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Good-bye

사서일기_20251231_입사 447일차

by 천유

계약 종료.

마지막 날이다.


누군가는, 길게는 2년, 짧게는 8개월에서 11개월, 12개월씩 쪼개지는 고용 기간이 불안정하게 느껴지겠지만, 스트레스 역치가 낮은 나는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폭발하기 직전에 쉴 수 있게 해 주니까.

물론 쉬고 나서 재취업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당장은 쉼표를 찍을 수 있으니까.


이곳에서의 15개월을 되돌아본다.

지난 두 곳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이용자는 절대 적지 않은, 지역민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사랑받는' 도서관이었다.

규모가 작으니 사무실과의 거리도 지나치게 가까운 면이 있었고, 이것은 또한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장점과 단점을 고루 갖고 있었다.


데스크에 와서 대놓고 소리를 벅벅 지르는 이용자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뭐 마지막주에 갑자기 "내가 병신도 아니고!"를 외치며 급발진했던 이용자는, 도서관에 확실하게 정을 떼게 만들어 주었다. (본인이 도서관을 착각해 놓고 다른 도서관 같다고 말하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놔...)

희망도서고 뭐고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냐며, 이거 공공기관에서 출간한 책이니 기증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퇴근 시간 직전에 직접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 '기증 신청을 해주던' 이용자는, 아 당분간은 도서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많은 이용자를 대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괜찮은 어른은 못 돼도 적어도 이런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모습들이 있었다.

"나는 재산세를 얼마 내서 내 자식은 쿠팡같이 힘든 곳에서 알바를 하는데, 도서관처럼 편한 곳에서 일하면서 (감히) 이용자의 노트북석을 차지하고 앉은 저 근로 학생은 뭐냐!"

"내가 시간당 얼마를 버는데 니들이 뭔데 나더러 차를 빼라 마라 하느냐!" (얍삽하게 정규 주차장이 아닌 도서관 공무용 차량 주차 진입로를 가로막고 주차한 이용자였다. 와 진짜, 그 도서관에서 오래된 진상 of 진상이었다.)

"몰라, 몰라, 몰라. 난 이런 거 몰라. 니가 다 해줘야지. 니들은 이런 거 하라고 앉아 있는 거잖아!"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어쩌고저쩌고)"

"거 참 이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다른 데는 다 해주는데 여긴만 왜 이래..."

(태도는 자뭇 신사적이나 내용은 비꼼과 우월의식으로 점철된... 자기의 논리와 원칙이 다 옳은 줄, 최고라고 생각하는 극강의 이기주의자들. 그래서 분노가 크레센도로 두고두고 증폭되게 하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무수한 경험들이 상처가 되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점점 희미해지겠지만 없어지진 않겠지.


좋았던 기억은 없냐고?

글쎄, 이용자에 관한 한 전혀 없다.


그러나...

도서관 별로 한두 명씩, 아직도 연락하는 좋은 사람들이 남은 것.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던 내가 그나마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한 것.

요즘 직장생활을 해본 것.

더불어 따박따박 월급도 생긴 것.

나빴던 것보다는 그래도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고 해야겠지.


비정규직 개관연장사서로 일하면서 나름 이 직업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면,

개관연장사서는 도서관의 '집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선에서 헌신하는 사람들.

내가 해본 업무는 도서관 업무 가운데 일부 중의 일부에 불과했겠지만,

적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마지막이 섭섭하기보다는 시원하고 홀가분하다.


당분간 도서관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겠지만.


이만하면 "Good Job!"


2025년 나름 열심히 산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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