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살아 있다

아직 존재하는 건 고마운 일

by 꺼벙이

아, 나는 살아있다


난 새벽에 그와 섹스를 하였다. 희망.

난 새벽에 박쥐 서곡을 들었다. 기쁨.

요한 슈트라우스가 고맙다. 감사.

나는 왼편 뒤통수가 아프다. 편두통.

난 왼손으로 뒤통수를 툭툭 쳤다. 바보짓.

참을 만하지만 가끔 짜증이 난다. 고통.

바보스럽지만 나는 두렵다. 죽음.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까 봐. 어리석음.


난 새벽에 편두통이 있어

요한 슈트라우스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박쥐 서곡을 작곡하였다.

왼편 뒤통수를 왼손으로 툭툭 치니 편두통이 짜증을 내서 내가 한 마디 했다.


아, 나는 살아있다!


시답지 않은 시를 쓰고, 커 피 한 잔을 홀짝이면서 이번엔 친구에게 글을 쓴다.


친구에게


섹스란 말에 혐오감을 느끼지 마시게.

살아 있다는 뜻이네.

편두통을 느끼는 것도 그런 것이네.

지병이 있든, 없든 나이가 들었다는 건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이네.

잠조차도 두려워서

불면증이 생긴 것일 수도 있네.


두려움 잊고 잔다는 건 큰 복이네.

이런 복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쁨, 고마움으로 나를 웃게 하네.

하루를 선물 받는 것은 큰 기쁨이고 감사.

존재하기에

섹스도 꿈꾸고

밥을 먹고 숨을 쉬네.

책을 읽고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네.

짜증 내는 일이 있어 짜증 내는 것도

고맙게 생각하여야 하네.

존재하니까 화를 내고

존재하니까 웃고, 우는 것일세.

존재한다는 건 복일세.

이 복된 삶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살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어제 내게 투덜거렸던 친구를 생각하며 끄적였다.

어제 내게 투덜거린 친구는 나일 수도 있다.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라고

나는 친구와 나를 위로하고 싶다.

커피를 담았던 잔이 비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라고 성화를 부린다. 누가?


* 어느 해인가 모르겠습니다. 충북 제천 의림지 겨울 풍경입니다.

충북 제천 의림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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