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마음

지리산 반야봉에 들면서

by 꺼벙이

니 와 쓰레기 줍노?

쓰레기가 눈에 보이니 그냥 줍니기제, 뭐 까닭이 있나?

근나? 쩝~쩝!

근디 니는 와 쓰레기를 버리노?

마~ 니가 주우니 나가 버린다 아이가!

니 우끼는 아제데, 니가 구찬타고 버리는 쓰레기를 山인들 조아 허것나?

.......

니 쓰레기는 니가 들고 가라, 와 산에다 버렷쌋노?


오래전부터 나는 산에서 쓰레기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마 전부터 국립공원인 산에 들면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 자신에게 낯설고, 뭔가 남에게 보이는 것 같아서 쭈뼛하였다. 하지만 나는 산에 들면 쓰레기를 주어야 했다.

산이 나에게 준 사랑과 가르침에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젊은 날에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지리산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산에 들어와서 살지 말고 산 밖에서 살라고 위로하여 주었다.


그렇게 산 밖에서 살다가 한 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에 빠져 2년을 기쁘게 보냈다. 어느 날, 그 여인에게서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은 허공에 산산이 부서졌고 나는 막차를 타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12월의 칠흑 같은 어두운 밤,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칼바위에서 나는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지리산이 나를 반겨 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서러워서 울었다. 아니 실연의 아픔이 너무 커서 울었다. 발길을 돌렸다. 한걸음 아래로 내딛는데 누군가가 내 허리춤을 잡고 다시 돌려세웠다.

'꺼억~! 꺼억~!'

가슴은 그렇게 울었다. 울면서 나는 오르고 또 올랐다. 로터리산장 구석진 곳에 몸을 웅크렸다.


추위도 배고픔도 잊고 아픈 가슴만 잡고 울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일출, 일출을 봐야지.'

어둠에 무거운 발걸음을 놓으며 천왕봉으로 오를 때, 매운 새벽바람이 내 걸음을 가볍도록 도왔다.

뜨는 해를 보면서 지리산신을 꽉 잡고 실컷 울었다. 마고할멈이 내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해가 다 나왔다. 내 울음은 멈추었고 알인 가슴은 시원해졌다. 지리산신께 합장하여 감사함을 드렸다.

"이제 내려가겠습니다."

"담에 또 오시게."


친구들에 비해 매우 늦은 결혼을 하였다. 딸과 아들을 낳고 평범하게 살았다. 작은 사업을 하였다. 위기는 또 왔다. 나는 가진 게 많지 않았다. 세상은 야속하게 그것마저 모두 가져가 버렸다. 억울함, 분함, 막막함 그리고 두문불출하였다. 육신과 영혼이 망가지는 모습을 넋 놓고 보는 나는 무기력하였다. 석 달이 넘는 칩거였다. 고향에 가고픈 마음에 준비도 없이 아내에게 간다는 말도 없이 나섰다. 어릴 때 추억이 흐르는 서강에서 멍히 있었다. 무심하게 흐르던 서강이 나를 유혹하였다. 들어오라고, 들어오면 세상 근심 모두 잊는다고 유혹하였다. 나는 웃으면 고개를 깊게 숙여서 서강을 마주 보았다. 순간 떠오르는 한 살배기 아들의 웃는 모습, 까르륵하며 웃는 소리에 나는 나를 버리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나를 잡고 반가움과 원망으로 울고, 딸과 아들은 반갑다고 웃었다. 일주일을 그렇게 헤매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허망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산에 들고 싶었다. 지리산에 들고 싶었다. 지리산을 찾았다. 그렇지만 나는 지리산에서 울지 않았다. 지리산은 포근하게 맞아 주었다. 그래서 울 수가 없었다. 천왕봉에서 마고할멈이 차려준 막걸리 한 주전자를 지리산신과 비우고 신나게 춤을 췄다.


산, 산이 있어서 나는 가슴앓이병을 고쳤다. 산은 언제나 위로하였고 사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깨우쳐주었다. 삶이란 어려움 속에서 견디며 살아야 할 고귀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렇게 고마운 산에 나는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고민하였다. 쓰레기를 줍기로 하였다. 이건 내게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일 수도 있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많은 쓰레기를 세상에 버렸다. 하늘만이 알고 있는 추악함, 가까운 이에게 준 상처, 나에게 또는 타인에게 준 거짓과 위선 등등 갖가지 쓰레기를 버렸다.


삶의 쓰레기, 쓰레기를 나는 얼마나 많이 버렸을까?

내가 버린 쓰레기를 주워 담는 마음으로 나는 산에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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