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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아티스트 Feb 10. 2022

'피아니스트의 병'에 걸렸다?

드퀘르벵 증후군 진단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왕성하게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랑랑이 활동을 중단한 시기가 있다. '건초염' 때문이었다.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자세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랑랑은 3년간 연주를 쉬었다. 랑랑이 연주를 취소한 '덕분'에 조성진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처음으로 협연하기도 했다. 랑랑은 3년간 재활 끝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신보를 내면서 연주를 재개했다. 

 랑랑의 건초염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건초염? 마른 풀(건초)이 병 이름이네? 하고 무심히 넘겼었다. 그런데 지난해 봄, 내가 오른손에 손목협착성 건막염 진단을 받았다. 이걸 '건초염'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알고 보니 '건초(腱鞘)'는 마른 풀이 아니라 '힘줄집'을 뜻하는 말이었다. 다음은 '건초염'에 대한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의 설명이다.  

"건초염은 건초 또는 활액에 염증이 생긴 것을 의미합니다. 근육과 뼈를 연결하는 결합 조직인 건을 둘러싼 것이 건초입니다. 근육을 움직일 때마다 건이 건초 안을 왔다 갔다 합니다. 여기에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한 액체인 활액이 들어 있습니다. 근육이나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이러한 건초 또는 활액에 염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건초염은 우리 몸 어떤 곳에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발생 부위로는 손목, 어깨, 무릎, 발꿈치 후면, 손가락 등이 있으며, 주로 손목에 많이 발생합니다. 손목 건초염은 드퀘르벵 병이라고도 합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산모, 아기 보는 할머니, 수공예 작업자, 피아니스트와 같이 손목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많이 발생합니다."

드퀘르벵은 1895년 이 병을 처음 기술한 스위스 의사의 이름이다. 그러니 손목 건초염 건막염 드퀘르벵병 다 같은 병을 말하는 것이다. 증상은 손목에서 엄지까지 이르는 부위에 통증과 붓기, 그리고 심해지면 손목 전체 통증이 나타난다. 

나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과 손목 부위에 통증이 나타났다. 처음엔 컴퓨터 많이 쓰는 사람한테 흔한 '손목터널 증후군'인가 했는데, 검사해 보니 건초염이라 했다. 주사를 맞고 눈물 나게 아픈 체외충격파, 물리치료를 받았다. 손을 쓰지 않는 게 제일 좋다 해서 엄지손가락과 손목을 고정하는 보호대를 한동안 하고 다녔다. 마우스와 키보드도 손목과 손가락에 부담이 덜 간다는 제품으로 교체했다.  

 랑랑이 건초염에 걸렸다는데, 그럼 나도 '피아니스트의 병'에 걸린 건가? 그렇게 피아노 연습을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아마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많이 써서 손목이 나빠졌을 거다. 증상이 조금 호전되어 보호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의사에게 물었다.   

 "저... 피아노는 쳐도 되나요?
 "음악 하는 분이세요?"

 "아뇨. 그냥 취미로 가끔..."
  "치셔도 됩니다" 
 "근데 손가락에 무리가 갈 것 같은 곡들도 있거든요. 그런 것도 괜찮을까요?"
"무슨 힘든 곡을 치시길래..."

"아, 그냥 그런 곡들이 좀 있어서요.... " 

이 의사는 건초염과 피아노 연습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무슨 곡을 친다고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얼버무렸지만, 본능적으로, 손을 크게 벌려야 하는 화음이 많고 복잡한 곡을 치는 건 무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하던 피아노 연습을 쉬고, 한 달 정도 치료 받으면서 조심했더니 통증이 없어졌다. 

그런데 몇 달 후 증상이 재발했다. 마침 쇼팽 발라드 1번을 다시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안되는 화음 짚느라 손을 한껏 벌리고 용을 써서 그런가 생각도 들었다. 다시 치료를 받으러 갔다. 또 주사 맞고 체외충격파 치료와 물리치료 몇 번 받았다. 그런 중에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코로나로 재택 치료하며 연말을 보내느라 손목 치료는 흐지부지, 코로나가 낫고 나서도 다시 정형외과에 가진 않았다. 손목 상태가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파스 붙이며 그냥 지냈다. 이러다 낫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통증이 심해졌다. 엄지와 손목을 잇는 부위가 꽤 부어올랐다. 그냥 놔두면 안될 상황인 거 같아 다시 정형외과 방문. 이번에도 똑같은 코스다. 주사 맞고 체외충격파 치료와 물리치료. 심한 통증은 일단 가라앉았지만, 당분간 또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이번엔 의사가 먼저, 피아노도 치지 말라고 했다. 건초염에 좋다는 스트레칭은 해도 되냐고 하니, 그것도 당분간 쉬란다. 

그런데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일을 하려면 컴퓨터를 계속 쓰게 되니 손을 안 쓸 수는 없다. (사실 지금도 쓰고 있지 않은가.) 또 하나 문제는, 오른손을 덜 쓰려다 보니 왼손이 더 무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분상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왼쪽 손목도 뭔가 삐걱거리는 것 같아 찜찜하다. 

오늘도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고 왔다. 방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는 피아노를 보니 마음이 시리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피아노 연습 한 번 안 하고 넘어가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면 안된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칠 수 있는데 안 치는 거면 모르지만, 내가 치고 싶어도 못 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처럼 취미로 가끔 치는 사람도 이런데, 건초염으로 연주활동을 중단한 피아니스트의 마음은 어땠을까. 갑자기 랑랑과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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