이 떠나갈 듯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신나게 책을 고르고 읽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엔 동화책 전집이란 게 있었다. 지금도 전집은 비싸지만 그땐 올 컬러에 하드커버 동화 전집은 정말 큰 맘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이셨는지 없는 살림에 엄마가 동화책 전집을 사주셨다. 물론 할부였을 거다. 다달이 책 외판 사원이 집으로 찾아와 할부금을 받아가던 시대였으니.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외판 사원이 다달이 집을 방문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집을 봤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한 권 한 권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옆에 있던 동생은 내가 다 읽은 책을 쌓아 동화책 집을 만들었다.
"누나 이거 봐, 진짜 멋지지?" 하고 자랑스럽게 눈을 반짝이던 동생의 귀여운 얼굴(아... 지금은... 역변도 그런 역변이 없게 변했다...) 뒤로 눈을 세모로 뜨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녀석아! 읽으라고 사준 책으로 장난을 해!"
팡팡팡!
동생은 엄마에게 사정없이 등짝 스매싱을 당했고, 결국 동생의 울음으로 마감됐다.
그 뒤로 동화책 전집이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너덜해질 때까지 읽다가 고물 엔딩이 됐는지, 필요한 다른 누군가에게 주었는지 모르겠다.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면 동생은 "내가 그 뒤로 책을 끊었잖아!" 한다.
그러게, 동생이 만든 동화책 집은 제법 근사했는데. 엄마는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애를 때렸나 싶기도 하다. 요즘 같으면 "오오~ 창의력 죽이는데?" 하고 더 칭찬을 해주었을 텐데. 물론 도서관 책으로 그러면 나도 엄마처럼 눈을 세모로 뜨고 달려갈지도 모른다.
길어야 한 시간 반인데 그 사이 아이들은 어린이실을 정말 초토화시켜 놓는다.
"이제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에요~"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미련이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버티기를 시전 한다. 보호자가 어르고 달래고, 그도 안 되면 정리하던 직원들까지 나서도 "으앙! 안 갈래!" 하고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다. 보호자는 당황하고 아이는 서러운데 나는 왜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럴 때는 세상 친절한 표정과 목소리로(조카들이 보면 "웩, 누구세요?" 할 거다.) "내일 또 놀러 와요~" 하며 달랜다.
마지막 이용자까지 다 퇴장한 뒤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은 어린이실을 보면 솔직히 한숨이 나기도 하지만, 도서관을 좋아하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이용자들이 책과 즐겁게 놀았으면 됐지 하는 마음이 든다. 더불어 도서관을 떠나기 싫다고 울던 꼬꼬마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중고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더 커서도 계속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