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도 나름

순창 용궐산에서

by 꺼벙이

용궐산 등용문을 지난다. 돌계단이 걸음을 불편하게 한다. 깊은숨을 내쉬기 위해 바위에 걸터앉았다. 산행을 하고 내려오던 부부가 나를 염려한다. 나는 오른쪽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

"무릎에 보호대는 왜 했어요?"

"예, 퇴행성 관절염이 있어서 했어요. 이걸 하면 걷기가 편하거든요."

"그래요?! 가지 마세요. 여기 오르막이 심합니다. 가면 안 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나는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김해에서 순창까지 용궐산 산행을 위해 먼 길을 온 내 결정에 낯선 이의 오지랖이 매우 불쾌하다.

"고맙습니다만 그런 간섭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아니라 신경질적인 표정을 살짝 지으며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 가시면 안 됩니다. 왜 갑니까?"

그의 아내가 내 표정을 보고 남편을 잡아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뺨을 때린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입니다. 댁이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그는 뭔가 안타까운지 또 입을 열려고 할 때 그의 아내가 힘주어 잡아당긴다. 그는 내려가면서도 중얼거린다. 나는 패트에 든 물을 벌컥 비우고 엉덩이를 턴다.


지난달엔 나는 구미 금오산을 산행하였다. 보호대 없이 산행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보호대를 준비한 것이다. 나는 오랜 세월 산행을 하였다.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등 종주 산행 경험도 있을 뿐 아니라 홀로 산행 경험도 많다. 내 처지에서 무리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산행은 삼간다. 지금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지만 아예 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기에 나는 왔고, 남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들을 만큼 산행 초보가 아니다. 그렇기에 용궐산에서 만난 그의 말에 화가 났던 것이다.

나는 산행에 입문하는 이에게 말한다. 산행은 준비에서 시작한다고.


용궐산 하늘길은 깎아지는 절벽에 놓인 잔도다. 갈 지자 잔도를 걷는 건 내게 쉽지 않은 걸음이지만 내 눈에 흐르는 섬진강 경치로 가슴은 쿵쾅거린다. 비록 다리는 아프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눈에 담고 카메라에도 담고 가슴에 담을 수 있다는 건 희열이다. 조금 전 낯선 이가 부린 오지랖의 불쾌함을 잊는다. 오지랖을 어떤 이는 관심이고 정이라고 한다. 나는 관심이며 정인 오지랖과 간섭의 오지랖은 구분하라고 말하고 싶다. 용궐산에서 만난 그, 내가 염려되었다면 그는 달리 말을 했어야 한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경남 김해서 왔습니다."

"아이고 멀리서 오셨네요, 이 산이 생각보다 가파른데 아픈 다리로 힘이 들겠습니다."

"예, 쉬엄쉬엄 갔다 오면 되겠지요."

"잘 오셨습니다. 용궐산 경치는 참 좋습니다. 천천히 조심히 다녀오세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면 그도 나도 즐거웠을 테고, 나는 그를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추억을 했을 것인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타인의 결정에 간섭하는 오지랖을 정이라 할 수 있을까?

간섭하는 오지랖은 상대를 조롱하거나 지배하려는 건방짐이다. 이런 오지랖은 상대에게 빰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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