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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희 Aug 18. 2024

그녀의 밥

속상한 날에는 구수한 누룽지와 파장 


“김 과장 개새끼”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순간 누가 들었을까 흠칫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욕이지만 가슴이 답답할 때는 

나지막이 욕이라도 해야 살 것 같다.  


그럼 나의 쌍욕의 대상이 된 김 과장이 누군지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김 과장은 말 그대로 김 과장이다. 

직원이 몇 안 되는 작은 사무실이기 때문에

너는 과장 재는 부장 그런 회사다. 

어쨌든 김 과장은 나의 직속 상사인데 

일하기는 싫어하고 시키는 건 매우 잘하는 스타일이다.

성격도 급해서 말하면 몇 시간 뒤에는 일이 되어 있어야 한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처음에는 다 그런 줄 알았다. 

힘에 부쳤지만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을 해치워 나갔다 

내 몸을 갈아 넣으며 일해서인지 인정받기 시작할 때쯤

김 과장은 슬슬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툭하면 나한테 일을 몰아주는데 못하겠다는 소리도 

안 나오고 정말 미칠 지경이다. 

 

나이도 나보다 많고 생김새도 꽤 날카로워서 

김 과장 앞에만 가면 못하겠다는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점심마다. 제육볶음, 아니면 국밥, 아니면 돈가스다. 


점심마다 지 먹고 싶은 것만 처먹는 개새끼      

최대한 회사에서 마주치지 않고 일하고 싶지만 

그 자식은 만날 때마다 나한테 일을 던져 준다.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나한테 화가 나냐고?

전혀~! 나는 열심히 내일을 했을 뿐이다. 열심히 하니까 

남들보다 잘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부담이 되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더 무너져 가고 있었다 

매달 들어가야 하는 돈과 나의 생활비를 벌어주는

회사이지만 오늘처럼 김 과장 그 새끼가 아무 생각 없이 

"지영 씨가 해봐 잘하잖아 일은 잘하는 사람이 해야 돼 "

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적당히 하고 싶은 나의 마음에 그 자식이 자꾸 돌을 던진다.      

속이 쓰리다 회사에서 때운 저녁 때문에 배는 고프지

 않지만 속이 쓰리다 하루 종일 들이킨 커피 때문이다. 

무엇을 먹어도 이런 쓰린 기분과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먹방을 보며 허기진 배를 채우는 작은 사치가

시들해진 이유가 속이 쓰려서 일지도 모른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나는 지숙의 집 앞에 서 있었다 

"9시네... 9시에 집에 찾아가는 것은 실례겠지? "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의 현관문이 열렸다 

"어머 지영 씨? 어쩐 일이야? "

"아! 저기 그게... "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던 지숙은 어서 들어오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 나 찾아온 거면 얼른 들어와 "

지숙은 버리려던 쓰레기를 다시 가지고 들어오며 말했다      

"얼굴을 보니 금방 알겠네

답답한 일 있었구나? "    

고마웠다 말한마디 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니

그녀의 말에 내 쓰린 속도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네 뭐 조금... 그냥 언니 생각이 나서요 잠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

"그랬구나 ~~ 일단 앉아봐 속도 쓰리지? 딱 보니 가슴 답답하고

 쏙 쓰린 얼굴이다. 

딱히 먹을 것 없지만 ~ 누룽지 좀 있는데 먹을래?"

"누룽지요?"

"응~ 저녁에 밥하고 눌려 놓은 거 있거든"   

  

구수한 향을 온 집안 가득 풍기는 누룽지가 내 눈앞에 있었다 

누룽지를 한술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쓰린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향긋한 구운 김과 쪽파를 썰어 넣은 양념장도 누룽지에 잘 어울렸다      

어쩐지 기운이 나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식사였다 

쓰리던 나의 배속이 뜨끈하고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맞장구를 쳐주며 김 과장을 도마 위에서 잘근잘근 다지고 있었다      

식사를 정리 후 그녀는 돌아가는 나에게 따듯하게 한마디를 했다 

"그런데 지영 씨 김 과장이라는 사람한테 힘들다는 이야기 해본 적 있어?"

나는 순간 당황했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없었다 감히 그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나의 사수이기도 했고 입사 처음에 나를 믿고 지지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부담이 되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속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없는 것 같아요"

"그럴 것 같았어  지영 씨 말하지 않으면 몰라 말하지 않고 쌓아 뒀다가 폭발하면 

서로 불편해 지기만 해 밀어붙이는 쪽은 의외로 상대가 힘든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

왜 힘든지 일의 양이 어떻게 많고 나의 상황이 어떤지 이야기해 줘 혼자서 알아서 척척하지 말고~"      

나는 사실 두려웠다 

그렇게 말했을 때 벌어질 상황들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견딜 수 없는 감정상태까지 와버렸다 

"네 그래 봐야겠어요 "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나를 응원해 주는 미소였다   

   

집에 돌아와 김 과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마운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에게 분명히 부담을 주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종이와 펜을 들었다 

내가 왜 힘이 드는지에 대해서 차분히 적어 보았다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동료 중에 일을 나눌만한 사람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말할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 김 과장이 나에게 또 일을 떠 맡기려고 할 때 

나는 이 종이에 쓴 내용을 읊어 주리라 다짐했다       

내가 원한 건 어쩌면 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싶은 것이었다 

인간은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생에 갑자기 훅 들어오는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이

화가 난다. 억울한 기분이 든다. 나름대로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을 막아보려 열심히 했던 나의 노력들이 서러워진다 


그날 밤 이런 이야기를 지숙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에게 냉장고 속 나또를 챙겨주며 말했다 

나또를 먹는 것처럼 훌훌 먹어 버려 그런 순간들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어 먹으며 통제하려 들지 말고 후루룩 후룩 마셔버려 그럼 쑥쑥 들어가고 피가 되고 살이 될 테니     

퇴근 후 늦은 저녁 그녀의 말이 생각이 나서 나또를 집어 들었다 

오늘도 나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통제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후루룩 받아들여야겠다. 

그리고 통제하기 힘든 일이 분명히 생길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젓가락을 섬세하게 놀리며 그릇에 입을 대고 후루룩  후루룩 나또를 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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