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절에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이야기
홀로 여행을 하는 건 수행하는 것 같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견딜 만하지만 사흘이 넘으면 조금은 지친다.
몸은 피로하고 입은 근질거린다. 사흘 넘도록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면 입술이 저절로 실룩거린다.
이런 여행을 여러 번하여 경험을 쌓아도 어쩔 수 없는 심심함이 있다.
오후 5시 40분쯤이다.
갈까, 말까 갈등이 생겼다. 동절기엔 5시 넘어서 절에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 절은 외곽진 곳에 있어 다시 오려면 쉽지가 않다.
이 절이 유명하거나 대단한 유물을 가진 것도 아니다. 욕심이 생겼다.
초겨울에 해는 빠르게 서산으로 도망을 가도 빛마저 다 가져가는 건 아니다.
법당 안에 들어갈 까닭은 없다. 경내에서 전각만 보면 된다.
이런 내 욕심이 차를 우회전시켰다.
어둠이 더 짙어지기 전에 절을 보려고 하였는데 종무소에서 일하는 직원과 마주쳤다.
"어디서 오셨어요?"
"예, 지나는 길인데, 이곳이 전통사찰이라서 염치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
"우린 저녁 공양을 다하였는데, 저녁은 드셨습니까?"
"아직, 절을 잠시 보고 가겠습니다."
"배가 고프실 텐데 사무실에 들어오셔서 차라도 드시지요?"
거절하기 어려운 친절에 감사한 마음으로 종무소로 들어갔다.
추위에 몸이 많이 움츠렸던 모양이다. 긴장이 풀리고 나른하여진다.
직원은 커피와 빵을 내준다. 다니면서 먹으라고 봉지에 든 과자와 밀감을 준다.
주지인가, 젊은 중이 종무소로 들어온다. 오십 대 초반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나에게 '뭐 하는 분이냐, 전문 작가냐 블로거냐, 집은 어디냐' 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나는 내 처지를 솔직히 답하였는데 나중에 난 매우 어리석은 답을 했음을 알았다.
그 중은 내가 '돈이 있고 시주 가능 또는 전문 블로거로 절 소개에 유용한가'를 파악한 것이었다.
나는 60세에 자진 은퇴하고, 소일거리로 전통사찰을 찾아다니고 있으며 생활은 국민연금이 전부라고 말했다.
전문 작가도 아니고 팔로워가 많은 유명 블로거도 아니라고 말했다.
중은 말씨가 달라졌다. 소리가 높아지고 진실이 아닌 말을 했다.
나는 여긴 온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우리 절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니 준비가 다되면 그때 다시 오시면 좋겠습니다.
교구 본사에 사진을 찍은 사람 직업과 사진 내용을 모두 보고해야 합니다.
전각 외관이고 안이고 사진을 찍지 마시고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말하는 교구 본사를 여러 번 간 적이 있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내부 사진촬영'이란 경고문을 보면 찍지 않는다.
큰 사찰은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찍어도 뭐라 하는 승려는 거의 없다. 나는 벌써 5년째 사찰을 다니고 있다.
'이놈 봐라. 내가 돈이 안 되니까 이런 허튼 말을 하네.'
내 속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그가 이런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라온 생각에 나도 놀랐다.
'가진 것이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피식 웃었다.
중은 종무소를 나갔다. 나는 직원과 몇 마디를 더 하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종무소를 나왔다.
나보다 먼저 나간 중은 다른 중과 함께 종무소 앞에서 개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신발끈을 묶고 나는 그들에게 합장하여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내 말이 작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듣고도 모른 체하였는지, 못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가 간다는 것을 볼 수는 있었다. 내가 합장하여 머리 숙인 것을 봤을 것이다.
뒤에 온 중이야 나와 인사가 없었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지인 듯한 중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대접이야,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성이 생긴 탓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보살과 아귀를 만났다.
아귀를 만나 기분이 나빴던 건 보살을 만났기에 금세 잊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내 여행기에 한 마디를 남겼다.
<종무소 직원은 보살, 주지는 땡중>
해맞이를 향일암에서 하였다. 원효대사께서 나를 타이른다.
'일체유심조'
아귀도 보살도 모두 내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친절하였다고 보살이고, 친절하지 않았다고 아귀라고 일컫은 건 내 마음이다.
돌산을 한 바퀴 돌고 김해 집으로 가는 길, 이순신대교를 건널 때는 아귀라고 생각한 그를 잊었다.
다음에 인연이 닿는다면 그 절에서 일하는 그 보살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