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 아티스트 Jan 06. 2022

프로도 아마추어를 탐할 때가 있다

'피아노는 취미'라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쇼팽 콩쿠르는 5년에 한 번, 쇼팽의 조국  폴란드에서 열리는 유서 깊은 콩쿠르다. 수많은 피아노의 별들이 이 콩쿠르를 거쳐갔고, 한국인 피아니스트로는 조성진이 2015년에 최초 우승기록을 세웠다. 2021년 쇼팽 콩쿠르는 코로나 19로 1년 미뤄져 6년만에 열렸고, 그만큼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96명 가운데, 독특한 이력을 자랑하는 일본인 참가자가 두 명 있었다. 먼저 사와다 소고. 1998년생으로 나고다 의대 재학 중 콩쿠르에 참가했다. 6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고, 10대 중반부터 2005년 쇼팽 콩쿠르 4위에 올랐던 피아니스트 세키모토 쇼헤이에게 배웠다. 의사로서, 또 피아니스트로서 사람의 신체와 영혼을 다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도쿄대 공대를 졸업하고 대학원 재학중인 1985년생 하야토 스미노다.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수많은 콩쿠르 입상, 협연 경력이 있다. 그는 구독자 80만이 넘는 인기 피아노 유튜브 채널 '카틴(Cateen)'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클래식 레퍼토리 연주뿐 아니라, 편곡이나 즉흥 연주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사와다 소고는 본선 2라운드까지, 하야토 스미노는 본선 3라운드까지 진출했다. 의학과 공학이라는 별개의 전공이 있는 참가자들이라니, 비전공자로서 쇼팽 콩쿠르 본선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큰 성공 아닌가. 이들은 수상 여부와 관련없이 콩쿠르 참가 자체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다음은 사와다 소고와 하야토 스미노가 각자의 마지막 라운드 연주를 마치고 한 인터뷰다.

"그냥 재미있게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연주 전에는 진짜 신경이 곤두서고 경직돼 있었어요. 하지만 바르샤바에 도착한 후 저에게 일어났던 모든 즐거운 일들을 떠올리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을 봤어요. 그리고 재미있게 해보자, 연주를 즐기자고 생각했죠. 오늘 연주에 대해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제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해요."(사와다 소고)


"오늘의 연주에 제 전부를 쏟아넣느라, 완전히 지친 상태예요. 저는 정말 음악에 파고들었고, 음악 안에 있었어요. 진짜 멋진 경험이었죠. (이전 라운드보다 스트레스가 심했나요?) 아뇨.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았어요. 예선과 본선 첫 라운드까지는 좀 긴장했는데, 이제 저는 홀에서 제 프로그램을 연주했고, 그러면 된 거죠!"(하야토 스미노) 

'참가 자체에 의미를 둔다'는 건 아마추어 정신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어떤 일을 직업으로 하느냐 취미로 하느냐로 갈라진다. 그래서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본격적인 직업으로 하는 프로보다 실력이 모자란다는 전제도 생겼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라는 유행어가 바로 아마추어의 '서투름'을 전제로 한 말이다. 

그럼 사와다 소고와 하야토 스미노는 아마추어인가. 이들의 '본업'을 피아니스트라고 해야 할지, 의학도나 공학도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들을 실력 면에서 '아마추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쇼팽 국제 콩쿠르는 프로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이고, 이들은 본선까지 진출해 이미 쟁쟁한 경력을 갖춘 다른 프로 연주자들과 실력을 겨뤘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연주가 계속 특별하게 느껴졌다. 연주하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비전공자라는 경력이 일종의 '후광 효과'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중에도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순간 순간을 즐기면서, 이상적인 아마추어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수준은 프로지만 아마추어의 순수한 열정이 뜨겁게 느껴지는. 

2021 쇼팽 콩쿠르 우승은 캐나다 국적의 브루스 류에게 돌아갔다. 쇼팽 콩쿠르 우승 후에 바로 투어 공연에 나선 그는 서울시향과도 협연하며 콩쿠르를 거치면서 부쩍 늘어난 한국 팬들을 만났다. 그는 내한 무대에서 콩쿠르 때와 또 달라진 해석으로 신선함을 안겨줬는데, 인터뷰에서도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격월간 SPO)


 "저는 아직도 피아노를 취미라고 여깁니다. 직업이나 그 비슷한 것으로 부르고 싶지 않아요. '취미'는 정말로 좋아할 때만 하는 거잖아요? 일상적인 루틴이나 의무가 아니라는의미에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언젠가 더 이상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게 된다면 그만둘 거예요. 내 미래의 매니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다행히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떠밀려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는 피아노가 자신이 즐기는 '열 다섯 가지 취미 중 하나'라고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카트 레이싱, 수영, 체스, 골프, 영화, 독서, 테니스, 탁구 등 다양한 취미를 가졌다.
물론 지금은 피아노에 더 집중하고 있고,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에 엄청난 책임감도 느끼고 있지만, 피아노는 여전히 그의 '취미'라는 것이다.

'취미'는 일상적인 루틴이나 의무가 아니라, 정말로 좋아할 때만 하는 것이라는 브루스 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일이 직업이 되고 나면 '밥벌이의 지겨움'에 얽매일 위험도 커지는 법이다. 그러니 피아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로 연주자일지라도, 정말로 좋아서 하는 그 마음만큼은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얘기다. 

브루스 류의 이 인터뷰를 두고 누군가는 역시 MZ 세대라 쿨하다고 평가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피아노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나는 브루스 류가 피아노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 쿨하게, 즐겁게, 연주해 줬으면 좋겠다. '피아노는 직업이 아니라 취미'라는 말을 하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니! 프로 연주자들조차 아마추어의 매력에 끌린다는 뜻이리라. 

프로는 프로대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매력이 있다. 아마추어는 프로의 '수준'을 동경하고, 프로는 아마추어의 '태도'를 탐한다. 
  

 

  


 


 
 







  





작가의 이전글 손이 커야 피아니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