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유스오케스트라 공연과 시인 기형도
김해지혜의바다, 오후 2시, 신명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클래식 여행.
시집이 모여서 소곤거리는 서가에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길 위에서 중얼거라는 사람은 시인 기형도다.
죽은 자가 살았을 때 중얼거린 이야기다.
시인 이름을 보지도 않고 시집 가슴에 걸린 이름을 보고 데려온 친구다.
연주가 흐르면 나는 시인과 함께 도서관에서 중얼거려야겠다.
주머니에 보청기(안경)를 챙겼는데 없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듣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귀를 더 쫑긋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중얼거리는 말이 가진 의미를 좇아가기엔 나는 가는귀를 먹었다.
나는 곧 무너질 것만 좇았다.
그 무너질 것들이 내게는 즐거움이었고 네게는 기쁨이었다.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진 황혼, 붉게 빛나다 검게 변하기 직전에 가지는 허무.
삶은 무상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중략)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나는 어디쯤에 와있는 것일까?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삶이란 돌이킬 수 없는 외길이니 어쩔 수가 없다.
어둠이 내리는 이 순간에 중얼거리고 탄식을 쏟아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를 앞선 이도 좇았던 희망, 내가 좇았던 희망, 부질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탄식인가?
이젠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무 때나 나는 눈물 흘리지 않는다
('희망' 전문)
걸음이 늦어졌다.
젊은 날 내 걸음은 홍길동이었다. 이젠 열 살 아이의 걸음도 따라가기 힘이 든다.
커다란 창문에 비치는 앞산을 볼 때면 눈물이 난다.
이렇게 뭔가 이루지 못한 못난 내 삶이 서럽다.
은퇴하고 일을 찾아 나섰다.
최저임금에 점심 제공, 8시간 몸으로 일하고 온 날은 울 힘도 없이 고꾸라졌다.
꿈에서 난 서러워서 울었다.
서글픔, 어리석은 감정인 것을 알지만 쉽게 찾아오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난 최저임금을 포기하였다.
육신은 고단함에서 벗어나 춤을 췄다.
눈물샘을 메우고 길 위에서, 시간의 흐름을 타고 중얼거렸다.
산을 보고, 강을 보고, 천년 전에 세워진 탑을 보고, 산기슭에 외롭게 선 부도를 보고, 보고 또 보고,
나는 중얼거리며 지금까지 견디고 있다.
육신이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던 것을 본다면 눈물 흘릴 일은 없다.
삶이란 선택이며 무엇 뾰족하게 이룬 것이 없다고 서러워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삶이란 목적도 없고 이룰 것도 없다고.
시인 기형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보니 <신명유스오케스트라>가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모르겠다.
사회자는 주위에 있는 QR코드에 핸드폰을 대면 안다고 하지만 난 그것조차 어려운 노인네다.
시인 기형도와 악수하고 그를 보냈다.
중얼거림이 사라진 가는귀먹은 귀에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 머문다.
지지난주 루미 시집을 읽었고 춤추는 시인 루미를 만났다.
난 일어나서 춤을 추고 싶다.
비록 왈츠를 배우진 않았지만 루미처럼 빙빙 돌아도 될 일이다.
허공이 내민 손을 잡고 가볍게 돌고 싶다.
난 늙었지만 청춘이다.
<신명유스오케스트라>는 김해 삼계동에 있는 신명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원입니다.
20대나 30대도 여럿이 보입니다만 초등학생 위주이며 창단은 2022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