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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희 Aug 18. 2024

그녀의 밥

좋은 쌀, 갓 짠 참기름 그리고 김




일요일 오후 내일의 출근의 괴로움을 잊어보고 싶어 나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내 옆에는 옆집의 그녀 지숙이 있었다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다시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김밥을 말아서는... 또 양이 많아서라는 핑계를 가지고,  

그녀의 눈빛은 내가 혹시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마웠다

그래서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김밥을 같이 먹었고, 같이 영화를 봤다.




그녀가 만들어온 김밥은 희한하게 맛있었다

내가 저녁으로 제일 많이 때우는 게 김밥인데,

그래서 김밥은 쳐다보기 싫었지만,

그녀가 만든 김밥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계속 내  입속에 들어가고 있었다.

김밥이 맛있다는 말에 그녀는 대답했다


“김밥은 말이죠 김이랑 밥이랑 참기름만 좋은 것 쓰면 돼요.

  그럼 기본적으로 맛있어요"


과연 그랬다 그녀의 김밥은 향긋한 김과 고소한 참기름 적절한 간이 배어 있는 쫀득한 밥알이 비결이었다      

거기에 적절한 시금치 간은 딱 맞았고, 분홍소시지까지 잘 어울렸다.



김밥을 먹으며 우리는 가벼운 로맨스 영화를 같이 보았다  

영화 속의 여주인공은 사랑스러웠다.

자기 사랑 앞에서는 비굴해질 줄도, 지질해질 줄도 알았다.

그런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참 솔직하다 저 여자”

지숙이 말했다.

“그러게요 저 정도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데”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런데 보기 나쁘지는 않네..”

지숙이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영화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실제로 저 정도라면 남자가 질릴 것 같은데”  


“지영 씨도 저런 적 있어요?  남자 앞에서 자기 마음 다보인적..."


나는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며 흘러가는 영화 장면에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요 저는 연애하면 어쩐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아닌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려고 해요 그러다

힘에 부치면 자연히 이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번도 저렇게 솔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술술 내뱉어버린 말에 분위기가 이상해 질까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랑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하지만 결국에는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길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거죠"


"간절히 바라도 이뤄지지 않는 게 있잖아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들이요 "


"있어요 나는 그렇게  믿어요. 간절히 바라면 이뤄질 거라고 어떤 형태로든지 “     


20대인 내가 말해야 할 법한 이야기가  그녀의 입에서 등장하자 신기했다

마치 그녀가 아직도 영화 속 로맨스를 믿는 철없는 친구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받길 바란다는 것은 상대방도 그렇게 사랑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나의 몇 번 안 되는 연애들은 포장했던 모습들이 서로 벗겨지면서 자연스레 끝났으니까


하지만  잠시 혹시나 내가 너무 비관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어쩌면 진짜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사랑을 만난다면 내 모습 그대로를,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될까?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지숙에게 더 마음이 열렸다 그녀는 편안했고, 어떤 말에도

그럴 수 있지 라며 공감해 주었다. 공감 뒤에 꺼내놓은 그녀의 이야기들은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들이었다.



영화가 끝나 지숙이 그릇을 챙겨 들고 집으로 갈 때 나는 말했다      

"앞으로는 언니 동생하면서 편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아요 저한테 말도 편하게 하세요

같이 밥도 먹으려면 그게 좋을 것 같아요 "



그녀는 나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야 그럼 너무 좋지 고마워~지영 씨도 나한테 말 편하게 해~"  


그녀가 돌아가고 침대에 누운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무엇을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녀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는 게 나는 부럽게 느껴졌다

적어도 버스가 강에 처박혀 이 삶이 끝나도 아무렇지 않은 나보다는 그녀가 낫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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