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방식 인생 조제법

[내 삶에 '상상' 한 스푼] 자바칩 같이 갈아넣고 휘핑크림 올려주세요.

by 백다은

"두유딸기 프라푸치노에서

두유를 우유로 바꿔주시고요.

초코드리즐 바닥에 깔아주시고

딸기시럽 6펌프 추가해서

자바칩과 같이 갈아주세요.

휘핑크림도 올려주시고

위에 초코드리즐 올려주세요."


별다방에서 내 앞에 선 고등학생 커플은

각각 돼지*, 슈*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인터넷에서 한참 유행하던 악마음료 레시피였다.

앱에서 나만의 음료로 저장해 QR코드만 살짝

보여주어도 되었을텐데, 외운 걸 보여주려고 서로

경쟁하듯 주문하는 모습이었다. 내 순서가 늦어지는 건 생각도 안날만큼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빼 주시고요.

~깔아주세요.

~올려주세요.

~바꿔주시고요.


마음에 안 드는 건 과감히 빼 버리고, 기본으로 깔 건 두둑하게 깔아두고, 원하는 건 왕창 몽땅 올리고,

취향에 맞게 적절히 바꾸어 만드는 나만의 음료라니.. 이 반복되는 어미를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마음대로 조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로특강을 할 때면 10대들에게 '여러개의 나 상상실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수의사, 소방관, 변호사, 교사, 경찰, 사업가, 배우 등 하나의 직업을 선택한 나의 모습 대신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고등학교 밴드부 보컬 출신의 법학도
-중학교 때부터 웹에서 활동한 추리소설 작가
-약학대학 재학 중 랩퍼 경연대회에 참여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본 예비약사
-뉴욕 드론 필름 페스티벌에 작품을 출품한 최연소 중학생
-IT회사 엔지니어 출신의 영화배우
-10대 때부터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캠페인을 벌여본 경험이 있는 플로리스트
-애니메이션 코스프레를 즐겨하던 성우
-마술을 즐겨해 수업에 활용하는 초등학교 교사
-어릴 때부터 조조영화를 즐겨보고, 그것에서 영감을 얻는 요리사
-공연장, 미술관, 서점을 자주 찾아 자신의 분야와 접목하려고 연구하는 건축학과 학생

<두근두근 N잡 대모험 (백다은, 팜파스, 출간예정)>


삶의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내가 바라는 여러 나를 상상하고 조합해보는 일’,

마치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가 할 법한 일 같다.


"자바칩도 같이 갈아넣고 휘핑크림 올려주세요."

머릿 속 그리는 맛에 최대한 가까운 음료를

주문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원하는 일이 척척

이루어진다면 좋으련만. 무엇 하나 쉽게 되지는

않는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 상상이 실제 내 삶의 풍경이

된다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능력에 비해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많아

논픽션 어린이책 작가, 에세이 작가로의 데뷔를

앞두고 있다. 제법 숙련되어 있어야 할 법도 한데,

여전히 어느 하나도 쉽지가 않다. 할수록 어렵다.


그럼에도 고단한 하루 끝에 '상상 한 스푼' 얹어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팍팍할지

생각해본다. 또 모든 작은 시작이 '이거 한 번 해보면 어떨까' 떠올리는 상상에서 출발한 것임을 생각하면 늘 감사하고,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더 나은 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기에,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주말엔 별다방에서 원하는 음료를 줄줄 읊어대던 학생들처럼, 주문을 외워보려고 한다. 빈 컵에 '또다른 나' 레시피를 어떻게 담을까 구상해보면서

말이다. 한 주의 피로를 날려버릴 수 있게 초코드리즐을 바닥에 두둑하게 깔고 휘핑크림도 듬뿍 올려볼 생각이다.

내 부족함을 알고 욕심을 알며
내가 가진 것들에 으시대지 않는 나
이해와 용서로 미움 없는 나
사랑의 놀라운 힘을 믿어갈 수 있는 나

- 이승환 '내가 바라는 나'


백다은

<고독한 미식가> 뺨치는 글로컬 동네맛집 탐방가에, <천사들의 합창> 시릴로의 순애보를 응원하고, <순풍 산부인과> 정배의 순수함이 늘 보고싶고 그리워 태교까지 순풍으로 했다. <브레드 이발소> 빵 한 조각과 우유에 담은 상상력을 사랑하며, <찰리브라운> 별볼일 없는 찌질한 캐릭터가 언젠가 빛을 보는 뻔해보이는 클리셰도 좋아하고, <노다메 칸타빌레> 엉뚱한 노다메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아온 타인의 지층들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조조영화, 돌체라떼 한 잔, 아삭한 사과 한 입에 아침이 기다려지는 소시민.

무의미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달달’ ‘낭만’ ‘상상’ ‘열정’ ‘감동’ ‘엉뚱’ '따뜻'
한 스푼을 더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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