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달며 책 읽기 2
마지막 순간 독자를 찾은 저자와
앞 못 보는 아이의 책섬 만들기
여기 책 만들기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저자. 지금까지 앞만 보며 묵묵히 걸어온 저자는 마지막 책을 지을 때가 다가오자 생각에 잠긴다. 자신의 책 짓는 기술을 전수해 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는 평생 안 하던 짓을 시도한다. 책을 미끼로 독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런 저자 앞에 조그만 아이가 하나 나타난다. '책 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장님은 아니지만 거의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다. 간단한 테스트를 거친 아이는 시험에 합격하고, 두 사람의 '책섬 만들기'가 시작된다.
- 출판사 제공 책 소개 中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설렘과 충격을 잊지 못한다.
평소 책과 저자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이토록 간결한 그림과 텍스트로 표현을 해내다니, 정말 대단했다.
읽는 내내 "그래, 바로 이거지!" 하면서 저자의 사고의 깊이와 표현력에 감탄했다.
책 소재가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브런치에서 다시 유튜브로 옮겨지면서 "와, 이런 것도 책으로 나오네" 하는 책이 많고, 다양성과는 별개로 '쉽게 쓰인' 글과 '쉽게 만들어진 책'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아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소위 '이런 건 나도 하겠다' 병.)
솔직히 여기에 30편이 넘는 글을 올리고 있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 참 신기하고 기특한 일이다. 블로그에도 글을 올려봤으나 늘 10편을 넘기지 못하고 비공개로 돌리거나 삭제를 했으니까. 이런 걸 사람들에게 보여도 될까 싶기도 하고, 이러면 내가 너무 드러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생각이 많다 보니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는 이런 일을 하고 책은 이렇게 만드는 거란다'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됐달까?
불평 없이 살아왔어
지금 짓는 책, 다음 지을 책만 보며.
그런데 마지막 책을 지을 때가 오자
문득, 내게도 독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야 처음부터 홀로 터득해야 했지만.
책 짓는 기술을 전수, 아니
기록 아니 기억이라도 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외딴곳에 소리 소문 없이 사는 주제에
누가 찾아주길 바랄 수도 없는 노릇.
직접 나서야 했지.
- 11쪽
그래서 저자는 독자를 직접 찾아 나섰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아이를 만났다. 그제야 비로소 그들의 책 만드는 여정이 시작된다.
책?
지금 하고 있잖아?
파다 보면 알게 돼.
파는 게 반이야, 책은.
- 37쪽
그래 파는 게 반이지, 책은...
"시가 뭔데요?"
옛날에 한 시인이 말했지.
'시는 동물이다.'
아냐.
시는 단어로 된 함정이야.
문장으로 꼬은 올무.
- 45쪽
저자의 글이 시처럼 느껴지는 이유였다.
"영향은 나쁜 건가요?"
아니, 다만 때가 있는 법이지.
눈과 귀를 닫을 때 못 닫으면
네 목소리는 영영 못 찾아.
- 73쪽
다른 책섬이 궁금한 아이의 요청에 저자는 "참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면서 아끼는 책섬으로 떠나 문장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작가의 심정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작가와 독자의 팽팽한 밀고 당기기가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암초에 걸렸어. 책을 파다 보면
반드시 문제란 걸 맞닥뜨리게 돼.
...... 중략 ......
문제 위에 쌓인 먼지를 걷어내면 문제는 살아 움직여.
넌 그것과 씨름해야 해.
...... 중략 ......
이 결투는 처음부터 불리한 게임.
쓰지 말 이유는 수만 가진데,
써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
- 95-99쪽
한 땀 한 땀 새긴 책이 드디어 완성이 되어 저 넓은 바다로 항해를 시작하고, 한 달, 두 달, 세 달 어디론가 끝도 없이 표류하다가 마침내 뭍에 도착한 아이.
잘 타고 갔으면,
두고 가렴.
책은
만든 사람 게 아니니까.
- 133-135쪽
너무나 사랑스럽고 훌륭한 책이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고 곧장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버리고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생각이 나서 다시 구입을 했다. 다시 읽으니 더 좋은, 저자가 아이와 함께 건너간 책섬이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저자가 페소아를 공부하고 관련 책(페소아, 아르떼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1608261)까지 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곁에 놓고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91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