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암자에서 만났던 스님을 기억하며
가슴 아픈 일이었다.
지난해 3월 20일부터 3월 24일까지 여행을 하였다. 늘 그렇듯이 전통사찰과 문화유산 탐방이었다.
경북 의성/안동/봉화/울진/영덕/포항 등이 여행 목적지였다.
여행할 동안에 뉴스를 듣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산불이 나를 따라다닌 것을 알았다.
3월 22일 의성에서 발화한 날엔 나는 안동을 지나 봉화군에서 헤맬 때였다.
산불이 꺼진 후 내가 여행한 지역은 처참하였다. 내 가슴에 담았던 전통사찰이나 문화유산도 사라졌다.
재작년 가을에 안동 길안면을 지나며 어느 암자에 들었다. 점심공양이 지난 오후 1시쯤이었다.
포행을 나서는 주지와 마주쳤고, 그는 내게 좋은 경치를 보여주겠다고 같이 가자고 권하였다.
참선하면 좋을 만한 너럭바위에 앉았다. 기시감, 처음 온 곳인데 전에 왔었던 느낌이 들었다.
계명산을 끼고 굽이굽이 도는 길안천 경치가 봉화 만리산과 청량산 사이를 꼬불꼬불 흐르는 낙동강 경치와 비슷하였기에 기시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을바람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주지와 나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이야기 모두를 기억하진 못한다.
20대 초반에 출가하였고 한다.
지금 머물고 있는 암자에는 신도가 오지 않아 생계가 곤란하다고 하였다.
10여 년 전에 백운암 주지와 보험 상담을 하였다. 그 주지는 노후 생계 때문에 상담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가진 돈을 조금 더 불려서 자신이 입적했을 때 다비장을 치를 수 있도록 비용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모든 승려가 입적하면 다비장을 치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건 종단에서 높은 자리에 앉았거나 언론에 노출이 많이 된 유명 승려에게만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15여 년 전에 목사와 승려, 이들의 노후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80% 이상이 노후준비가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있었다. 중대형 교회 목사나 종단 내에 고위직을 지낸 승려의 경우는 노후에 먹고살 일에 염려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목사나 승려에겐 큰 고민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은 어떠한지 모르겠다.
너럭바위에서 일어났다. 주지는 내게 차를 마시고 가라고 권하여 염치없이 종무소로 들어갔다. 그렇게 차를 따르면서 한 시간을 이야기한 뒤에 나는 일어섰다. 집으로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주지와 이별이 슬픈 것보다 그가 처한 환경이 갑갑하여 마음이 아팠다. 1년 내내 오지도 않는 신도, 암자를 지킬 힘이 없어 도반이 있는 태백산 어느 암자로 옮길까 생각 중이고, 다음에 그곳으로 한번 오라는 말을 한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수행하기 위해 출가를 하였다. 출가를 하여 수행을 하였다. 수행한 그도 늙었고, 수행하지 않고 세속에서 버둥거리며 산 나도 늙었다. 그도 노후를 걱정하고 나도 노후를 걱정한다. 그에게 출가와 수행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나는 궁금하다. 어쩌면 수행도 삶이었을 것이다. 삶의 한 방편으로 출가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